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돕고 사회도 도왔기에 ‘평범한 철수’가 아니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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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최고 영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위 올라…10위 안에 전·현직 대통령이 5명으로 절반 차지


모든 사물과 현상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영웅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어느 순간 ‘필부’로 전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반면에 지극히 ‘평범했던 소시민’이 하룻밤 자고나서 일약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모습도 보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언젠가는 내려가야 하는 법. 영웅도 예외는 아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온 ‘낙성(落星)’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산 정상에 올라 영웅의 깃발을 꽂은 ‘혜성(彗星)’이 있다.

<시사저널>이 차세대 리더 여론조사를 처음 실시한 것은 지령 1천호를 맞은 지난해 11월이었다. 당시 조사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저마다 ‘2008년을 빛낸 영웅들’을 꼽았다. 이번에 1년이 지나 창간 20주년을 맞은 지금 시점에서 정치·경제·법조·예술·종교 등 우리 사회 30개 각 분야 전문가 1천5백명에게 다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 결과, 나온 응답은 지난해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우리 사회 영웅으로 거론된 대상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3백35명이었는데 올해는 4백18명이 언급되었다.

▲ ‘정도 경영의 대명사’로 불린다. 1년 여 동안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있었으며 앞으로도 대학 강단에 계속 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현재 IT산업은 소외감이 강하다”라고 말한다. ⓒ시사저널 이종현

영웅의 ‘서열’도 엎치락뒤치락했다. 더불어 새롭게 영웅 명단에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단에서 아예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조사 결과, 각계 전문가들은 ‘정도 경영의 대명사’로 불리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 1위로 꼽았다. 지난해 조사에서 12위였던 안교수는 1년 만에 무려 11계단을 뛰어 오른 셈이다. 1백18명(7.9%)의 전문가들이 안교수를 최고의 영웅으로 추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1백15명, 7.7%)은 안교수와 불과 ‘3표’ 차이로 2위에 올랐다. 그 다음으로 축구선수 박지성(1백13명, 7.5%), 고 김대중 전 대통령(99명, 6.6%),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9명, 5.3%),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73명, 4.9%), 이명박 대통령(70명, 4.7%),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56명, 3.7%), 고 박정희 전 대통령(51명, 3.4%), 오바마 미국 대통령(48명, 3.2%) 등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조사에서 각각 5위와 9위에 올랐던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올해 서거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2위와 4위로 순위가 몇 계단씩 올라간 것은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곱 번째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50위권에 정치인·스포츠인 각각 12명씩으로 가장 많아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스포츠 스타’인 박지성·김연아 선수는 지난해 1, 2위에서 순위가 다소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10위권 안에 들면서 영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안철수 석좌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위에 오른 것에 대해 “의외이다.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치인 것 같아 어깨가 더 무겁다. 예전에 박원순 선생(희망제작소 상임이사)과 ‘꽤 큰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박원순 선생이 소감을 말하며 ‘이게 상이 아니라 벌이다’라고 했는데, 이해가 된다”라는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지난 1년여 동안 대학 강단에서 젊은이와 마주했다. 그래서 느낀 점을 물었더니 “참 좋았다”라며 “요즘 젊은 사람들도 예전과 같이 도전 정신과 호기심이 왕성하고 사명감도 많다. 다만, 사회 구조가 젊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좁혀놓았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에 기여하려고 대학 강단에 서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IT산업에 대한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교수는 “현재  IT산업은 소외감이 강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 참모진 개편 때 IT특보를 신설하면서, 안교수에게도 그 자리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조직이 없으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IT특보는) 조직 자체가 없는 명예직이니까, 성과를 만들어내기 힘든 여건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름으로 갖고 있는 ‘원칙’ 하나를 소개했다.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것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자문위원을 맡는 것이었다. 따라서 IT특보를 맡으면 그 경계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그는 “토론 위주의 수업으로 바꾸고 지식보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대학 강단에 계속 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5월 서거한 노 전 대통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높은 지목률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분향소에는 무려 5백만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고, 현재도 자서전 등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3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고,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차지했다. 우리 국민은 그의 변함없는 ‘성실함’과 ‘겸손함’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형 스타’임에도 ‘안티’가 거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연아 선수는 지난해 우리 시대 영웅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에는 비록 6위로 순위가 밀려났지만 여전히 그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높기만 하다. 특히 2010년 2월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전 국민이 염원하고 있다.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11~20위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계 인사들이 골고루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정치인으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13위)가, 재계 인사로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12위)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19위),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16위) 등이 영웅으로 꼽혔다. 문화예술·스포츠인으로는 여행작가인 한비야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11위)과 야구선수 박찬호(15위), 가수 김장훈(18위), 골프선수 양용은(20위) 등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특히 한국인의 정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채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14위)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백범 김구 선생(16위)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해 ‘반짝 영웅’이 아닌 ‘한국인의 영원한 영웅’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을 보면 정치인과 스포츠인이 각각 12명씩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스포츠인 중에서도 골프선수가 다섯 명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경제인은 지난해 두 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여덟 명으로 제법 늘어난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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