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민심’의 흐름이 바뀌었다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09.11.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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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발언 계기로 ‘지역 이슈’에서 ‘정치 이슈’로 관점 변화…싸움 향방에 따라 대권 구도 달라질 듯

▲ 박근혜 전 대표(왼쪽)는 ‘원안 α’ 입장을 밝혀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불러왔다. ⓒ시사저널 이종현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라는 정치학자는 “정치가 갖는 역동성의 기원은 갈등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역동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갈등이 바로 세종시 문제이다. 현재 거의 모든 정치 세력이 이 문제에 직·간접으로 걸려 있다. 주요 정치인들 또한 예외 없이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세종시 문제는 정치 지형을 바꿀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전형적인 분열 이슈(wedge issue)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실시한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의 추이를 살펴보자. 먼저 4월13일 조사에 의하면,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31.7%였다. 백지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은 38.3%였다. 근소하게나마 백지화 의견이 더 높았다. 특히 수도권과 대구·경북(TK)에서 이런 의견이 더 많았다. 백지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서울에서는 52.6%, 인천·경기에서는 41.0%, TK에서는 40.1%로 나타났다. 한편, 원안 추진 의견은 충청에서 56.0%로 가장 많았다. 호남에서도 평균보다 높은 38.0%를 기록했다.

지난 9월 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로 내정된 후에 실시된 조사에서도 이런 찬반 구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안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36.0%, 수정 또는 축소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39.6%로 나타났다. 역시 수도권과 TK에서 수정 의견이 많게 나왔다. 반면, 충청에서는 원안 추진에 대한 열망이 더 깊어졌다. 67.1%가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한 지지 여론도 높아

▲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정범구 의원(가운데). ⓒ연합뉴스

지난 10월26일 조사에도 이런 여론 지형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원래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36.3%, 수정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40.5%였다. 이 조사에서도 수정 의견을 지지하는 수도권 및 TK와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충청 간에 대립이 여전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부터 무언가 심상찮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즈음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원안 +α’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언이 여권 내부의 혼란을 야기한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고 보는 평가가 22.3%였고, 평소 소신을 밝힌 것으로 별 문제 없는 발언이었다는 평가가 58.0%였다. 11월2일에 재차 물었다. 문제가 있다 25.4%, 별 문제 없다 64.1%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인해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지역 간 대립이나 정책 효율성의 차원이 아니라 신뢰의 차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수정과 원안 고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수정을 택하는 여론이 높지만, 기왕에 시행되고 있는 정책을 뒤집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는 것이다. 수정 의견을 밝힌 응답 중에서 52.1%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공감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또 하나, 수정 여론이 높게 나오는 것은 수도권의 인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권역별로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쪽이 유리한 것이다. 때문에 찬반의 수치를 너무 평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수정에 대한 찬성 의견이 많다는 것조차도 어느 정도 할인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수정 여부의 차원뿐만 아니라 찬반 의견을 피력하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차원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의 차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서 이런 측면이 부각되기도 하고, 저런 측면이 부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단지 지역 간 이해관계의 대립으로만 국한해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실증적인 사례가 10·28 재·보궐 선거이다.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수도권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측면이 부각되는 ‘지역 이슈’였다면, 10·28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경기도의 수원 장안과 인천 상록의 표심에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보면,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한 지지 여론이 수도권에서조차 매우 높게 나오는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세종시 문제가 ‘정치 이슈’로 전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만약 여권이 수도권 표심을 움직이기 위해 세종시 수정을 집중 거론했다면, 그것은 실패한 전략이었다.

재·보궐 선거 후 여론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10월31일 리서치플러스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종시를 원안 또는 확대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48.7%로 나타났다. 이 기관의 9월 조사에 비해 6.2%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원안대로 9개 부처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35.3%로 9월에 비해 4.6% 포인트 상승했다. ‘일부만 옮기면 비효율적이므로 15개 부처 전부를 옮겨야 한다’는 확대 추진 의견은 13.4%였는데, 이는 9월에 비해 1.7%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반면, 행정 비효율을 우려해 ‘사업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27.5%로 9월에 비해 6.0% 포인트 하락했다.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19.2%에서 17.9%로 줄어들었다. 이런 흐름은 리얼미터의 11월2일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41.2%로 나타났는데, 지난 9월 조사에 비해 2.2% 포인트 오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어떤 지역, 어떤 층에서 원안에 대한 지지가 늘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리서치플러스 조사에서는, 영남 쪽의 변화가 눈에 띈다. 9월에는 세종시 건설을 지지하는 의견이 38.1%에 불과했는데, 이번에는 50.2%로 늘어났다. 축소나 중단 등 반대 의견은 47.9%였던 것이 35.9%로 줄었다.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 지지층에서의 변화가 포착되었다. 지난 9월 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층 가운데 32.9%가 원안 추진을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39.2%로 나타났다. 

여론 지형의 변화를 두고, 이른바 ‘박근혜 효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박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지역 이슈’로 받아들이는 측면보다 ‘정치 이슈’로 보는 관점이 더 많아진 것이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예컨대, 지역 이해가 중요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는 지방선거라면 ‘지역 이슈’의 측면이 더 크게 부각될 여지가 적지 않다. 여권의 전략이 그런 쪽으로 포커스를 맞춘다면 그 여지는 더욱 커질 것이다.

리서치플러스 조사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세종시 축소 또는 백지화 의견을 밝힌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32.8%만이 공감을 표시했다. ‘선거 때마다 수없이 약속한 사안인데 정치에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며 박 전 대표의 발언에 공감을 표시한 의견은 57.9%였다. 이 신뢰 격차가 열쇠이다. 이런 구도를 해소하지 못하면, 그 어떤 논리를 내세우더라도 세종시를 둘러싼 현재의 정치적 역동성은 ‘원안파’보다는 ‘수정파’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어쩌면 여권의 대권 후보가 사실상 결정될 수도 있고, 아예 정치권의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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