독주하던 박근혜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서는 정몽준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09.10.2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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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MB의 중도 실용 뜨자 박 전 대표 큰 폭 하락…당 대표 맡은 정몽준은 ‘일취월장’

▲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오른쪽)와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9월18일 오후 국회 의정관에서 만났다. ⓒ시사저널 유장훈


잠시 흔들리던 ‘박근혜 독주’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는 17대 대선 이후 각종 차기 대권 후보 지지도에서 줄곧 압도적인 1위를 누려왔다. 감히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독주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민심이 움직이는 흐름이 엿보인다. 새로운 사람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이동일까. 아직은 두고 보아야 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흐름임에는 틀림없다. 박근혜의 독주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 4월29일 재·보선에서 패배한 직후, 여권은 급격하게 쇄신 논란에 빠져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친이·친박 그룹 간 표 대결을 통해 새 원내대표를 선출했다. 친박이 졌다. 박 전 대표로서는 아픔을 느낄만한 첫 패배였다. 당 분위기는 계속 박 전 대표에게 좋지 않게 흘러갔다. 전당대회 개최 및 대표 추대론을 놓고 박 전 대표와 틀어진 소장 개혁파들은 의도적으로 쇄신을 ‘조용하게’ 마무리지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MB)이 원한 대로 사태가 진행된 셈이다.

이런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23일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권은 추락했다. MB 지지율은 물론이고 당 지지율 또한 곤두박질쳤다. 각종 여론조사 지표가 여권에게 책임을 묻는 민심을 전해주었다. 5백만이라는 조문 인파는 가히 경악할 만한 민심 이반의 상징이었다. 비상한 상황이었다. 박 전 대표로서는 MB와 각을 세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참았다.

서거 국면이 정리되는 듯하자, 여권은 두 갈래로 대응했다. 6월 초 청와대는 중도 실용과 친서민을 전면화했다. 위기에 대한 해법이었다. 한편, 당은 이번 기회에 미디어법을 마무리짓고자 했다. 위기를 통해 미디어법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된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연 힘으로 밀어붙일 동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무모해 보인 점이 없지 않았다. 이때, 박 전 대표가 입을 열었다. 한나라당 법안에 대해 ‘수정’을 언급했다. 당내에서 일대 격돌이 벌어지는 듯했다.

만약 친이 그룹이 앙앙불락 맞대응하면 확전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세련되게 대응했다. 박 전 대표의 문제 제기를 일부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다시 공이 박 전 대표에게 넘어갔다. 사실 별로 수용된 것이 없었음에도, 박 전 대표는 주저앉았다. 자신의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졌다는 입장을 공식화하기까지 했다. 당내 반발이 없어지자, 7월22일 여권은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했다.

바로 이 시점부터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 시작되었다.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과 관련해 보여준 태도에 대해 국민의 60.3%가 실망스럽다고 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7월27일 조사 결과이다. 비슷한 시점에 조사한 윈지코리아컨설팅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 ‘일관성이 없고 입장 변화의 명분도 적어 문제가 있었다’는 여론이 57.1%였다.

박 전 대표 예우하자 MB 지지율은 급상승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가 10월5일 오전 보건복지부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전재희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그동안 박 전 대표가 누리는 독주는 구도에 따른 것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MB의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민심과 대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대선 때의 중도 스탠스는 실종되어버렸다. 반MB 정서가 광범위했지만 야당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무능과 그에 따른 불신 딱지 때문에 도무지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구도 때문에, 여권 내부의 반MB 분파가 내는 목소리가 크게 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MB에게 진 패자이기 때문에 동정심까지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었다.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구도는 MB에게 불리한 것이다. 강경 보수의 입장은 박 전 대표에게 중도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지지율 하락은 박 전 대표에게 민심 대변자의 이미지를 허락했다. 박 전 대표를 홀대하는 모양새는 박 전 대표에게 연민의 정이 쌓이게 했다. 그 결과가 지지율 하락이었다. 그렇다면, MB로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자명했다. 강경 보수에서 중도 실용으로 전환해야 했다.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했다. 박 전 대표를 예우하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MB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MB의 지지율은 급상승했고, 이에 반비례해 박 전 대표의 운신 공간, 독자 행보의 명분은 급격하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KSOI의 8월 조사는 이런 사정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대권 후보 지지도에서, 6월에 비해 3.5% 포인트 하락했다. 여론조사를 읽을 때 수치에 빠지는 것은 무용지물을 넘어 위험한 현혹이다. 즉,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몇 % 포인트 빠졌느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하락했다는 사실, 이런 흐름이 중요한 것이다. 

