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공부’의 함수 풀기
  • 신명철 | 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09.11.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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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팀 가진 11개 대학교와 문화체육관광부, ‘공부하면서 운동하는 학원 스포츠 개혁’에 합의

▲ 1980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부문 전관왕에 오른 미국의 에릭 하이든(오른쪽) 선수는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AP

대학 스포츠에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연세대와 고려대 등 농구 팀을 두고 있는 11개 대학교 관계자들이 11월 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모임을 갖고 2010년부터 전국 규모 대회를 없애고 홈앤드어웨이 방식의 리그제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거의 모든 종목의 학생 대회가 그렇듯이 대학 농구도 학기 중 일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대회가 열려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지방에서 전국 규모 대회가 열리면 학교로서는 합숙 훈련비는 물론 원정 비용까지 부담해야 해 적지 않은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된다. 대학 농구의 경우 대부분 학교가 서울에 있어 주말을 이용해 학교 체육관에서 홈 경기와 방문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학교의 재정적인 부담도 덜게 된다. 한마디로 선수들에게 공부할 시간도 주고 운동부 운영비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농구보다 앞서 수도권 팀들을 중심으로 주말 리그제(U리그)를 운용하고 있던 대학 축구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한축구협회가 11월16일 발표한 ‘2010년 U리그 운영 방안’에 따르면 올 시즌까지 수도권 10개 팀만 참여했던 U리그의 규모가 내년에는 전국 72개 대학으로 크게 확대된다. 수도권 3개 리그를 포함해 6개 리그 안과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묶는 안 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매주 목요일 오후 한 게임씩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연중 리그를 치르게 된다. 대학 축구는 농구와 달리 팀이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공부하는 대학 스포츠 풍토를 확산하는 데 더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잠시 살펴보자. 지난 8월에 있은 프로야구 2010년 신인 선수 지명 회의에서 8개 구단은 7백49명의 신청자 가운데 10.1%에 불과한 76명만 뽑았다. 신청자 가운데에는 고교 및 대학 졸업자는 물론 군 제대 선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해에는 7백50명 가운데  8.7%인 65명, 2007년에는 8백6명 가운데 6.8%인 55명만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물론 프로야구가 축구·농구·배구 등 다른 프로 종목보다 ‘취업률’이 낮기는 하다. 길게는 10년 이상 운동에만 매달렸던 선수들 상당수가 해마다 운동이 아닌 다른 일로 먹고살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현실이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가을, 구단 관계자와 기자 등 30여 명이 일본 프로야구의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도쿄에 갔다. 프로야구의 20세기판 ‘신사유람단’이었다. 그때 묵었던 이케부쿠로의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은퇴 프로야구 선수의 얘기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3라운드쯤으로 지명된 투수였다. 1군에 두어 차례 올라간 뒤 3년 만에 퇴출되었다. 선수층이 두꺼운 요미우리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운 것이 야구밖에 없었으니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일본 고교 야구는 운동과 공부를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PL학원고를 비롯한 야구 명문교의 경우 한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야구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보험회사에 취직했지만 입사 초기 어려움이 많았다. 얼마 안 돼 업무도 제법 손에 익고 운동선수 출신 특유의 끈기와 돌파력으로 회사 안에서 제법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보험 일이 야구보다 훨씬 더 힘들다며 술잔을 연방 들이켰다.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고 프로구단 MBC 청룡,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지낸 야구계 원로 어우홍씨는 최근 지론인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또래 운동선수들 가운데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은행 지점장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가 적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거에는 말만 아마추어였지 실상은 프로나 다름없는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운동이 진짜 직업인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실력만 있으면 지난날의 실업팀 선수들처럼 미래를 걱정해 조기 은퇴할 일도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에서 주전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이청용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프로 구단인 FC서울에 입단했다. 그리고 프로 구단의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 속에서 성장을 거듭해 약관의 나이에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 진출했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일찌감치 운동선수의 길로 들어서서 입신양명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자유 계약 제도 아래서 일시적으로 벌어진 일로, 선수 선발 방식이 드래프트제로 바뀐 뒤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또, 1990년대 초 백승일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프로인 민속씨름판에 뛰어든 것을 비롯해 흔치 않은 사례이기도 하다.   

▲ 11월4일 열린 ‘대학농구 리그제 추진 관계 기관 간담회’. ⓒ연합뉴스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공부는 학창 시절에 해야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영웅 에릭 하이든이 꼽힌다. 하이든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이다. 단거리인 5백m부터 장거리인 1만m까지 5개 종목 금메달을 휩쓸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채드 헤드릭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천m에서 우승하자 일부 미국 언론은 헤드릭이 1980년 하이든이 이룬 5관왕 신화를 다시 쓸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헤드릭은 ‘1관왕’에 그쳤다. 하이든은 수영으로 치면 1972년 뮌헨올림픽 7관왕에 빛나는 마크 스피츠에 견줄 만하다.   

운동과 함께 위스콘신 대학 매디슨 캠퍼스에서 대학 생활을 한 하이든은 은퇴한 뒤 199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아버지 잭의 뒤를 이어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하이든은 개업의이지만 미국 프로농구(NBA) 구단들과 2002년, 2006년 동계올림픽 미국 스피드스케이팅선수단의 팀 닥터로 일하기도 했다.

모든 운동선수가 하이든처럼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기본 소양은 물론 운동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공부는 학창 시절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농구의 경우 체육관 시설이 낙후된 학교에서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해야 할 것이다. 운동부 학생의 훈련은 물론 중·고교 시절 공부만 하느라 기초 체력이 약한 일반 학생들의 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일이기에  그 정도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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