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찬바람' 뚫고 달려가는 신세대 경영 엔진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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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최태원 SK 회장, 부동의 1·2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기업인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었다. <시사저널> ‘차세대 리더 300인’ 기획에서 조사 대상 전문가 34%가 이전무를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인물로 꼽았다. 이전무가 기업 부문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른 것은 삼성그룹의 차기 총수라는 후광 덕이다. 삼성그룹은 계열사 59개를 거느리고 한 해 매출 1백91조원을 거두는 국내 최대 기업집단이다. 삼성그룹 수출액은 한국 경제 총 수출액의 20%를 웃돈다. 삼성그룹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전무를 한국을 이끌 차세대 리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 국내 최대 기업집단 삼성그룹 차기 총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재판이 마무리되면서 경영권 승계 일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전무는 그동안 경영권 승계 과정이 순탄치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2007년 삼성전자 전무에 오르면서 COO(최고고객책임자)를 맡아 경영권 승계를 서두르는 듯했다. 비자금 사건 탓에 지난 2008년 2월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까지 받으면서 아버지 이건희 전 회장이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고, 이전무는 백의종군이라는 명목으로 러시아·인도·브라질 같은 신규 시장 개척에 나섰다.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에버랜드 전무까지 겸하자 삼성그룹 후계 구도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차기 총수로서 이전무의 입지는 명확하다. 그는 지금도 미국과 중국 지역 주요 거래선과 회의할 때에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참석하고 미국이나 일본 출장에는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동반한다. 혼자 미국이나 중국을 돌면서 애플·AT&T·닌텐도·소니의 최고 경영진과 면담하기도 한다.

지난 8월14일 이전무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서울고법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결심 공판에서 이건희 전 회장의 배임 혐의 유죄는 인정했으나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 이어 8월27일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피고인 허태학·박노빈 전 삼성그룹 고위 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영권 편법 승계와 관련해 지난 13년 동안 이전무를 끈질기게 괴롭혀온 논란이 일단락된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온갖 구설에 상관없이 (삼성의) 차기 후계 구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전무는) DJ 조문을 비롯해 경조사마다 이 전 회장과 어김없이 동행하고 있고, 그룹 경영 시스템 안에서 최고 경영진과 현장 실무자와 교류하며 (최고경영자로서) 경험과 인맥을 쌓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인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 2위에 오른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조사 대상 전문가의 24%가 최회장을 꼽았다. 최회장은 국내 제3위 기업집단 총수이다. 이재용 전무가 차기 총수라면 최회장은 현직 총수이다. SK그룹은 에너지·화학·통신·건설 분야에서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업집단이다. SK그룹 총 수출액은 38조7천억원이다.

최회장은 ‘SK 불사론’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SK그룹은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었으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회장이 내건 비전은 ‘글로벌 SK’이다. 최회장의 ‘글로벌 SK’를 향한 행보는 지난해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한 해 100일가량을 외국에서 보낸다. 지난해 비행기로 움직인 거리는 지구 세 바퀴에 해당하는 11만9천40㎞였다.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 시노펙이 추진하는 에틸렌 생산 공장 건설에 SK에너지가 참여하는 길도 마련했다.

최회장은 조만간 국내 주식 부자 5위에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최회장이 지분 44.5%를 보유한 SK C&C가 오는 11월11일 상장하면서 주식 가치가 6천6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국내 주식 부자들의 지분 가치 합계액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최회장은 1조38억원으로 12위를 차지했다. SK C&C가 상장되면 최회장이 소유한 지분 가치는 1조6천7백여 억원으로 늘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1조6천3백95억원)을 제치게 된다.

안철수 교수·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명성 확인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3위(22%)에 올랐다. 안교수를 차세대 리더로 꼽은 이는 11명이나 된다. 최회장과 비교해 1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안교수는 기업 총수라는 지위나 후광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에 힘입어 3위에 올랐다. 안교수는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창업해 백신 프로그램 부문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제 국내 벤처 분야의 모범 경영인을 뛰어넘어 한국 기업 경영인의 아이콘이 되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4위(14%)에 올랐다. 정부회장은 지난 8월21일 현대차 기획·영업 담당 부회장에 올랐다. 현대·기아차그룹 총수 자리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이 흔들리는 와중에 현대차와 기아차는 승승장구하면서 정부회장이 기아차 최고 경영진으로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생겼으니 ‘태자’ 책봉을 이참에 마무리한 듯하다. 

현대·기아차그룹 내부에서는 정부회장에게 더 이상 ‘경영 수업’이라는 수사를 붙이지 않는다. 김익환 전 기아차 부회장이 한때 정부회장 교육을 담당한 적이 있었으나 이제 정부회장 교육을 맡은 이는 없다.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는 “정부회장은 이제 개인 교수에게 경영 수업을 받을 단계를 넘어섰다. 최고경영자 신분으로서 회사 시스템 안에서 실무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차기 총수에게 필요한 경험을 쌓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회장은 차기 총수로서 포스트 MK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 밖에 기업인 부문에서 차세대 리더로 꼽힌 이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4.0%), 정태영 현대캐피탈 대표(4.0%), 김범수 NHN 전 대표(4.0%)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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