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 소비’ 3색 지대를 가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11.0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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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대변하는 ‘청담동’, 다양한 개성이 모이는 ‘홍대 앞’, 한국 속 외국 ‘이태원’

▲ 청담동 압구정로 주변에는 명품 매장들이 늘어서 있다. 복합편집매장인 10꼬르소 꼬모는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명품 아이템을 구비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문화는 소비되는 과정에서 창조된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 청담동, 홍대 앞, 이태원 거리는 문화가 소비되고 트렌드가 창조되는 곳이다. 한국 소비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확장시키는 중심이기도 하다. 이곳의 주인공은 젊은이이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문화를 소비하고 향유하고 만들어낸다. 이 문화 해방구 세 곳은 지리적 위치만 다른 것이 아니라 특성도 다르게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있다. 이곳들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개성들을 찾아가다 보면 한국 소비 문화의 현주소를 발견하게 된다.

청담동 청담동은 강남 소비 문화를 대변하는 곳이다. 압구정동이 특색 없는 유흥거리로 변하면서 상류층 소비 문화는 이웃 동네인 청담동으로 넘어갔다. 압구정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지금은 학동사거리에서 도산대로변까지 확장했다. 압구정 대로변은 화려함을 대변한다. 루이뷔통, 구찌, 페라가모 등 해외 명품 브랜드와 10꼬르소꼬모 같은 복합편집매장, 지춘희·박윤수 같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대형 매장이 죽 늘어서 있다. 뒤쪽 골목으로는 5~7층 규모로 독특한 모양을 가진 건물에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기 어려운 간판을 단 가게들이 위치해 있다. 이곳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밀 수 있는 대형 뷰티숍, 소규모 화랑, 멀티 패션 가게들이다. 이른바 ‘청담동 사모님’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청담동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의 낮 시간에는 명품백에 명품옷을 입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브런치를 즐기고 뷰티숍을 향하는 젊은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담동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레스토랑은 가장 저렴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청담동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려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청담동에서 논다는 것은 그만큼의 돈을 소비하러 간다는말과 다르지 않다. 청담동 거리에는 고급 카페, 레스토랑, 클럽들이 들어서 있다. 큰 규모의 홀에 인테리어도 화려하다. 한 건물에 카페, 레스토랑, 고급 와인바를 모두 갖추며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트라이베카 3층에 위치한 카페 ‘그레잇’은 상부를 통창으로 구성해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오도록 하고 안에 정원까지 꾸며 놓았다.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대학생 정 아무개씨(23)는 “뷔페식으로 된 브런치를 먹으려고 왔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맛과 분위기를 감안하면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한 번 오면 편안하고 한적한 분위기에서 두세 시간씩 수다를 떨고 가기 때문에 오히려 실속 있다”라고 말했다.

청담동은 대중교통 체계 속에서의 섬과 같은 곳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기에 불편하고 걷기에는 넓은 지역이다. 그래서 젊음의 거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발레 파킹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주차 요원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사람의 흔적을 대신하는 것은 자동차들이다. 이곳에서는 국산차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벤츠, 아우디, BMW, 렉서스 등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차가 되어버린다. 페라리, 포르쉐, 벤틀리 정도는 되어야 눈길이 간다. 밤이 되면 이런 풍경이 더 뚜렷하다. 밤의 주인인 클럽, 와인바, 가라오케 앞에는 차들이 죽 늘어서고 주차요원은 바빠진다. 청담동 클럽을 가끔 찾는다는 개인 주식 투자자 전 아무개씨(37)는 “청담동 클럽 VIP룸에는 메뉴판에 가격이 나와 있지 않다. 그날그날 부르는 것이 가격이 된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주로 영업하는 일반적 클럽과 영업 시간을 달리하는 애프터클럽이 인기이다. 이곳들은 새벽 1시 이후에 시작해 오전 10시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클럽에서의 유흥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홍대 앞 홍대는 다양한 개성이 표출되고 예술과 함께 발전한다는 점에서 젊은이들 거리 본연의 모습에 가깝다.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어온 거리이다. 홍대 패션은 다양성으로 대변할 수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감각이 드러난 옷 가게와 액세서리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홍대 외곽에 자리 잡은 옷 가게 ‘모모걸’의 사장 모모걸(29·예명)은 “홍대에 있는 패션 가게는 개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골목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만드는 것이 홍대 패션 가게의 힘이고, 그 힘은 제품의 개성에서 나온다”라고 말한다. 홍대 젊은 예술가들의 개성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펼쳐지는 프리마켓이다. 이곳에서는 젊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직접 만들어온 창작 예술품과 소품들이 판매된다. ‘레디메이드’되지 않은 단 하나의 소품이 명품 아이템 보다 더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 홍대 앞이다.

