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라는 큰 화두 남기고 역사가 된 ‘미완의 개혁가’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2.2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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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급작스런 서거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영향력·재평가 여전히 지속 중

ⓒ시사저널 자료사진

우리는 올 한 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냈다.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서거했다. 하지만 앞서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이라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놀라운 방식으로 다가왔기에 우리들이 느낀 혼란과 충격이 더했다. 그래서 한 사회학자는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을 ‘역사적 죽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죽음’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부터 2백일이 지난 12월16일 ‘친노(親盧)’ 세력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신수동 서강대 곤자가 컨벤션홀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이날 친노 인사들은 극구 ‘출판기념회’라는 표현 대신에 ‘저자와의 대화’라는 표현을 썼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이재정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은 “오늘은 저자인 노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체취를 느끼는 자리이다”라고 설명했다. 행사장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육성이 가득했고, 참석자들은 만감이 어린 듯 때때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시사저널>이 2009년 ‘올해의 인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정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일으킨 파장이 너무 컸다는 점이 하나이고, 7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노무현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이다.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1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검찰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임채진 총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자진 사퇴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이 나라가 진짜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가 하는 굉장한 불안감을 우리 사회에 던져줬다”라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들의 몫이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변화’라는 하나의 큰 화두를 던졌다. 이 화두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재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비록 통치자로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픔을 가진 대다수 서민들의 한을 어루만지고, 이 사회의 비주류로서 기득권에 도전해서 집권에 성공한 그 도전 의식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또한, 소탈한 면모와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에 대해 뜨거운 감정을 표출하는 인간적인 면도 돋보인 정치인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여야를 떠나 정치 선배로서, 노 전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생전의 그 모습들은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쉬움의 목소리도 아직 남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권위주의를 탈피한 모습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고정화되고 정형화된 틀을 깨뜨리고자 했던 개혁성은 분명 후세에 평가받을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하지만 이것을 너무 단기간에 급속도로 추진하려다 보니까 부작용이 속출했고, 이를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슬기롭고 원만하게 조율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준 점은 아쉽다”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인 성격을 전혀 배제한 채 순수하게 노 전 대통령 유가족들을 돕고자 하는 뜻으로 모인 인터넷 카페 모임 ‘노영동’(노무현과 영원한 동행)은 최근까지 5천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고, 약 9천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해 봉하마을에 전달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영향과 체취가 묻어난다는 평을 들었다. 이순재·장동건 등이 분한 인간적이고 소탈한 대통령의 모습이 노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는 것이다. 연출을 맡았던 장진 감독조차도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싫지만, 어느 대목에서는 누군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을 시사하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서점가에서도 열풍 이어져…<진보의 미래>, 베스트셀러 1위

▲ 지난 5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주변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 임시 분향소. ⓒ시사저널 박은숙

서점가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인기는 계속 이어졌다. 서거 직후 출간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성공과 좌절>, 인터뷰집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등이 올해 베스트셀러 100위에 들었고, <진보의 미래>는 현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이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과 어록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는 2010년 달력’은 출시 하루 만에 전부 동이 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분간 이런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2월16일 <진보의 미래>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도 노출되었다. ‘친노’의 좌장 격인 한명숙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이날 법원에서 발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무현 정신’ 계승을 표방하고 창당을 선언한 국민참여당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시민·이병완·천호선 등 당 핵심 인사들은 물론, 민주당 인사인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도 함께했다. 이의원은 행사 다음 날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분열은 안 된다. 안위원과 나는 국민참여당에 참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친노 세력들의 도전과 과제가 결코 만만찮을 것임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많다. 이현우 교수는 “문제는 국민들이 얼마만큼 이를 받아줄지 여부이다. 즉, 한두 명의 스타에 의해서 (노무현 정신이) 계승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세력들이 만들어져야지 정신이 계승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최진 소장은 “단순히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어렵다. 이를 좀 더 비판적으로 승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측은함이라는 국민 정서에 기대어 노무현의 옛 향수를 되돌려 정치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행태에 불과하다.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복지·분배·균형·가치를 생산적인 정책으로 발전시켜서 국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유창선 박사 역시 “추모의 정서와 친노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는 별개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룬 성과는 계승하되, 한계를 드러냈던 부분은 극복하려고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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