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인터넷과 한국야구위원회,‘둘만의 e-리그’에 서명했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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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프로야구 구단 CI 독점 사용 계약서’ 입수…그동안 계약 사실도 감춰와


“어려운 시기에 프로야구 스폰서 계약을 체결해 역시 대기업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마각을 드러냈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KBO(한국야구위원회)와 CJ인터넷 사이에 체결된 프로야구 구단 CI(기업 이미지 통합) 독점 사용 계약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CJ인터넷은 지난 5월8일 3년간 국내 프로야구단 엠블럼, 선수와 코치 초상, 성명, 야구 기록, 캐릭터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계약을 KBO와 체결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 계약으로 CJ인터넷은 ‘마구마구’라는 자사 온라인 야구 게임에 프로야구 구단 엠블럼, 선수와 코치의 초상권, 실명, 갖가지 기록 등을 독점 사용하게 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KBO 소속 프로야구단 CI 독점 사용 계약서’에는 CJ인터넷이 CI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KBO에게 순매출액의 5%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순매출액의 5%가 15억원을 넘지 못하면 15억원을 지급한다는 미니멈페이먼트 조항도 포함되었다. 

계약이 이행되면 경쟁 온라인 게임업체인 네오위즈가 서비스하는 온라인 야구 게임 ‘슬러거’는 선수의 구단 엠블럼, 실명, 초상,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마구마구와 슬러거 이용자는 선수 실명이 기재된 카드를 구입해 자기 팀을 구성하고 게임을 즐긴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로 팀을 구성하고 싶은 터라 야구 게임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슬러거를 이용하는 회원 수는 3백만명이나 된다. 이제 이 회원들이 돈을 주고 구입한 카드는 짝퉁 카드로 바뀔 판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사건은 프로야구판과 게임판을 동시에 들썩이게 한다.

프로야구의 인기에 힘입어 온라인 야구 게임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 야구 게임은 CJ인터넷 ‘마구마구’와 네오위즈 ‘슬러거’가 양분하고 있다. 두 업체가 올해 3분기까지 거둔 누적 매출액은 각각 2백억원이 넘었다. 온라인 야구 게임 시장 규모는 올해 5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CJ인터넷은 이 게임판을 독점하려 했고, KBO는 이를 묵인했다.

네오위즈를 비롯한 타 업체들이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슬러거를 이용하는 사용자들과 프로야구팬을 중심으로 생기고 있는 계약 반대 기류도 심상치 않다. 더 많은 업체에게 CI 사용권을 제공하면 더 많은 수입이 생기는 것을 마다한 KBO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그동안 KBO와 CJ인터넷이 왜 계약을 감추었고, 독점 계약으로 가야 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올해까지 CJ인터넷과 네오위즈는 각각 게임에 사용하는 초상권의 대가를 KBO에 지급해왔다. 액수는 양사 모두 10억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이번 독점 계약의 이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3월31일 신라호텔에서는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 조인식이 열렸다. 당시 금융 위기 여파로 어느 누구도 선뜻 스폰서로 나서지 않았다. 지난해 스폰서였던 삼성이 스폰서 계약 연장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대기업도 미적거리자 KBO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때 CJ인터넷이 등장했다. 삼성이 스폰서를 포기한 것은 2월 중순이었다. 이후 CJ인터넷과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KBO와 CJ인터넷의 스폰서 관련 논의는 급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달 남짓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다. 당시 마구마구를 개발한 애니파크(CJ인터넷 자회사)가 제안하고 CJ인터넷이 함께하는 방식이었다.

게임업체가 프로야구 스폰서로 등장한 것이 당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올 시즌 프로야구는 ‘2009 CJ 마구마구 프로야구’로 불리게 되었다. KBO와 CJ인터넷이 맺은 타이틀 스폰서십과 관련한 계약서에 따르면 스폰서 계약 기간은 총 3년이고 CJ인터넷은 메인 스폰서 권리를 획득하는 대신에 3년간 총 1백5억원을 KBO 마케팅 자회사인 KBOP의 통장으로 입금하기로 했다. 1년에 35억원이다. 이전 삼성과의 계약은 1년에 45억원이었다. 바겐세일이었던 셈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계약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프로야구 공식 스폰서십 선정 및 관리에 대한 계약서이다. 다른 하나는 CI 독점 사용권에 대한 계약서이다. 스폰서 계약 조인식은 3월31일에 이루어졌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날짜는 4월30일이었다. 그리고 불과 1주일 뒤인 5월8일 CJ인터넷과 KBO는 다시 마주 앉아 CI 독점 계약을 맺었다. 스폰서 계약과 독점 사용권이 연계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달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다. 야구계의 한 관계자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KBO가 갑이고 CJ인터넷이 을이다. 그런데 경제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갑과 을이 뒤바뀌었다. CJ인터넷의 요구대로 스폰서와 CI의 독점 사용권을 함께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3월5일부터 3월24일까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다. 하지만 이 사이에도 KBO는 함구했다. WBC 현장에서 KBO 관계자와 함께 있던 인사들 중 CI 독점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 권시형 사무총장은 “당시 하일성 전 사무총장과 WBC 기간 동안 죽 함께했지만 CI 독점 계약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선수협은 초상권의 또 다른 당사자이다. 현재 선수협은 KBO와 2010년까지 초상권과 관련한 계약을 맺고 온라인 게임 초상권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의 30%를 배당받고 있다. 이 계약서에는 초상권과 관련해서 선수협과 사전 논의를 하도록 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KBO는 이 규정을 무시했다.

