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지지율, 아슬아슬한 ‘고공 비행’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09.10.2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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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 정책 등 체감도 낮고 재·보궐 선거 분위기도 한나라당에 불리해 ‘진수냐, 허수냐’ 논란

▲ 이명박 대통령이 10월11일 청와대 버들마당에서 열린 청와대 인근 주민 초청 ‘작은 음악회’에 참석해 공연이 끝난 뒤 주민들과 다과를 함께하며 환담하고 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MB)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다. 대통령 본인까지 “지지도가 올랐다고 오만하면 안 된다”라며 참모들에게 경고까지 할 정도이다. 수치로만 보면 이것은 확인된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10·28 재·보궐 선거에서 고전하는 한나라당 때문에 이 기정사실이 신뢰도를 의심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허수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달 중순부터 현재까지 발표된 각종 MB 지지율 조사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9월15일 39.2%(모노리서치·ARS), 9월23일 44.5%(여의도연구소·ARS), 10월6일 44.6%(한국사회여론연구소·전화 면접), 10월12일 54.3%(R&R·전화 면접), 10월13일 46.1%(한길리서치·전화 면접), 10월14일 43.9%(리얼미터·휴대전화). 한마디로 고공비행이다. 

MB 지지율을 읽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체감도와 기대감을 구분하는 것이다. MB 지지율이 올라간 것을 놓고 흔히 중도 실용 행보나 친서민 정책을 거론한다. 그러나 복선이 있다. 서민이 생활 속에서 실제 체감할 정도로 친서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초,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친서민 정책들이 생활에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82.3%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15.6%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는 친서민 정책이 아직까지 서민들이 마음으로 공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친서민 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체감도와 다르다. 지난 8월의 KSOI 조사에서 MB의 친서민 정책에 대해 기대가 된다는 응답이 44.3%였다. 두 조사를 종합하면, 아직 체감은 되지 않으나 기대는 하고 있다는 것이 여론의 흐름이다. 이것이 지지율 상승을 끌어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 지지율의 고저(高低)는 강약(强弱)과 별개의 차원이다. 고저가 지지율(率) 개념이라면, 강약은 지지성(性) 개념이다. KSOI 조사에 따르면, MB의 지지율은 높으나 지지성은 낮다. 소극적 지지 내지 조건부 지지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언론의 영향이다. 경제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에는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면 국민들의 감정만 상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긍정 요인이다. 동일한 요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는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박수 효과’이다. 잘한다고 계속 박수를 쳐주니, 옆에 있던 사람까지 그가 정말 잘하는 것처럼 보게 되는 것이다. 공연에서 누군가 박수를 열렬하게 치면 덩달아 박수를 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박수 효과가 있다는 것은 현재의 MB 지지율 구성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이나 경험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나타나는 밴드왜건 효과처럼 분위기를 추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박수가 잦아들면 분위기는 얼마든지 가라앉을 수 있는 것이다. 보수 언론이 의욕을 보이는 방송 진출 허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을 보면 여권도 이런 사실을 알아채고 활용하는 듯하다.

이런 질(quality)의 높은 지지율은 견제론을 누르지 못한다. 오히려 견제의 필요성을 더 부각시키기까지 한다. 기대를 갖게 하지만, 전례에 비추어볼 때 언제 과거의 기조로 돌아갈지 모른다. 따라서 과거의 잘못된 행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면 여권이 계속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반인의 이런 입장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KSOI의 조사에서, 재·보궐 선거에서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46.8%로 나타났다.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라는 의견은 39.4%였다.  

지지율, 수치 말고 흐름으로도 읽어야

한나라당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초반에 고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컨셉트가 단적인 예이다. 이번에 다섯 개 국회의원 선거구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이 표출하는 컨셉트는 퇴행적이다. 중도 실용이나 친서민으로 국정기조를 바꾸겠다고 하는 터닝 흐름을 구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색시키고 있다.

지난 총선 공천에서 아예 탈락시킨 인사를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에 앉히겠다는 이유로, 그것도 지역구를 바꿔 출마시키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명약관화하다. 공천 경합에서 밀린 사람들을 정리하지도 못했다. 그들부터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꼴마저 연출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무려 일곱 번 공천을 바꾼 인물도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다. 그동안 지역을 닦아온 사람은 나 몰라라 내팽개쳤다. 지난 총선에서 똑같이 낙선했는데, 어떤 후보는 다시 공천해 주고 어떤 후보는 밀어냈다. 삼척동자가 보아도 그림이 좋을 수가 없다. 오만한 여당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3류 공천이다.

“정당이란 선거를 통해 후보자를 공직에 취임시키기 위한 정치 집단이다.” 정당 이론의 대가 사르토리(Sartori)의 말이다. 이 말에는, 정당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후보로서 표출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10·28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내세운 후보들에게서 읽을 수 있는 정체성은 구태나 정체, 혹은 잡탕이다. 포용도 아니고, 겸손도 아니다. 경제나 변화는 더욱 더 아니다. 이런 정체성은 MB 지지율을 끌어올린 흐름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것이 MB 지지율이 선거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MB 지지율의 허실을 재·보궐 선거에서의 성패로만 가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선이나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을 지지하는 층에서는 당연히 투표 동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의석 몇 개 때문에 흔들릴 가능성이 없다는 정황도 이런 심리에 기여한다. 반대로, 반대층에서는 그동안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참여하기 마련이다. 선관위가 발표한 지난 4·29 재·보궐 선거 투표율에서 이런 흐름이 확인된다. 예컨대, 부평 을에서 50세 이상 연령대의 투표율과 40대 이하 세대의 투표율 격차가 줄어들었다.

어떤 여론조사에서든 지지율을 수치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또, 변화가 있으면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특히 지지‘율’과 지지‘성’을 착각하면 안 된다. 10·28 재·보궐 선거에서 여권의 초반 약세가 던지는 교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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