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이야기에 진정성도 꼭꼭 담아라
  • 정덕현 |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10.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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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 쇼’에서 ‘토크쇼’가 된 <강심장>이 사는 방법

ⓒSBS


<강심장>은 그 프로그램명이 의미심장하다. 먼저 <강심장>의 ‘강’에서 우리는 두 가지 뉘앙스를 발견한다. 그 첫 번째는 강호동이다. <야심만만 2>가 우여곡절 끝에 폐지되고 신설된 이 프로그램은 시작 전부터 ‘강호동 쇼’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중훈 쇼>가 시청률에서도, 또 평가에서도 참패를 면치 못하고 물러날 때, 그 반대급부로서 떠오른 것이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 팍 도사>였다. 박중훈이 주창했던 ‘예의 바른 토크’는 게스트에게만 예의 바른 토크로 끝났고, 반대로 <무릎 팍 도사>의 ‘불친절함’은 게스트를 불편하게 하지만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단지 불친절한 토크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시점에 ‘강호동 쇼’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은 실로 클 수밖에 없다. 첫 회에 이례적으로 17%에 달하는 시청률을 거두게 된 데는 바로 이 <강심장>의 ‘강’이 가진 ‘강호동 쇼’의 뉘앙스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강심장>은 ‘강호동 쇼’가 아니었다. 강호동이 MC인 토크쇼였을 뿐이다. 그것도 이승기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게다가 <강심장>은 게스트들을 잔뜩 초대해 벌이는 집단 대결 토크쇼의 형식을 지니고 있어 게스트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았다. 상대적으로 MC들은 진행자의 위치에 머무를 뿐이었다. 실제로도 강호동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무릎 팍 도사>처럼 프로그램 전체를 이끌고 가는 강호동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강심장>에서 존재감이 살지 않는 강호동이 낯설게 느껴질 판이었다. 그러니 ‘강호동 쇼’라는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클 수밖에. 기대감을 갖게 한 ‘강호동 쇼’의 뉘앙스가 시청률을 높여놓는 역할을 해냈지만, 그만큼 강호동이 가져야 할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강심장>의 ‘강’은 ‘강호동 쇼’가 아니라 ‘강하다’는 의미로 변환되었다. 강한 토크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껏 토크쇼에는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빅뱅의 G드래곤은 “멤버들과 잠적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승리가 사장에게 폭로했다”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2NE1의 씨엘은 “5년간 남자친구 금지를 선언한 사장님이 밉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식은 이른바 그 주의 ‘강심장’이 되기 위한 대결 형식이다. 그날의 주제에 대해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것이 더 강한가’를 즉석에서 방청객이 투표로 결정하는 식이다. 마지막에 남은 1인이 그 주의 ‘강심장’이 되는 것. 물론 여기서 ‘강한 것’이 토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춤이나 끼를 보여주는 것도 한 방식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강심장’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이경규가 진행한 <토끼열전>의 화려한 버전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폭로’와 ‘공감’을 섞어내야 강한 토크쇼로 자리 잡아

▲ 의 메인 MC인 이승기와 강호동(위). 에 출연 중인 게스트(아래).

그렇다면 이렇게 강한 토크쇼를 지향하는 <강심장>의 형식은 어디서 파생되어 진화된 것일까. 먼저 밝혀두자면 프로그램 형식이 기존에 있는 어떤 형식을 변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용된 형식이 갖는 새로움이 진화의 성격을 갖는가, 아니면 퇴행의 성격을 갖는가이다. <강심장>에서 떠오르는 프로그램은 <세바퀴>와 <스타킹>이다. 집단 게스트 체제를 갖고 토크와 끼를 선보인다는 점은 <세바퀴>를 닮았고, 스튜디오 경연대회 형식의 대결 구도를 취하는 것은 <스타킹>을 닮았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과 <강심장>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더 극명하다. <세바퀴>가 설문을 통한 퀴즈 형식으로 다양한 세대의 공감대를 끌어내려 했다면, <강심장>에는 그러한 퀴즈 형식 같은 공감 유도 장치가 따로 없다. 좀 더 강한 토크를 위한 대결 구도가 더 부각되고, 공감 포인트는 외적인 장치가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찾아지는 형식이다. 그 주의 ‘강심장’이 되기 위해서 게스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에는 자극적인 폭로도 있지만, 때로는 감동적인 사연도 들어가 있다. 아직까지는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한 강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실로 강심장이어야 할 만한 자극적인 폭로성의 이야기와, 심장을 울리는 공감의 이야기를 섞어내야 비로소 토크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강심장>은 우리가 토크쇼에서 흔히 보아왔던 자극적인 폭로성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물론 간간히 가슴 찡한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1회와 2회에 ‘강심장’에 등극한 이야기는 이러한 폭로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방송 생활을 한 지 3년 만에 결혼해 임신까지 하게 되자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아나운서 오영실이 겪었던 그 시절의 눈물겨운 사연이 1회의 강심장이 되었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의정의 뇌종양 투병기가 2회의 강심장이 되었다. 이처럼 토크가 가지는 폭로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강심장>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배분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연예인 사생활에 관련된 자극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거의 끝부분에 진정성 있는 이야기 한두 개로 마무리를 하는 느낌이다.

‘강호동 쇼’가 아닌 강한 이야기를 선택한 <강심장>이 이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심장을 뛰게 만드는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이다. 토크쇼가 가져야 하는 제1의 덕목은 소통이기 때문이다. 토크쇼는 그 기본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일으켜야 비로소 토크쇼로서의 어떤 기본이 마련될 수 있다. 이것은 아무리 예능화되어버린 토크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강심장>이 이제부터 다시 들추어 보아야 할 것은 <세바퀴>가 갖고 있고 <야심만만>이 갖고 있던 공감 유도 장치들이다. <세바퀴>와 <야심만만>이 갖고 있던 설문 퀴즈 같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수많은 게스트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공감의 장치가 있어야, 각각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지리멸렬해지지 않는다. 집단 게스트는 경쟁이라는 장점을 가지지만, 반면 소외라는 약점도 지니고 있다. 여러 명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늘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게스트란 사실 시청자들이 공감하면서 동시에 감정 이입을 통한 대리 만족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세바퀴>의 아줌마들이 보여주는 솔직하고 과감한 수다는 현실에서 쉬 내뱉지 못하지만 늘 속내로 갖고 있던 그 부분을 긁어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러니 그 게스트가 소외된다는 것은 그대로 시청자의 소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심장>이 진정한 토크쇼의 강자로 서려면 강한 이야기와 함께 심장이 뛰게 하는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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