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남북 정상회담을 바란다
  • 김동현 |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0.27 18: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히려 북·미 접촉 부담 덜어주는 측면 커…‘MB 방북 초청설’에 발끈하는 청와대에 어리둥절

▲ 지난 9월24일 미국에서 열린 G20 회의 첫날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문제를 놓고 한·미 간에 이따금 이견이나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북한을 두고 서울과 워싱턴 간에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나타날 때도 있고, 정보공유 과정이나 정책 공조 과정에서 실무자들 간 해석상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다. 아무리 가까운 동맹 관계이지만, 국익과 정책 목표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두 나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장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지난 10월15일 “김정일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했다”라고 발표했다. 청와대가 이를 과민하다 싶을 정도로 강도 높게 부인하자, 뒤이어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오해 때문에 생긴 일이다”라고 해명했다. 한국에서 이를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급기야는 청와대와 백악관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김정일의 ‘MB 방북 초청설’을 처음부터 다루지 않았다. 반면, 서울에서는 지금도 그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정보의 진원지는 처음부터 한국이었다. 미국이 독자적인 정보를 갖고 한 얘기도 아니었다. 청와대의 해명처럼, 지난 8월 북한의 김기남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방문하고 “한국이 6·15 선언과 10·4 합의문을 존중한다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되면 북·남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청와대가 당시에는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라고 완강히 부인했다가, 이번에 “그런 얘기가 그때도 있었다”라고 번복함으로써 신뢰성에 흠을 잡힌 것이 아쉽다.

지난 10월10일 한·중 정상회담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면 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라는 얘기를 했고, 이를 정보 공유 차원에서 미국측에 전달했는데, 이것이 미국 국방부 관리에 의해서 확대되었다는 것이 당초 청와대의 해명이었다. 청와대의 ‘초청 사실’ 부인이 있은 후 백악관이 직접 해명한 것은 의전 측면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었다. 북핵 문제 해결에 한국의 협력이 절대로 필요한 미국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서울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은 지금 남북 정상회담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그동안 확고해 보였다. 즉 “진정성도 없는 만남을 위한 만남이나, 정략적·정치적·전술적 고려를 배경으로 한 회담은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15일에서 20일 사이 북한 대남 라인의 핵심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이 베이징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상당히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예민할 정도로 매우 강경하게 반응하는 상황에 대해 워싱턴은 의아해하고 있다.   

‘통미봉남’ 경험한 한국과 엇박자 낼 수 있는 것은 당연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월4일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에 한·미 간에 엇박자를 낸 것처럼 보인 또 다른 사건으로 이대통령의 ‘북핵 일괄 타결 방안’, 즉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의 제안도 있었다. 지난 9월22일 뉴욕에서 이대통령이 미국 외교협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이 제안을 하자, 같은 날  한미·외무장관 회의를 막 끝낸 켐벨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가 “그랜드 바겐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라고 했고, 9월30일 이대통령은 “미국의 아무개가 그걸 모른다고 하면 어떤가”라고 받아친 적이 있다. 만약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그랜드 바겐에 대한 설명이 조금만 있었어도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외무장관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던 중요한 용어를 알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한·미 공조는 다시 한 번  삐꺽거리는 마찰음을 냈다.

한·미 간의 대북 정책 기조는 큰 흐름에서는 변함이 없다. 휴전 후에는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는 것이었고, 북한의 핵 개발 이후에는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있다. 한반도 내에서 한·미 동맹의 역할은 핵 억지력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비해서 확장된 억제력 범위 안에 핵 전력, 재래 군 전력과 미사일 방어력을 구체화하는 것도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 관계가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불가피한 조치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분명하다. 첫째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추구한다. 둘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6자회담의 부활을 원하며, 북한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준수하고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에 응할 것을 원한다. 넷째 북한이 다자회담에 돌아와서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까지 현재 가하고 있는 유엔 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입장에 차이가 없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도발 행위를 거듭하던 올봄만 하더라도 워싱턴과 서울은 다 같이 김정일의 건강 위기설과 승계 문제,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유야 어떻든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유화 공세를 취하고 있다. 북한 내의 위기설도 잦아들었다. 북한은 대화를 하자고 나서는 것이다.

미국은 벌써 한 달 이상 북·미 양자회담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막상 북한이 초청한 보스워즈 대사의 방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3주 전만 해도 금방 열릴 것으로 전망되던 북·미 양자회담은 아직도 오리무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곧 북한의 외무성 리근 미국사업국장이 미국을 방문하고, 샌디에이고와 뉴욕에서 미국 관리들을 포함한 북한 전문가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 설사 리근이 국무부의 성 김 특사와 만나서 협의를 한다 해도 그 만남의 결과만으로는 보스워즈의 방북 문제가 결정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이 북·미 회담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1994년 ‘통미봉남’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히려 북한이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반대하지 않는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북·미 접촉에서 그만큼 부담을 덜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더 고심하는 부분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도 이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