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백신 생산 라인에 ‘검은 바이러스’ 침투했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2.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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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조작 의혹 등 불거져 사정 당국이 내사 돌입…보건 당국의 양계장·부화장 관리 적정 여부도 대상

ⓒ시사저널 임영무·REUTERS


사정 당국이 녹십자를 포함한 신종플루 예방 백신 관련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내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사실을 사정 당국 관계자들을 통해 단독 확인했다. 녹십자는 그동안 양계장과 부화장을 거친 유정란으로 신종플루 예방 백신을 생산해왔다. 이를 위해 전국에서 양계장 세 곳과 부화장 두 곳이 백신 생산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의혹들이 제기되어 경찰과 국가정보원(국정원) 등이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돋보기를 들이댄 것이다.

이들 사정 기관 가운데 현재는 경찰이 가장 깊숙하게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 정보과는 지난 5월부터 신종플루 백신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한 제보와 자료 등을 수집했다. 이렇게 해서 작성한 보고서가 100쪽 분량을 넘는데, 12월5일쯤 경찰청 정보국으로 넘어가 내사 기초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핵심 관계자는 “본청(경찰청)은 부산청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점검하면서 양계장과 부화장, 녹십자 등에 대한 주변 탐문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부산청의 자료만으로도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수 있으나 워낙 큰 사안이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정원도 12월 초부터 내사에 들어갔으며, 신종플루 백신 생산 과정의 의혹과 관련한 리포트를 작성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사정 기관들이 거의 동시에 녹십자 등 ‘신종플루 백신’을 예의 주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관들은 여러 의혹 가운데 녹십자가 백신 재료인 유정란의 원가를 조작해 부당 이득을 챙기고 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녹십자는 청정 양계장에서 생산된 청정 유정란인 이른바 ‘청정란’으로 백신을 만들다가, 11월부터 일반 유정란으로 백신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계란 가격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청정란은 개당 4백70원인 데 반해 일반 유정란은 1백70원 정도이다. 3백원 정도의 차액이 생긴다. 녹십자가 정부와 처음 계약할 때는 청정란으로 백신을 만들겠다며 4백70원에 계약했는데, 일반 유정란으로 바뀐 다음에도 계속 4백70원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청정란에서 일반 유정란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원가도 4백70원에서 1백70원으로 낮추어야 당연하다는 것이다.

보건 당국과의 ‘커넥션’ 의심도 받는 녹십자 “원가 공개할 수 없다”

▲ 경찰이 신종플루 백신 생산 과정에 불거진 의혹에 대해 내사에 들어갔다. 위 사진은 경찰청사. ⓒ시사저널 박은숙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9월26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실로 보낸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녹십자에서 백신 제조용으로 공급받는 유정란의 가격은 4백70원이었다. 당시는 청정란으로 백신을 만들었기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된 상품’에 ‘제 가격’을 지불했던 셈이다.

경찰 역시 이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찰 관계자는 “녹십자측이 계란의 가격 차이를 통해 횡령(혹은 부당 이득)한 의혹도 있지만 보건 당국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녹십자 홍보팀의 한 간부는 이와 관련한 <시사저널>의 취재 요청에 “내사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생산 원가를 포함해 모든 것을 확인해줄 필요는 없다”라는 입장만 거듭 밝혔다.

보건 당국이 양계장과 부화장 등을 제대로 관리했는지도 내사 내용에 포함되었다. 식약청 자료에 따르면, 식약청이 2~3인씩 조를 짜서 녹십자 직원과 함께 양계장 세 곳과 부화장 두 곳을 처음 점검한 것은 9월17일이었다. 점검 결과는 ‘양호’였다.

하지만 사정 당국은 식약청의 점검이 너무 늦었다고 지적한다. 지난 7월21일 국가 전염병 위기 단계가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되었고, 8월15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9월10일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 1차 접종이 완료되었는데 그 이후에 생산 라인을 점검했다는 것을 석연치 않게 보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전북 익산에 있는 한 부화장이 ‘정해져 있는 양계장’이 아닌 정체불명의 양계장에서 계란을 공급받아 부화시킨 다음 녹십자에 공급한다는 내용의 제보도 확인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해져 있는 양계장’이 아닐 경우 위생 시설 등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백신의 안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이 부화장의 현장 책임자는 12월14일 기자와 만나 “우리는 녹십자측과 ‘언론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인터뷰하기 힘들다”라면서도 “우리는 녹십자로부터 계란 한 개당 40~50원의 부화 비용을 받고 있으며, 1주일에 20만~30만개 정도 공급하고 있다. 다른 양계장 계란은 전혀 취급하지 않고 있다”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사정 당국이 입수한 제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인 셈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청정란이 아닌 일반 유정란으로 만든 백신의 안전성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사정 기관들도 안전성 문제를 주목하고 있지만 의학 전문성이 부족해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12월10일 ‘위기’ 단계를 다시 ‘경계’로 하향 조정하면서 ‘신종플루 공포’에서 한 숨 돌리는 분위기이다. 그래서인지 사정 당국의 내사 속도도 한결 빨라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새해 1월 초에 관련 업체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럼에도 사안 자체가 모든 국민과 직결된 신종플루 문제이기 때문에 사정 당국이 압수수색 등 실제 ‘액션’을 취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한편, 신종플루 백신 접종 이후 사망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집단으로 녹십자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백신 안전성 문제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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