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회오리 속 ‘왕의 남자’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2.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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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거론된 인사 중 박영준 국무차장과 주호영 특임 장관 주목…여권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

▲ 주호영 특임장관 ⓒ시사저널 임준선

안원구 국세청 전 국장의 입이 2009년의 막바지인 12월 정국에서 ‘뇌관’으로 등장하고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안 전 국장은 이미 작심한 듯 깊숙한 얘기들을 모두 꺼내놓고 있다. 거침이 없다 보니 관련 인사들의 실명도 줄줄이 거론된다. 여기서 가장 주목받는 두 사람이 있다.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주호영 특임장관이다. 정부와 당에서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떠받치는 양대 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텁다 보니 주변에서 질시 어린 시선도 많이 받지만, 이들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 이들도 지금 때아닌 유탄의 파편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의 위기는 곧 집권 3년차의 광폭 행보를 준비하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추이가 사뭇 주목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과 안 전 국장은 모두 1960년생 동갑내기이다. 고향 또한 TK(대구·경북)로 모두 같다. 박차장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대구 오성고를 졸업했다. 주장관은 경북 울진 출신으로 대구 능인고를 졸업했다. 안 전 국장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 영신고를 졸업했다. 당연히 친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국장은 지난여름 “내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게 박영준이라는 존재를 알려줬고 소개도 해주었다”라고 <시사저널> 기자에게 직접 밝혔다. 최근에는 “주호영 장관에게 지난 추석 무렵 구명을 요청하는 편지를 직접 보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적 감각이 남다른 안 전 국장이 위기 상황에서 두 사람의 실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은 현 정부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 성격도 갖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가끔 언론에서 한나라당의 ㅈ의원 등 자꾸 엉뚱한 이름을 들먹이는데, 이미 옛날 얘기이다. 과거 대선 캠프 때의 측근들 중 지금 청와대에서 멀어진 인사들이 숱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통령의 측근은 청와대든, 정부든 이대통령이 가까이 불러들이는 인사들이 중심이다”라고 말했다.

1960년생 동갑내기·TK 출신으로 안 전 국장과 친분

▲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연합뉴스

현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비서관에 발탁된 박차장은 ‘왕비서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6개월여 야인 생활을 한 후 차관급 국무차장으로 재발탁되자 다시 ‘차관 정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정도로 박차장의 행보는 늘 주목되었다. 한 언론인은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과 이대통령의 비서팀장을 지낸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의 은밀한 내부 문제가 들춰질 때마다 박차장의 이름이 자꾸 거론되는 것은 상당히 불안한 요소들이다”라고 진단했다. 실제 정가에서는 박차장을 가리켜 노무현 정부에서의 ‘좌광재, 우희정’과 견주는 목소리도 있다.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말한다. 이재오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주류 일각에는 여전히 그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여권 내부의 권력 싸움에서 한때 밀려나며 약 6개월간 야인 생활을 했다. 그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예 정치권과 담을 쌓고자 섬에 들어가 책이나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그는 이 기간에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위직 인사들과 만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 이로 인해 지난 4월 포스코 회장 인사 로비 의혹이 불거졌을 때, 자신의 ‘주군’ 격인 이상득 의원과 함께 포스코 인사에 관여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시사저널> 4월29일자 보도).

그는 현재 ‘안원구 X파일’ 정국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안 전 국장의 부인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과 친한 사람들이 박영준의 친한 사람들과 겹쳐서 서로 잘 안다. 그래서 일찌감치 한상률 청장에게 박영준을 ‘컨택’하도록 했다. 이상득 의원 쪽에 도달하기 위한 징검다리를 소개하고 정보를 주었다. 그쪽을 통해 한청장이 청와대 구명 운동을 많이 했다”라고 밝혔다. 한 전 청장과 이의원이 접촉하는 데 중간에서 안 전 국장과 박차장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도 박차장을 주목하고 있다. 11월30일 국회 법사위에서 박지원 의원은 “박차장이 미국을 방문해 한 전 청장에게 안 전 국장의 폭로 내용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하라고 종용했다”라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안 전 국장의 녹취록이 담긴  ‘X파일’에도 한 전 청장과 이의원의 중간에서 이른바 ‘그림 심부름’ 의혹 등과 관련해 박차장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차장은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장관은 안 전 국장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 추석 무렵 안 전 국장이 보낸 편지를 통해 ‘도곡동 땅 의혹’과 ‘국세청 로비 의혹’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장관측은 안 전 국장의 당시 구명 요청에 대해 “국세청 내부 일에 직접 나설 사안이 아니고 관여하기도 적절치 않다”라며 거절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주장관이 구설에 오르내리자 여권 내부에서도 그에 대해 곱지 않은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주장관이 친이계 주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친박계와도 상당히 가까운 인사로 통한다. 이대통령이 중진급도 아닌 그를 굳이 특임장관에 임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주장관에게서 가장 우선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친박 쪽과 불교계의 불만을 잘 무마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박 쪽은 여전히 날카롭다. 또, 최근 청와대 예배 파문이 다시 불거지는 등 불교계의 반발은 오히려 더 극심해지는 분위기이다. 아직 그에게 장관 그릇은 너무 크다는 비판이 많다”라고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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