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세금 의 하수도’ 지하 경제와 의 전쟁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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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세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지하 경제를 정조준했다. 사채시장과 주류시장, 귀금속시장, 스위스 은행 등 탈세의 통로가 될 만한 곳은 모두 샅샅이 뒤지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손에 쥔 무기는 내년 5월

ⓒ일러스트 장재훈

국세청이 세금 탈루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하 경제’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지하 경제는 흔히 매춘, 마약, 장물, 밀거래 등 불법적인 경제 활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탈루 소득을 지하 경제라고 지칭한다. 국회예산결산위원회가 최근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에게 제출한 ‘지하 경제의 양성화를 통한 재정 확충 방안’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3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가 1천23조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2백50조원 안팎의 검은돈이 ‘세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차명진 의원은 “지하 경제 자금 중에서 20%만 세금으로 전환해도 50조원 이상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특히 무자료 거래가 많은 주류나 사교육, 유흥업, 위장 가맹점 및 자료상만 양성화시킬 경우, 10조원 정도의 세금 추가 징수 효과가 있다”라고 밝혔다.

때문에 국세청은 그동안 지하 경제 양성화를 위해 칼을 갈아왔다. 명동 사채시장은 물론이고, 귀금속·주류·제약 업계를 상대로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벌였다.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 및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5년여간 기획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하 경제 규모는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일부는 국세청 조사의 허점을 악용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 경제 규모는 지난 2000년대 들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993년을 기점으로 18.8%에서 1999년 16%대까지 하락했지만, 2003년에는 21%대까지 다시 치솟았다. 윤여필 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현 KOTRA 자카르타 KB(차장))은 “1990년대 들어 금융실명제를 도입과 닷컴 열풍이 불어 지하 경제 자금이 일부 제도권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실질 이자율 감소와 함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지하 경제 자금이 다시 은밀한 곳으로 스며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2002년 전후로 발생한 신용카드 대란은 무분별한 사금융 확대를 유발했다는 것이 윤 전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그는 “지난 2003년을 전후해 현금 서비스 한도가 축소되면서 돌려막기가 횡행했다. 신용불량을 면하기 위한 사금융 수요가 급증했다. 이 기간 동안 사채시장 규모가 지하 경제 규모의 확대를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3년간 불법 사금융업체 2백61곳 조사

국세청은 최근 3년간 불법 사금융업체 2백61곳을 조사해 3백63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지난해 10월 말 정기 세무조사를 전면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교묘한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한 불법 사채업자에 대해서는 조사를 확대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음성적으로 기업어음을 할인한 후 벌어들인 돈을 해외 부동산으로 빼돌리고 있다. 일부는 미등록 업체를 통해 벌어들인 사채 이자를 자녀에게 증여하기도 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지적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도 현재 문제점을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최근 사채시장이 대부업 등록을 통해 일부 양성화되었지만, 여전히 상당수 전주들은 지하에서 자금을 주무르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채업자는 “코스닥 상장 업체 중에서 사채업자 자금을 사용하지 않은 곳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대출 후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시세 조정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조직은 사채 브로커와 사채 중개업자, 전주, 시세 조정자 등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전주 역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게릴라식으로 자금을 모으고, 자금 역시 여러 단계를 통해 세탁되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 당국 관계자는 “대표 전주를 통해 자금이 모이면 다시 조각조각 나누어 세탁을 한 후, 지정된 계좌에 입금하게 된다. 수표를 사용해도 이서를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조사에 어려움이 많다”라고 토로했다.

국세청이 명동 사채시장 등 지하 경제와의 지루한 ‘숨바꼭질’을 끝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년 5월에 도입할 예정인 ‘인별 과세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세청에서는 그동안 세무조사를 하지 않으면 탈세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이나 법인의 소득액 신고 내용이 업종 평균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으면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인별 과세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금융 정보를 한곳에 모으게 된다. 업종에 상관없이 개인도 소득에 비해 지출이 과다하면 자동으로 걸러지게 된다. 이 때문에 향후 숨겨진 소득에 대한 세금 징수가 가능해질 것으로 국세청측은 기대하고 있다. 강운태 민주당 의원도 “국세청이 노출된 자료를 활용해 단속해도 지하 경제 규모를 일정 부분 줄일 수 있다. 현실적인 여건은 어느 정도 만들어진 만큼 국세청의 척결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탈세의 원흉으로 꼽히는 주류시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국세청은 그동안 가짜 양주와 주류 무자료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지난 2007년에는 국내 위스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가 거액의 세금 포탈로 8개월간 영업정지를 받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에도 주류업계와 국세청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주류업계가 고안한 위조 방지 장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짜 양주가 시중에 유통되었다. 주류업계의 무자료 거래 역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IT 기술을 접목한 주류 유통정보 시스템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주류 병마개에 고유 인식번호가 부여된 RFID(전자태그) 칩을 부착하는 것이다. 국세청은 올해 10월부터 강남의 일부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에 돌입했다.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국세청은 제조 공장에서 최종 소비 단계까지 전달되는 유통 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거래 단계가 국세청 전산망에 자동 기록되기 때문이다.

