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박두 은행 빅뱅, 누가 먹고 먹히나
  • 정희윤 | 뉴스핌 기자 ()
  • 승인 2009.12.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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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 가시화로 ‘금융권 열국지’ 시대 개막…은행 판도 변화뿐 아니라 금융 산업 통째 재편될 수도

▲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시사저널 유장훈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등이 최근 외환은행 인수전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면서 금융가 합병·매수(M&A)전이 시작도 되기 전에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외환은행-우리금융 등이 줄줄이 매물로 대기하고 있는 국내 금융 시장 합병 매수전은 결과에 따라 국내 금융 산업을 원톱 체제로도, 양강 체제로도, 신 3강 구도로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판세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기존 금융권 빅 3가 마찰과 출혈을 불사하는 적자생존 전략을 어떻게 펼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벌써부터 증권가에서는 금융 산업 판도가 바뀔 대형 M&A를 통한 테마주가 형성되고 은행 자체의 수익성도 향상되며, 부실이 줄어들어 내년 증시가 우상향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넘실대고 있다. 이 상황에 M&A를 통해 국내 금융 시장을 좌우할 만한 리딩 금융 그룹이 출현할 것이라는 ‘뉴스’는 대단한 폭발력을 지닌 흥행 요소일 것이다.

■ 현 ‘빅 3’ 구도 그대로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대한민국 금융 산업은 KB금융, 우리금융, 신한지주의 3강 체제가 확고하다. 이들 금융 그룹들은 총 자산 2백조원을 웃도는 대형 은행을 주력 자회사로 거느리면서 중형 은행들과 격차를 50조원 이상 벌려놓고 있다. 이들 빅 3에 이어 하나금융, 농협, 기업은행 등이 허리를 만들고 한국씨티와 SC제일 그리고 증권사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은행계 금융 그룹이 중위권에 머무르며 시장 영향력을 비롯한 자체 위상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현재의 빅 3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넘버 1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대형 금융 그룹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고, 넘버 2는 넘버 3를 따돌리고 적어도 양강 체제로 만들기를 원하며, 넘버 3는 일거에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딜을 모색하고 있다. 결국, 새판 짜기의 지렛대는 M&A밖에 없다. 때마침 은행권에는 대기 매물과 잠재 매물이 몇 군데 꼽히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때 주가가 액면가를 밑도는 굴욕을 당했으나 최근 은행권 세 싸움을 좌우할 만한 핵심 M&A 타깃으로 꼽히며 몸값이 오르고 있는 외환은행이 대표적이다.

■ 2010년 매물은 외환은행 하나로 그칠 가능성 커

금융계는 외환은행이 증시에 대형 M&A 장세를 열어줄 뇌관 역할을 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보고 있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는 매각 타이밍을 꾸준히 살펴왔다. 외환은행의 주가는 올 하반기에 꾸준히 올라 1만4천~1만5천원대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외환은행에 대한 러브콜이 뜨거워질수록 시장에서 형성되는 주가 움직임 말고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 챙길 수 있기에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재추진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외환은행의 향방과 함께 금융 시장 주도권 경쟁의 한 축인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지주 민영화 일정은 내년 안에 성사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그리 크지 않다. 산은금융지주는 2011년 국내 증시, 2012년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우리금융은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지닌 지분 7%에 대한 블록 세일에 성공해 민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소수 지분 16%의 처리 절차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본격적인 경영권 지분에 대한 매각 문제는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구체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2010년 증시에 인수 테마를 띄울 수 있는 확실한 딜은 외환은행 매각 건뿐이다.

외환은행 인수전에서는 KB금융을 비롯해 하나금융과 산은금융지주 등이 경쟁 후보군으로 꼽힌다.

■ 자체 성장을 통한 위상 높이기는 더 이상 불가능

금융권에서는 예·적금을 더 많이 확보하거나 대출을 늘리는 방식을 주력으로 삼는 자체 성장 모델로는 현재의 금융권 구도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작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반면, 대형 M&A에 성공하면 한꺼번에 위상이 크게 격상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거론된 인수 후보 외에 의외의 복병이 등장할 가능성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외환은행 딜의 1순위 후보는 KB금융이다. 자사주를 일부 파는 노력을 전제로, 출자 여력만 6조원을 웃돌 것이라고 추정한 애널리스트가 있을 정도이다. 출자 여력 6조원에 재무적 투자자를 조금만 모아도 7조원 이상의 가격 공세를 펼 수 있다는 점에서 화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KB금융으로서는 현재 진행 중인 신임 회장 추천 작업이 끝나고 새로운 CEO가 등장한 이후 M&A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 자명하다.

최근 김승유 회장이 해외 M&A를 포함해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하나금융도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금융은 지난 10월 증자를 추진했는데, 이에 대해 금융가에서는 M&A를 겨냥한 실탄 축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증자설이 나오자 하나은행은 주가가 폭락했고, 하나금융은 증자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김회장이 다시금 M&A 가능성을 입에 올린 것은 하나금융이 금융권 빅 3 경쟁에서 탈락 위기에 놓인 현재의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M&A를 검토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금융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은행 인수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리를 하면서까지 매달릴 가능성은 작다”라고 덧붙였다.

■ 매물이야? 인수 주체야? 

외환은행의 향방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합병·매수 건은 우리금융그룹 그 자체이다. 우리금융그룹이 M&A 매물로 나오던, M&A 주체로 서던 우리금융그룹과 손을 잡는 금융 그룹은 금융 산업에서 부동의 원톱으로 올라설 수 있다. 현 정부에서 금융계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민영화를 앞당기기 위해 뛰고 있고, 최근 예보의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앞당기기 위해 자사주 매입 방식이라는 아이디어도 내고 있어서 우리금융그룹이 현 정부 임기 전에 매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또 다른 민영화 추진 대상으로 꼽히는 산은금융지주 역시 소매금융 기반을 가진 중형급 이상의 은행과 합병해야만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은 민유성 행장 역시 외환은행을 포함해 모든 M&A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농협이나 HSBC 등도 언제든 복병으로 등장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모든 은행들이 선수로 참여하는 열국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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