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기록에 모의고사 성적표까지 의별 가짜 문서들이 나돈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11.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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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본거지 두고 자격증 등 공·사문서 닥치는 대로 위조…비용은 30만~1백30만원

ⓒ연합뉴스

한국은 ‘위조 공화국’이다. 가짜 자격증이 넘쳐나고 있다. 위조되지 않는 자격증이 없을 정도이다. 위조하는 이도, 위조를 의뢰하는 이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이 약하다. 과거에는 단순 과시용으로 가짜 자격증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제2의 범죄 수단으로 악용하기 위해 가짜 자격증을 찾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위조되는 문서의 종류도 다양하다. 부산 해운대경찰서 사이버수사대 김회성 팀장은 “국내에 유통되는 공문서·사문서 일체가 위조 가능하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신용카드 거래명세서, 예금 거래 기록 명세서,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성적표처럼, 위조하게 된 개인적인 사정을 듣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위조문서도 있다. 가짜 학위에 이어 가짜 자격증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11월5일과 6일, 전북지방경찰청과 해운대경찰서는 문서 위조를 의뢰한 혐의로 2백여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수사가 진행되면 추가로 드러나는 의뢰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사연은 갖가지이다. 삼수생인 최 아무개씨(21)는 35만원을 주고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를 위조했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자신을 꾸짖는 부모님에게 면피용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회사원 박 아무개씨(36)는 유흥주점에 간 사실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해 카드 사용 명세서를 위조했다. 전문대를 중퇴한 이 아무개씨(37)는 예금 거래 기록 명세서를 위조했다. 이씨가 교제 중인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금통장에 5억원 정도가 있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들통날까 봐 문서 위조를 의뢰한 것이다.

이들이 쉽게 문서 위조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그만큼 신청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손정환 경사는 “포털사이트 검색란에 ‘졸업증명서’라는 말만 넣어도 문서를 위조해준다는 광고 글이 뜬다. 매일 다르지만 평균 10개 정도의 광고 글이 검색된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광고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서 위조단은 카페나 개인 블로그를 주로 활용한다.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카페를 직접 개설하기도 하고, 개설되어 있는 카페에 번개 글을 남기기도 한다. 정회원만 글쓰기가 가능한 카페는 해킹을 통해 글을 남기기도 한다. 그만큼 문서 위조단은 전문화되어 있고, 수사망을 충분히 빠져나갈 만큼 교묘해졌다.

비용은 30만~1백30만원 사이로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위조가 힘든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이 1백30만원대로 가장 비싸다. 사람에 따라 값이 달라지기도 한다. 해운대경찰서 김팀장은 “의뢰자가 강남 타워팰리스에 산다는 것을 안 위조단이 7백만원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똑같은 문서라도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용을 깎아주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대학 졸업증명서의 경우, 국내 대학은 50만원 정도이며, 외국 대학은 100만원 내외이다. 대학 서열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기보다는 작업이 수월한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전북경찰청 손경사는 “문서 위조단이 학교 로고 문양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약간의 금액 차이가 난다. 서울대라고 자격증이 더 비싼 것은 아니다. 학교 로고 문양만 있으면 의뢰자의 이름과 관련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쉽게 작업이 끝난다”라고 말했다.

위조한 문서는 e메일을 통해 전해준다. 문서 위조가 제대로 되었는지 견본품을 의뢰자에게 보낸 뒤 계좌로 비용을 지불받으면 완성품을 e메일로 보내준다. 선 제작·후 지불 시스템을 갖췄다. 위조단은 의뢰자에게 어떤 재질의 용지를 사서 프린트하라는 것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 위조된 토익 점수 증명서와 서울대학교 졸업증서. ⓒ해운대경찰서 제공

의뢰자에 대한 처벌 ‘솜방망이’

문서 위조를 의뢰했다 하더라도 위조문서를 가지고 제2 범죄에 사용하지 않는 한 의뢰자는 대부분 벌금형에 처한다. 경미한 경우에는 벌금조차 내지 않는다. 현행법상 공문서 위조는 10년 이하의 징역, 사문서 위조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문서 위조에 가담한 위조단도 벌금형을 받는 수준에서 처리된다. 지난 10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문서 위조단의 국내 연락책을 맡았던 일당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문서 위조를 경범죄 정도로 인식하는 탓에 중국에서 활동하는 문서 위조단 총책임자를 검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공흡 팀장은 “인터폴에 문서 위조단의 위치 추적을 의뢰했지만 중국이 굉장히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총책임자를 검거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료했다”라고 전했다.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전북경찰청과 해운대경찰서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북경찰청 손경사는 “문서 위조단은 중국에 자리를 잡고 철저하게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한다. 계좌 추적을 해봤자 통장을 빌려준 사람만 잡을 뿐, 실제 위조단 총책임자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다. 택배를 이용해야 하는 플라스틱 재질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위조는 꼬리가 잡힐 수 있기 때문에 꺼린다. 대부분 e메일을 통해 위조문서를 전해주기 때문에 단서를 잡기 힘들다. 계좌도 수시로 바꾸기 때문에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라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경찰은 중국 이외의 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 모방 조직이 나타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2개의 문서 위조단이 중국에서 활개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개 조직에는 5~6명의 조직원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의뢰자의 e메일을 받고 전화 상담을 하는 상담원, 위조문서를 만드는 제작자, 아이디나 대포통장·대포폰 구입을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 택배 처리나 잡무를 담당하는 심부름꾼 정도가 한 개 조직을 꾸려 사기 행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문서 위조단을 잡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식 개선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공흡 팀장은 “보이스 피싱처럼 사기단을 모조리 검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문서 위조를 의뢰하는 사람들 스스로 쉽게 이득을 보려고 하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문서 위조에 들어가는 100만원의 비용으로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는 의뢰자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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