10월6일의 KSOI 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27.2%였다. 지난달에 비해 0.8% 포인트 오른 것이었다. 크게 보면, 보합세 내지는 하락세 멈춤이라고 보면 되는 결과이다. 또, 2위와의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독주 구도가 여전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구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KSOI의 6월 조사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이 10%에 가까운 지지율을 얻었다. 비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반짝 상승이나 거품이라고 볼 측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심이 새로운 사람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것은 중요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이번 10월의 KSOI 조사에서는 정몽준 대표의 상승이 두드러진다. 전달에 비해 두 배나 뛰었다. 5.2%에서 11%를 기록했다. 놀라운 상승이다. 현재로서는 정대표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할지 미지수이다. 새롭게 당대표를 맡아 언론 노출이 늘어난 것에 따라 상승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대표 지지율, PK에서 지난달보다 14.9% 올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대표의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냐, 하락할 것이냐가 아니다. 이제 독주가 아니라 경쟁을 예상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른 후보의 지지율이 움직이고 있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올망졸망 졸때기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2위를 차지하는 인물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2위가 두 자리 지지율을 보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정대표의 지지율 상승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지지율 상승을 이끈 그룹이다. 우선 자영층이 눈에 띈다. 자영업자 사이의 지지율만 놓고 보면, 박 전 대표 29.3%, 정대표 21.0%이다. 또 다른 그룹은 PK(부산·경남)와 충청 지역이다. 정대표는 PK에서 지난달에 비해 무려 14.9% 포인트 올랐다. 오랫동안 지역구를 경남에 두었던 영향일 것이다. PK에서 지지율을 보면, 박 전 대표 36.5%, 정대표 21.3%이다. 충청에서의 그것은, 박 전 대표 20.6%, 정대표 13.5%이다. PK와 충청 그리고 자영업자는 박 전 대표의 높은 지지율에서 중추에 해당되는 그룹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에게 정대표는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정대표의 지지율이 조금 더 상승한다면 이미 원내대표 경선과 미디어법 처리에서 박 전 대표를 압박해 성공했던 친이가 ‘겁 없이’ 덤벼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독주가 외형적으로 유지되면서도 내적으로는 심각한 각축의 에너지가 서서히 응축되고 있다.


갈 길 먼 ‘MJ 대망론’

지난 16대 대선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에 성공한 후보(노무현)가 결국 이회창 후보에게 승리했다. 이런 점에서 당시 여러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앞서고 있던 정몽준 대표로서는 다 이긴 게임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여론조사 시점이나 방법에서 손해를 보지 않았더라면 정대표가 단일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느끼는 아쉬움은 컸을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16대 대선 후부터 최근까지 그에게 대권 가능성은 사실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2009년 6월의 KSOI 조사에서 당시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은 3.3%에 불과했다. 그러던 그에게 뜻하지 않게 대표직이 굴러들어왔다. 호박이 넝쿨째 안긴 셈이다. 대표직을 맡은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의 대권 주자 지지율이 급등했다. 8월 5.2%에서 10월 11%로 2배 넘게 상승한 것이다.

그가 박근혜 전 대표와 경합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분명 기회의 창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조금밖에 열리지 않고 있다. 우선 여권의 주력 지지 기반인 60세 이상의 연령층과 저소득층에서 박 전 대표에게 많이 밀리고 있다. KSOI 10월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60세 이상의 연령층과 저소득층에서 각각 39.9%와 31.7%를 얻었다. 정대표의 경우 6.5%와 5.4%를 얻었다. 턱 없이 밀리는 구도이다.

또 하나, 정대표는 수도권에서 심각한 열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과 경기·인천에서 박 전 대표는 각각 28.8%와 26.9%를 얻었다. 하지만 정대표는 6.5%와 7.5%를 얻는 데 그치고 있다. 여권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 수도권이다. 그런 수도권에서 이런 정도의 빈약한 지지로는 승부를 논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MJ 대망론’을 강하게 읽어줄 만한 징후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분석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지지율 급상승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어떤 일이든 긍·부정의 요인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상승세에 탄력을 붙일지, 이대로 정체되거나 사그라질지 정국 상황과 정대표의 정치력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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