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선수 징계 감면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 허재원 |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 ()
  • 승인 2009.11.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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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출장 정지’ 받았다가 9경기 쉬고 출전해 논란

▲ 지난 7월13일 열린 KBL 기자회견에서 대구 오리온스 김승현 선수가 이면 계약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면 계약 문건 파문으로 18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던 김승현(31ㆍ대구 오리온스)이 11월7일 전주 KCC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개막 이후 10경기만이었다. 결국, 김승현에게 부과된 제재는 9경기로 일단락되었다.

10개 구단 단장들로 구성된 한국농구연맹(KBL) 이사회가 지난 11월2일 회의를 열고 ‘김승현의 징계를 종전 18경기 출전 정지에서 9경기 출전 정지로 낮춘다’라는 결정을 한 결과이다. 이미 농구팬들은 예상되었던 절차라며 혀를 차고 있다. 관계자들마저 KBL이 프로농구의 권위를 스스로 저버렸다며 개탄하고 있다. 취임 당시부터 농구인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전육 총재는 아무 원칙도 없는 ‘3류 인사’로 전락한 느낌이다.

■ KBL이 김승현 징계를 풀어주기까지

김승현 징계 감면을 둘러싼 은밀한 작업은 오래전부터 물밑에서 진행되어왔다. 지난 10월12일 이사회 때 이미 심용섭 오리온스 단장이 선처를 호소했다. 포인트가드가 전무하다시피 한 오리온스의 전력이 너무 약하다며 ‘전력 평준화’라는 명분을 들고 나섰다. 당시 다른 구단 단장들은 “시즌 개막도 하기 전에 김승현의 징계를 풀어주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라며 묵살하다시피 했다.

동시에 오리온스 관계자들은 일부 담당 기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은근슬쩍 ‘김승현 사면’에 대한 여론을 파악했다.

반응은 싸늘했다. 김승현과 오리온스가 저지른 잘못에 비해 18경기 출장 정지도 너무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은 김승현이 팀 전력에 얼마나 보탬이 되느냐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무엇보다 김승현 징계가 사면될 경우 이미 정설이 되다시피 한 전육 KBL 총재와 심용섭 오리온스 단장의 ‘밀월 관계’가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결정은 내려졌다”라는 추측이 대세를 이루었다. 단장은 이사회에서 말도 안 되는 사면론을 거론했고, 구단 관계자들은 거센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한데도 담당 기자들의 호응을 부탁했다.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전육 총재 만들기에 앞장섰던 심단장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결정되어 있는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김승현 징계는 KBL 재정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그리고 사면은 10개 구단 단장 모임인 이사회에서 이루어졌다. KBL 징계를 결정하는 고유 기구인 재정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이사회에서 뒤집은 모양새 자체가 기형적이다. “왜 이런 곤란한 사안을 단장들이 떠맡아야 하느냐”라는 푸념도 일부 단장 사이에서 나왔다고 한다. 민감한 사안을 이사회에 떠넘긴 무책임한 총재, 그러나 소신대로 반대 의사를 밝힐 수만은 없었던 무기력한 단장들. 이들 모두가 이번 사건의 공범인 셈이다.

▲ 지난 2월1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김승현 선수가 슛 동작을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 그들의 ‘잘못된 만남’의 시작은?

그렇다면 도대체 전육 총재와 심용섭 단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기에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전육 총재는 한 케이블TV 사장으로 있을 때인 2000년대 중반 케이블TV방송협회 산하 방송채널사업자(PP) 협의회장을 겸임했다. 당시 이 협의회의 부회장이 심용섭 온미디어 대표였다. 농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체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몇 년 뒤 한국농구연맹(KBL)을 장악한 셈이다. 심용섭 단장이 2006년 7월 오리온스 농구단의 수장이 되었고, 김영수 전 KBL 총재의 임기가 끝난 지난해 전육 총재를 신임 총재로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심단장의 저돌적인 추진으로 전육 총재는 ‘3대 프로 스포츠’ 중 하나인 프로농구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가문의 영광이나 다름없는 감투를 씌워준 심단장에게 큰 빚을 진 것이요, 심단장 역시 자신과 막역한 인사를 총재 자리에 앉히면서 앞으로 끊임없는 혜택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막대한 혜택의 첫 테이프가 ‘김승현 사면’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심단장은 취임 직후부터 저돌적인 성격으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다. 취임 이듬해인 2007년 이충희 감독을 선임했다가 7개월 만에 사표를 쓰게 했고, 2008년에도 이와 같은 과정은 김상식 전 감독에게 똑같이 일어났다. 김상식 전 감독이 연패에 빠지자 심단장이 감독을 불러놓고 “다음 경기에는 벤치에 앉지 말고 관중석에서 문제점을 분석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올해에는 ‘김남기 감독-김유택 코치’로 새로운 코칭스태프 진용을 꾸렸다. 취임 이후 매년 감독을 임명하는, 어느 구단에서도 볼 수 없는 코미디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앞뒤 가리지 않는 심단장의 저돌적인 성향과 취임 당시부터 결코 벗어버릴 수 없었던 전총재의 태생적 한계가 ‘3류 저질 드라마’로 비유되는 김승현 사태를 현실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 과연 김승현은 죄인인가

손바닥 뒤집듯 징계를 감면해주는 KBL의 가벼운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3년 몰수 경기 사태 때는 SBS(현 KT&G) 구단에 내린 1억원의 제재금을 0원으로 면제해주었고, 2006년 동부 소속이던 양경민의 36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21경기로 감면한 적이 있다. KBL은 이번 김승현 사면의 근거로 규약 제136조를 들었다. ‘총재는 제재, 제재금 또는 반칙금을 받은 구단 또는 개인에 대해 이사회 등의 건의가 있는 경우 감면 및 복권 결정을 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을 근거로 내세운 것 자체가, 일개 구단 단장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전육 총재의 슬픈 현실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농구인은 “규약은 ‘이사회 등의 건의가 있는 경우 (총재가) 복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건의가 있는 경우 무조건 동의를 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이사회에서 사면을 결의했다 하더라도 총재만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있었다면 이에 대한 승인을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KBL은 “김승현이 그동안 자숙하는 태도를 보여온 점을 참작했다. 시즌 초반 고전하고 있는 오리온스에 대해 기회 균등에 의한 전력의 평준화라는 원칙도 고려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거듭되는 판단 착오로 스스로의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KBL의 큰 실수 중 하나이다. 전세계 그 어느 리그도 전력 평준화를 이유로 징계를 풀어주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원칙을 고수해야 하고, 기준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김승현이 자숙하는 태도를 참작했다는 설명에도 비난은 그치지 않는다. 징계 사면 여론은 팬들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형성될 때 설득력을 갖는 셈이다. KBL이 굳이 나서서 이면 계약의 실체를 까발린 선수에 대한 징계를 풀어줄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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