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대립한다, 고로 존재한다
  • 황상민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 승인 2009.11.1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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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전문가가 본 박근혜 전 대표 / 왕족이나 재벌 오너 수준의 정치인 이미지 형성…‘원칙’ ‘신뢰’ 중시하는 리더십, 오히려 대중과의 소통 방해하는 요인 될 수도

ⓒ시사저널 사진 자료

박근혜 전 대표가 지금 다시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세종시와 관련된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논란 자제를 요청한 청와대의 요구로 수면 밑의 싸움이 되었지만, 전선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지난 6월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 수개월 동안 조용히 지내던 박 전 대표가 이번에 다시 세종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자, 내년 지방선거를 노린, 그리고 이후의 차기 대권 플랜을 위한 전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최소한 정치권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 1인자 밑에서 조용히 있다 후계자로 낙점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아마도 박 전 대표는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분석해보자.

현 정부 출범 이후,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위기의 순간, 주요 정책 결정을 할 때마다 논란의 핵심에 있거나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두 사람의 대립 관계는 박 전 대표의 스타일 때문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박 전 대표의 출생 배경과 그녀에 대해 대중이 가진 이미지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화해와 공감은 요원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화성 남자와 목성 여자’라고 부른다. 정말 ‘목성 여자’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결합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둘 간의 상호 비방과 불신의 앙금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의 출신 배경과 성향 그리고 대중이 이 두 사람을 보는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니, 박 전 대표는 항상 현직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때, 자신의 존재 이유가 부각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내 주요 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계기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이다. 이후, 그녀는 한나라당의 대표로 당시 노대통령과 끊임없는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대중이 보기에 노대통령은 미천한 집안 출신의 거칠고 격한 사람이었지만, 박 전 대표는 귀한 집의 자손이자 우아하고 귀한 사람이었다. 이런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는 현재 이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이 된 상황에서 그녀는 정권의 정통성과 권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CEO 장군의 이미지를 가졌던 이대통령이 여왕처럼 군림하기 시작한 박 전 대표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2008년 총선 선거판이 흔들리고, “잘못된 법이다”라는 그녀의 말에 올해 미디어법도 수정되어야 했던 것이 그녀가 발휘한 힘이었다. 이대통령이 위기에 처할 때면 항상 ‘박근혜 중용설’이 나왔던 이유이다. CEO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공주를 여왕처럼 지켜야 하는 임무도 차지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대중이 가진 이미지를 조사했을 때, ‘높고 훌륭한 연예인 같은 정치인’으로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대중 정치인이 모두 희망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가진 심리적 속성은 ‘가진 것이 많고 또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다. ‘수성(守城)의 위치’, 즉 안전과 안정 그리고 보수를 나타내는 사람이다. 이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부·자’ ‘고·소·영’으로 칭해지는 보수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는 공격에 시달렸다면, 박 전 대표도 역시 동일한 위치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중은 박 전 대표를 마치 구세주의 이미지로 보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현실의 권력을 쥔 또 다른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다른 정치인이 ‘구세주’로 인식된다면 그 사람은 현실의 권력을 쥔 사람의 적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대안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정치인에게 권력을 너그럽게 나눌 수 있는 현실의 인간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대통령이 굳이 자신의 경쟁 상대는 박 전 대표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상이라고 언급한 사실은 이런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이었을 것이다. 

현재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이미지 코드는 대통령에 버금가는 왕족이나 재벌 오너 회장급의 정치인이다. 높은 사회적 위치뿐 아니라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다. 쉽게 접근하거나 스스럼없이 친해지기 힘든 사람, 특별한 사람이다. 대중에 노출된 이건희 전 회장이나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의 인물 이미지 수준이다. 혹자들은 박 전 대표의 성향에 대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인인가” 또는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정치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일이나 이 전 회장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에게 이와 같은 질문이 무의미한 것과 같은 논리이다.

현실의 대통령과 대비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실제 정치인으로 발휘하는 힘은 무엇일까?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지향하는 주요 가치를 ‘원칙’과 ‘신뢰’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 원칙이라는 것은 항상 ‘내가 말한 것을 지키는 것’ ‘내가 설정한 기준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심리에는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원칙은 모두의 원칙이 되어야 하고, 또 모두가 따라야 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소통의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었다. 박 전 대표 역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미 대중은 점점 이 사람이 한 일 또는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활동을 자제하며 간혹 한마디씩 던지면서 사태를 정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박 전 대표의 행보는 국정에서 끊임없이 위기와 문제를 겪어야 하는 대통령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함정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정치적 힘은 분명히 그녀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대중 정치인이라는 것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의 원칙과 신뢰는 점점 자신 스스로를 대중과 유리시키게 한다. 수성의 입장에 있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아님에도, 대통령에 버금가는 힘을 행사하는 정치인으로 부각될 때, 현실의 상황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대중에게 그녀는 대안으로 등장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의 문제는 전적으로 정치인으로서 그녀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성과가 있으면 리더십이 있다는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대화와 타협을 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은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사자들이  동등한 격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대우를 한다면, 그리고 서로 필요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남북 정상회담처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주변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정치인인가.’ 이런 질문은 더욱 턱이 없다.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 또는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주변에 누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 사람의 의중을 누가 잘 파악하는가만 중요하다.

▲ 1. 청와대 뜰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큰딸 근혜씨.2.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엄수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참석한 내빈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기자공동취재단

언론 및 대인 기피는 ‘전략’ 아니라, 필요성 못 느껴 나온 결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확인하면, 왜 언론 접촉이나 대인 관계에서 그녀가 잠수하는 듯한 모드로 지내는지를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언론과 거리를 두는 것을 어떤 노림수나 미래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정치부 기자들도 있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바로 언론과 거리를 두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치 여왕이나 재벌 회장 심지어 김정일 수준이라면, 언론은 이들을 위해 봉사하거나 이용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즉,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언론이나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접촉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다. 과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러 번 대통령이 되려고 시도할 때,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병에 걸려 있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은 단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장이 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두고 사장병에 걸려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 전 대표 역시 정치인이라면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향후 전망이나, 혹시 누가 한나라당에서의 탈당 사태를 묻는다면, 이는 누가 대통령이며 누가 국회의원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박 전 대표는 계속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있을 것이고, 이대통령은 임기 끝까지 대통령으로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갈등 상황에 있더라도, 누구 한 사람도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두 나라당’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표는 대중들에게 인기 연예인 이상의 호응과 인기를 모은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선거의 여왕’이 아니라 이미 ‘여왕’처럼 되었다. 이런 그녀의 위치에 대해 대중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현재 대중의 마음을 잡고 있는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이다.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선덕여왕이 현실의 누구를 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대중이 열광했던 인물은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이 아니었다. 현실 정치의 권모술수와 권력의 비정함을 너무나 잘 연기했던 ‘미실’이었다. 국민의 마음속에 ‘미실’로 자리 잡는 정치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향후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 한나라당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대중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며, 대중의 마음을 잡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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