▲ 홍대 앞에 있는 한 라이브클럽 입구에 공연할 밴드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안내판이 서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핸드페인팅 작가 오두영씨(20)는 “홍대 앞에는 자유가 있다. 그렇기에 나 같은 영세한 작가들도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홍대는 뭐든지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개성있게 꾸미고 다닐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두영씨는 신발, 의류, 액세서리 등에 손으로 직접 디자인을 그려넣어 단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주는 디자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여대생 정 아무개씨(24)는 홍대 앞 쇼핑의 재미를 ‘보물 찾기’로 설명했다.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한 물건을 찾아내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홍대 앞 하면 역시 클럽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클럽에서 맥주 한 병을 들고 음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홍대 앞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티켓 하나로 여러 클럽들을 방문할 수 있는 클럽데이에는 많은 사람이 몰린다.

홍대 클럽, 그중에서도 라이브클럽은 인디음악의 싹을 틔우고 부흥시킨 보금자리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서 음악적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많은 음악인이 홍대 클럽에서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다니는 이동근씨(26)는 “대중을 따라 가지 않고 소신있게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을 만나고 싶어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찾는다. 얼굴도 모르지만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과 신나게 머리를 흔들어 대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라고 말했다.

홍대 앞이 젊은이들 거리로 대중화되면서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문화는 조금 약해졌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작은 규모에 개성을 듬뿍 담아냈던 카페, 식당, 음반점 등이 대형 프랜차이즈들에 밀려나고, 클럽들도 최근 유행하는 음악 장르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홍대 앞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토박이 오 아무개씨(26)는 “대학로나 신촌등 다른 번화가들과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았고 조용한 분위기였는데 너무 번잡해진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젊음이라는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한달 전까지 홍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한 이병한 MWTV(이주노동자방송) 대표는 “자유롭고 다양하다는 점이 홍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금은 외부 자금이 유입되어 임대료가 비싸지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는 여전히 젊은이들의 거리라 부를 만하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이태원은 본래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거리로 알려져 있었다.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 있는 코리아타운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한국적으로 바꾸지 않아 외국 본연의 입맛과 내부 장식을 느낄 수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많은 이색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거리로 바뀌었다. 유학과 연수로 외국 문화를 현지에서 직접 접해본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어색함은 줄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이태원 랜드마크인 해밀턴 호텔 수영장을 자주 찾았다는 심은경씨(23)는 “이국적인 느낌이 이태원의 매력이다. 해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외국인이 가끔 길을 물어보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다”라고 말했다. 외국 생활올 오래 한 경우라면 추억을 떠올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미국 생활에서 돌아왔다는 조 아무개씨(42)는 “미국 스타일의 식당이 많아서 만족스럽다.

다른 지역에 같은 체인점이 있어도 이곳으로 오는데, 미국에서 먹었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해서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국적 분위기에 청담동에서 건너온 상류 소비 문화가 결합되었다. 거품을 빼면서 독특한 스타일은 유지한 이태원식 소비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인도 식당 모굴, 탤런트 홍석천이 운영하는 마이타이 등이 있는 해밀턴 호텔 뒤편 골목은 이태원식 고급 소비 문화를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사람이 많지 않고 분위기 좋은 곳이 많아서 이성에게 작업을 걸기 좋은 분위기이다. 식사를 하고 2차로는 주로 샴페인을 마시러 가는데 메뉴를 줄줄 꿰고 있다. 그래야 여자들에게 잘 보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이 변했다고 하지만 이태원로를 경계로 해서 소방서 쪽 골목은 과거 이태원 모습을 버리지 못했다. 젊은 여성과 트랜스젠더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는 유흥업소들이 욕망을 색다르게 분출하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태원은 하나의 색깔로 단정 짓기는 어려운 거리이다. 굳이 말하자면 국내와 해외, 상류와 하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소비 문화 집합소라고 하겠다.

