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내년 봄에 열린다?
  • 감명국·안성모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0.2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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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 전문가들 “막후 접촉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 크다”…일부는 “3월이 최적기” 예상

▲ 지난 8월21일 북한 조문단을 접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왼쪽부터 원동연 실장, 김양건 부장, 김기남 비서. ⓒ연합뉴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갑자기 무르익고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과)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다”라는 원칙적인 입장만 표명해왔다. 그런데 청와대가 최근에 보인 일련의 과민 반응은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지난 10월14일(미국 현지 시각) 월리스 그렉슨 미국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펄쩍 뛰었다. 10월20일에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장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극비 접촉설을 보도했다. 그러자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라고 일축했다. 10월22일에는 KBS <9시 뉴스>에서 김양건 부장과 국내 고위급 인사와의 싱가포르 접촉설을 또 보도했다.
청와대도 이번에는 “확인해줄 수 없다”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해 접촉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국내 대다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남북 간 막후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 수석위원은 “남북 간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접촉을 통해서 과연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느냐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정수석위원은 “정상회담의 경우 북측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 남측은 아직 소극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만큼 회담 개최 문제가 논의되었을 수 있지만, 조만간 성사될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남북 간 비밀 접촉설을 확신하는 이유는 김양건 통전부장과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이 최근 중국 베이징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부장 일행이 지난 10월15일 중국 베이징의 서우두 공항에 입국하는 장면이 한 일본 TV의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었다. 이어 엿새 뒤인 20일 평양으로 되돌아가는 모습 역시 다른 취재진들에 의해 포착되었다.

김양건 통전부장과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이 누구이기에…

▲ 이상득 의원(왼쪽)과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의 극비 접촉설 보도에 청와대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김부장이 어떤 인물이기에 그의 중국 방문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남북 간 비밀 접촉설이 불거지는 것일까. 통일전선부장은 우리의 통일부장관과 견줄 만큼 북한의 대남 정책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재 남북 간 민간 교류·경제 협력 등을 포괄하는 아태평화위원회의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김부장은 우리에게도 비교적 낯익은 얼굴이다. 남북 접촉 때마다 항상 김정일 위원장 곁을 지켰다. 한마디로 측근 중의 최측근인 셈이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우리측에서는 통일부장관·국정원장 등 4~5명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배석했지만, 북한측에서는 김부장 단 한 명만이 김정일 위원장을 배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의 막후 역할 역시 김부장이 담당했다. 그는 2007년 8월2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남한측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만나 극비리에 ‘8월 하순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이후 당 조직지도부 등의 주도로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 등 대남 분야 실력자들이 대거 숙청되었지만 김부장은 변함없이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북한의 유화 정책이 본격화되던 8월 이후 김부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8월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위원장과 면담할 때에 그가 배석했다. 8월16일에는 역시 평양을 방문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위원장 간의 오찬 면담 때도 배석했다. 그리고 닷새 뒤인 8월21일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 조문을 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면서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10월5일 평양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김위원장 간의 회담 자리에도 그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김부장 1인에게 통전부 총책임은 물론, 아태평화위 위원장까지 겸하게 한 것은 김위원장이 사실상 그에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남 관계에서 거의 전권을 주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부장과 베이징 방문에 동행했던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김부장이 원실장을 대동한 것은 남북 관계와 관련된 모종의 임무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라는 분석이 있다. 원실장은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정상 선언문을 작성할 때 북측의 실무 책임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20년간 남북 접촉 막후에서 은밀하게 활약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세현 전 통일장관은 “원실장은 노동당 통전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다. 1990년대 초 남북 간 총리급 회담이 있을 때부터 실무를 도맡아왔다. 남북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면 예전 일부터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KBS는 10월22일 보도에서 ‘지난 15일 베이징에 도착한 김부장이 대남 전문가인 원실장과 싱가포르로 건너가 우리측 통일 분야 고위 관계자와 접촉했고, 이 접촉은 북한이 먼저 제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베이징 현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자는 현재 베이징에 오랫동안 체류 중인 한 국내 인사와 어렵사리 접촉했다. 그는 대북 사업가로 지난 정부 시절 남북 간 고위 인사의 비공식적 접촉을 주선하는 이른바 ‘밀사’ 역할을 맡기도 한 인물이다. 그 역시 남북 간의 접촉이 있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e메일을 통해 이루어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접촉은 했다고 보는 것이 베이징의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 수준에 대해서는 ‘타진’ 정도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 상당히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사실을 귀띔했다. 지난 9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전후해서 북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남측에 “이렇게 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없다”라는 식의 강경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은 아무 대가 없이 거의 무료로 베풀어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속 남한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애써 성의를 표시해준 통전부나 아태위의 북한 내 입지를 쪼그라들게 하는 것이라는 강한 불만이 제기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 불거지고 있는 베이징 혹은 싱가포르의 남북 접촉설은 그 후속 수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순으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먼저 접촉을 강력히 원했다는 KBS측의 보도와도 통하는 대목이다.

왜 하필 노출 위험 큰 베이징 택했을까는 의문

▲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양측이 싱가포르에서 접촉을 했다면, 왜 김부장 일행은 굳이 노출 확률이 높은 중국 베이징을 경유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인사 역시 “대개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갈 때는 홍콩을 통해서 가지, 얼굴이 노출될 것이 뻔한 베이징을 경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라고 밝혔다.
중국의 막후 역할을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당초 이명박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라는 입장이었다. 이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MB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지금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옳게 가고 있다. 북한이 먼저 대화를 하자고 나서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주도권을 우리가 쥐게 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역시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도 10월21일 도산아카데미 세미나에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남북 당국 간 정상회담은 (현재) 논의되지 않고 있다”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김부장과 실질적인 접촉이 있었다면 우리측 인사는 누구였을까. 이상득 의원이 먼저 불거지기도 했고, 원세훈 국정원장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점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북 사업가 역시 “통일부도 국정원도 모두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보다는 청와대와도 직접적으로 선이 닿고, 현인택 장관과도 선이 닿는 그런 인물이라고 본다”라며 MB 네오콘 중의 한 인사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만약 성사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 물론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자체를 낮게 보는 측도 많다. 앞의 대북 사업가는 “갑자기 정상회담이 임박한 것처럼 불거져나오지만 쉽지 않다. 무엇보다 워싱턴에서 썩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07년에도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불만과 방해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도 역시 북·미 양자 간의 판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한이 끼어드는 것은 자칫 북한 김정일의 전략에 말려들 수도 있다고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성 출신인 김동현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는 “2년 전 부시 행정부와 지금은 다르다. 남북 간의 접촉이 오히려 북·미 접촉에 나서는 미국측의 부담을 훨씬 덜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가 시작되는 내년 3월을 남북 정상회담의 최적기로 꼽았다. 양교수는 “고위 당국자 회담을 먼저 열어 남북 관계에 대한 제반사항을 논의하는 가운데 정상회담에 대한 탐색 과정도 거칠 것이다. 그래야 정상회담의 투명성을 확보해 국민의 지지와 국제 사회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라고 지적한 후 “정상회담은 내년 3월이 적기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6월에 지방선거가 있는데, 그보다 더 뒤로 밀리면 대통령 권력에 누수가 있을 수 있다. 북한도 내년 10월에 당 창건 65주년 행사가 있고, 김위원장의 건강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NPT 체제 개선 회의가 5월에 개최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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