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의문사·한상률 골프 회동…‘발로 건진 특종’ 줄 이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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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을 움직이나’ 등 기획 보도도 큰 반향


언론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특히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은폐되어 있는 사실을 세상에 끄집어내는 작업은 언론이 해야 할 최대의 사명이다. <시사저널>의 지난 20년 역사 또한 이와 같은 발굴과 특종의 연속이었다. 

1992년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이 이완용 명의로 남아 있는 땅 수천만 평을 되찾으려 한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제148호)했고, 이후 이 문제는 지금까지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이슈가 되었다. 1996년 3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미국이 전두환 정권의 권력 찬탈에 협조했음을 밝히는 극비 문서’를 공개(제332호)했다. 1997년 ‘청와대, 북한에 밀가루 극비 제공’ 사실을 특종 보도(제384호)한 것은 국회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본지의 편집국장 등을 고소하는 등 법정 소송까지 이어졌으나, 결국 본지 보도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김훈 중위 의문사 추적’ 보도(제477호)는 탐사 보도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이 보도로 인해 판문점 경비 부대원들이 북한측과 접촉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고, 이는 나중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본지는 2003년 6월 ‘노건평씨 주변의 수상한 3인방’(제710호)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처음 표지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2006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주수도 제이유 회장의 사기 행각 비리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제864호) 역시 <시사저널>이었다.  

<시사저널>은 안기부(현 국정원) 등 베일에 싸인 권력 기관에도 성역을 두지 않았다. 1998년 4월 ‘안기부 북풍 공작’을 보도(제440호)했고, 2002년 5월에는 국정원의 인적 청산 계획이 담긴 이른바 ‘숙청’ 명부를 단독 입수해 공개(제655호)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경제 권력’으로 통하는 삼성의 내부를 파헤치는 ‘삼성 구조본 대해부’(제811호)와 ‘삼성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나’(제830호) 기획 보도가 큰 화제를 일으켰다.

지난해 ‘유한열 고문 금품 수수’ 보도 후 관련자 구속되기도

최근에도 <시사저널>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아왔다. 지난해 8월 ‘유한열 고문 등 한나라당 인사 3명, 이권 청탁 명목으로 금품 수수’ 사실을 단독 보도(제982호)했고, 결국 관련자들은 구속되었다. 올해 1월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유임과 관련해 이상득 의원의 측근들과 골프 회동을 한 사실을 특종 보도(제1005호)했다. 이 보도로 한청장은 사퇴했다. 4월에도 ‘박연차 게이트 막후, 깨어진 형님들의 밀약’(제1016호) 보도에서 이상득 의원과 노건평씨가 대선 전부터 접촉한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국 선언 추진했다’라는 발굴 기사(제1029호)를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심층적이고 의미 있는 기획 기사도 <시사저널>의 힘이었다. 특히 국회 의정활동 평가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1990년 당시 13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성적표를 수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그 결과물로 내놓은 것은 정치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본지가 매년 창간 기념 특집으로 기획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여론조사는 <시사저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시대의 방향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차세대 리더’ 조사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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