▲ ①이태원 음반점에는 국내 음반점에서 찾기 어려운 음반도 있다. ② 해밀턴 호텔 뒤편 골목에는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세 곳 모두 각기 다른 색깔로 눈길 끌어

청담동, 홍대 앞, 이태원은 각기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닌 만큼 모이는 사람의 특징도 다르다. 홍대 앞은 젊은이들 소비 문화의 첫 정거장이다. 젊은 시절,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전에 한 번쯤 놀아봐야 하는 곳으로 통한다. 그래서 다양한 개성과 풋풋함이 여전히 남아 있는 홍대 앞에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과 사회 초년병들이 많이 모인다.

청담동은 폐쇄적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만을 위한 유희 공간이다. 청담동에서 놀이 문화를 시작한 사람들은 좀처럼 이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 압구정처럼 부모 재력에 기댄 부잣집 아이들만의 놀이 공간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이 바탕이 된 젊은 리더들이 연애 또는 비즈니스를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홍대 앞과 청담동에 비해 이태원을 찾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언제나 찾을 수 있지만 항상 찾게 되는 공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대 앞, 청담동, 이태원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그 자체를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 짓는다. 블랙베리를 가지고 다니고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주말에는 뮤지컬 <시카고>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대중문화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듯 홍대 앞의 어느 카페와 클럽, 청담동의 어느 레스토랑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문화적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패션칼럼니스트 배정현씨는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가보았는지, 즐기는지, 질렸는지를 대화를 통해 알아보고 문화적 취향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신사동 가로수길은 서울 속 유럽 거리이다. 신사동 제이타워에서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까지 7백m 남짓한 왕복 2차선 길가에는 영국 런던 피커딜리 스트리트나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 테라스가 줄지어 있다. 유럽 거리처럼 가로수길에는 네온사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모던한 느낌을 준다. 안영민씨(26·포토그래퍼)가 잡지에 게재할 거리 풍경을 촬영할 때 이곳을 자주 찾는 것은 모던 유럽이 주는 느낌을 담기 위해서다. “압구정동, 삼청동, 홍대 앞 같은 유명 거리가 있지만 가로수길만큼 사진을 찍었을 때 모던한 느낌이 나는 곳이 없어 거리를 촬영할 일이 있으면 가로수길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초저녁 길 따라 늘어선 은행나무에 조명이 켜지면 직장인들이 레스토랑과 와인바로 몰린다. 낮의 한산함이 물러간 자리에 저녁의 분주함이 채워진다. 옷 가게 쇼윈도 주변에서는 검정 레이스로 치장한 망사 블라우스와 레깅스를 차려입은 여성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가로수길 초입에 있는 커피숍 커피스미스 건물은 가로수길 명물로 자리 잡았다. 건물 내·외벽 재질인 회색 시멘트는 나무 바닥과 세련되게 어우러진다. 커피스미스에서는 출입문과 지붕이 보이지 않는다. 테라스가 1층 매장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커피숍과 길의 경계가 사라졌다. 스타벅스, 탐앤탐스, 카페 네스카페 같은 커피 체인점도 가로수길에 맞게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가로수길을 찾는 이들은 매장 안쪽보다 테라스를 선호한다. 커피숍 안쪽 구석 자리를 선호하는 한국인 취향은 가로수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김혜라씨(22·대학생·서울시 동작구 상도동)는 “커피숍 테라스에 앉아 길거리 풍경과 행인을 보며 가을이 담긴 커피를 음미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 가로수길을 자주 찾는다”라고 말했다. 5년 전가로수길에 자리한 터줏대감 그랜드마더는 가게를 개조해 테라스를 마련했다. 그랜드마더 김세윤 매니저는 “손님들이 테라스처럼 밖과 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창가 쪽 자리를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옷 가게도 길과 이어진다. 테라스가 가게와 길을 구분하는 경계를 없앴다. 옷 가게 103에서도 테라스가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텅 빈 테라스와 창문 사이로 살며시 내비치는 가게 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은 장연정씨(27·쇼핑몰 운영)는 “옷 자체도 다른 곳에 비해 예쁘고 독특한 것들이 많지만, 인테리어에 무척 신경 쓴 것이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에 자리한 액세서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씨(23)는 “사장이 가게 안 서랍장 하나까지 직접 디자인하고 재료를 골랐다”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의 주제는 길이다. 길에서 모티브를 찾고 길과 소통한다. 가로수길에는 길이 함유한 개방이라는 모티브가 살아 숨쉬고 있다. 오선아씨(26·회사원)는 “서울 시내 유명 거리들이 욕구가 분출되고 해소되는 곳이라면 가로수길은 트임이 주는 여유로 인해 욕구가 다듬어지고 정돈 되는 곳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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