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까지 삼킨 충격적 영상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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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 다룬 재난영화로서 볼거리는 풍성…‘인간’ 앞세운 <해운대>와 비교돼

▲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 주연 | 존 쿠삭, 아만다 피트


<인디펜던스데이>와 <투모로우>를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가 또 한 편의 재난영화를 들고 나왔다. 외계인과 지구온난화에 이어 이번에는 지축을 흔들어버린다. 태양의 이상 활동으로 지구의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땅은 갈라지고 지구 전체는 물로 뒤덮인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것뿐이다.

에머리히는 규모를 중시하는 감독이다. ‘크기가 중요하다(Size Does Matter)’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고질라> 이후 그가 만든 영화는 가장 많은 제작비와 최신 영화 기술을 사용한 볼거리를 앞세웠다. <2012>도 에머리히 감독의 작품답게 볼거리를 구현하는 데 충실하다. 전작들에서 백악관을 박살내고 맨해튼을 수장시켜버린 그는, 이번에도 전세계 랜드마크들을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그의 지휘 아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이탈리아 성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미국 링컨메모리얼 광장의 워싱턴 타워 등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영화 중 가장 압도적인 볼거리는 SF 작가 잭슨(존 쿠삭 분)이 아이들과 이혼한 전 아내 부부를 데리고 무너져내리는 로스앤젤레스 시가를 빠져나가는 시퀀스에서 등장한다. 땅이 춤을 추듯 흔들리고, 아가리를 벌린 듯 거대하게 갈라진 틈 사이로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이 송두리째 빨려들어가는 장면들은 이전에 보지 못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문제는 이 시퀀스가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안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상영 시간이 1백57분에 달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충격이 영화 초반을 장식하다 보니 후반부에 등장하는 재난 장면들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2012>가 준비한 볼거리는 훌륭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야기인데, 에머리히 감독은 이 부분에서 항상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2012>도 마찬가지다. 시각적인 재미가 영화적 재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필수적이다. <해운대>는 재난영화에서 인간 군상과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한 바 있다. <2012>는 정보 통제와 생존자 선별이라는 문제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한 부분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12>는 이를 피해갔고, 결과적으로 허술한 이야기와 뚜렷하지 않은 캐릭터가 벌이는 납득하지 못할 행동들이 시각적 쾌감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11월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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