이현동 국세청 차장은 최근 언론사 기고를 통해 “전자태그를 이용할 경우 그동안 불법 거래의 온상이었던 무자료 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병마개의 유통 이력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위스키의 진품 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귀금속시장 역시 지하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 올 상반기 국세청 추징액 상위 다섯 개 업체 중에서 세 개 업체가 금지금(순도 99.5% 이상 금괴와 골드바)과 비철금속 등 귀금속 관련 업체일 정도이다. 특히 한 금지금 도매업자의 경우 부가가치세 포탈로 3백3억원을 추징당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분석금(재생금)이나 밀수금을 몰래 구입한 뒤 세금계산서와 함께 판매하는 이른바 ‘폭탄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한 귀금속업계 관계자는 “폭탄금은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고 도주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정상적인 가격보다 10% 이상 낮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 귀금속 소매업자나 가공업체들이 이 무자료 금을 이용하기 때문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라고 귀띔했다. 때문에 국세청은 현재 귀금속 시장 탈루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서울 최대의 귀금속시장인 종로 3가 일대의 귀금속상가(왼쪽)와 명동 사채 골목(맨 오른쪽 위), 부유층의 비밀 금고로 통하는 스위스 은행(맨 오른쪽 아래). ⓒ시사저널 임영무(왼쪽), 시사저널 박은숙(오른쪽 위), 연합뉴스(외른쪽 아래)

일부에서는 “부족한 세수 확보 차원 아니냐” 지적도

최근에는 부유층들의 비밀 금고로 통하는 스위스 은행의 은닉 재산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현재 스위스 은행들과 금융 정보를 교환하는 조세 조약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비밀 금고의 빗장을 제거하기 위해 작업에 나선 것이다. 백용호 국세청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세피난처나 해외 도피 재산 등을 향후 중점적으로 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국세청 안팎에서는 국세청이 강공 행보를 하는 이면에 백용호 국세청장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귀띔한다. 지난 7월 부임한 백청장은 현재 강도 높은 국세청 개혁을 진행 중이다. 현행 세정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심의 기구인 ‘국세행정위원회’를 지난 8월 국세청 내부에 설치했다. 연 매출 5천억원 이상 기업은 4년마다 주기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같은 시스템을 바탕으로 탈세의 주범인 지하 경제에 대해서도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한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최근 단행된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에 대한 조사나 변칙 상속·증여 등 지능형 탈세에 대한 조사가 늘고 있다. 백용호 청장의 과세 인프라 확대를 위한 의지라고 보면 된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강공 드라이브가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하나 나돌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줄어든 법인세를 만회하기 위해 국세청이 특별 조사를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지난해 10월 정기 세무조사를 전면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기업들이 세무조사에 대한 부담으로 본연의 경영 활동에 전념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국세청은 한때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에 비해 세금 10조원이 덜 걷히게 생겼다. 올 상반기 현재 국세청 소관 세수 실적은 81조6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1조1천9백억원)의 89.5%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당장 지난해에 비해 세금 10조원이 덜 걷히게 되는 것이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지난 9월7일 국회재정위 전체 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올해 국세청 소관 국세 1백53조9천억원을 걷는 것이 목표인데 세수 여건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경제 위기로 유예했던 기업 조사도 9월부터 재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세청은 SK건설의 비자금 조성 정황을 잡고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대우건설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기업 안팎에서는 국세청이 재정 건전성 악화와 세수 확보라는 명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번 카드를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국세청은 지난 10월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진화에 나섰다. 요컨대 올해 상반기 법인사업자 조사는 9백건 중 57건(6.3%)에 대해 부과 세액이 없었다. 이 중 대부분이 소득 누락이 없는 경우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같은 수치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는 일부 주장이 오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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