‘후발 업체 죽이기’ 비판받아…CJ인터넷 “비즈니스 논리일 뿐”

▲ 마구마구 게임을 즐기는 사람. ⓒ시사저널 이종현

CJ인터넷은 독점 계약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고 했다. 정영종 CJ인터넷 대표는 지난 10월27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풍문으로 돌던 CI 독점 계약과 관련한 질문에 “내년 시즌에 돌입하기 전에 협상을 시작해 다음 시즌 이전에는 (계약을) 마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와 기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시쳇말로 하자면 ‘물을 먹였다’. 그러나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계약서가 언론에 유출되자 독점 계약 사실을 인정했다.

CJ인터넷은 과도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항변한다. 경쟁사를 죽이려는 의도도 너무 앞서나간 것이라고 말한다. 김무종 CJ인터넷 실장은 “비밀 유지 조항이 필요했다. 만약에 시즌 중에 계약 사실을 발표하게 되면 다른 업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탓에 KBO와 발표 시기를 조율한 것뿐이다. 당시에 독점 계약을 추진하려고 했던 다른 업체가 있었다. 우리만 추진했던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다른 업체나 해외 업체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 비즈니스 논리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KBO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KBO 관계자는 “타이틀 스폰서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CJ인터넷의 제안이 가장 좋았다. 스폰서를 하는 입장에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한 게임 전문 기자는 “슬러거가 마구마구보다 게임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후발 업체가 치고 나오자 CJ인터넷이 자본력으로 누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야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스폰서십을 줄이면서 KBO가 너무 쉽게 카드를 다 보여줬다. 배짱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서로가 편리한 것을 찾았고 그래서 나온 카드가 ‘독점’이었다는 얘기이다.

5백억원대의 시장을 2백5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한 업체에게 독점적으로 안겨주었다. 그리고 다른 2백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업체는 선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사지로 내몰렸다. CJ인터넷과 KBO 모두 ‘한국 야구 발전’을 이야기하며 계약의 정당성을 내세우지만 오히려 둘만의 발전을 고려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 KBO 소속 프로야구단 CI 사용 계약서.



▲ 지난 5월4일 한국 프로야구선수노동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한 선수들. ⓒ연합뉴스
경쟁 업체인 네오위즈는 강경하다. 네오위즈측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네오위즈보다는 선수협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선수협은 이번 기회를 통해 프로야구 선수들의 초상권 문제를 KBO가 아닌 선수들의 것으로 가져올 생각을 가지고 있다.

권시형 선수협 사무총장은 “야구선수들이 매년 KBO에 제출하는 통일계약서를 보면 초상권과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구단의 홍보를 위해 선수를 활용하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자에게 본인 고유의 초상권이나 성명권은 양도할 수 없다고 본다. 선수들이 초상권을 다시 찾아와야 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선수협은 KBO 마케팅 자회사인 KBOP에 초상권과 관련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법원에 초상권 사용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낼 생각이다. 이미 선수협은 선수들로부터 초상권과 성명권 사용에 관한 위임장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초상권과 관련한 판결은 이미 판례가 있다. 지난 2006년 프로야구 선수 1백22명이 한 휴대전화 야구 게임이 초상권과 성명권을 침해했다고 제작사 및 KBO 대행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지방법원은 선수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소송을 계기로 현재 얻고 있는 온라인 게임 순이익의 30%가 선수들에게 들어오고 있다.

선수들도 초상권 문제에 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특히 미국 야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국내로 돌아오면서 그런 공감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선수 초상이나 성명이 들어간 상품들의 수익은 선수 노조가 전액 가져가고 분배한다.

KBO는 초상권과 관련한 계약을 맺을 때 선수협과 논의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번에도 그 규정을 어겼다. 이번 CJ인터넷과의 독점 계약은 25번째 위반이다. KBO와 선수협의 초상권과 관련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을 현재 가장 바라고 있는 쪽은 온라인 야구 게임업체들이다. 선수협으로 초상권이 귀속된다면 초상권과 관련한 논의는 선수협을 통해야 한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그렇게 될 경우 선수협과 적극적으로 논의할 자세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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