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예산’은 올해도 조용히 챙기고 4대강 예산은 4천억 깎고 ‘생색’
  • 이유주현 | 한겨레 정치팀 기자 ()
  • 승인 2010.01.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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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파묻힌 새해 예산안 내역 / 복지 예산, 조금 늘려 ‘무난’…일자리 예산, 지난해 추경 예산보다 크게 줄어

▲ 지난해 12월31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 새해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을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표결 처리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1백25억!” “28억!” “50억원으로 하시죠!”

2년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모처럼 기자들에게 공개한 계수조정소위 회의장은 억대가 오가는 경매장 분위기였다. 마침 기자가 지켜본 2008년 12월7일에는 1천2백50억원이 배정된 ‘세계 수준 연구중심 대학 사업’을 심의했는데, 이날도 의원 몇몇이 목소리를 높이다가 1분도 채 안 되어 50억원을 감액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계수조정소위는 정부 예산을 최종 심의해 예결위 전체회의로 넘기는 핵심 소위로서, 국회의원들에게는 ‘꽃 중의 꽃’ 같은 자리이다. 계수조정소위 의원들은 순식간에 수십억 원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고무줄 마술사’와도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나마 이같은 ‘프로크루테스 침대식’ 예산 심사조차 생략되었다. 한나라당 예결위원들이 밀실에서 단독으로 수정 예산안을 확정했기 때문에, 누가 칼자루를 쥐고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잘라냈는지, 잡아 늘렸는지 모르는 것이다.

4대강 예산을 놓고 평행선을 긋던 여야는 2009년을 불과 사흘 남겨둔 지난해 12월28일에야 ‘따로국밥’식으로 수정안을 별도로 내놓았다. 그러나 4대강 예산뿐 아니라 교육·복지 등 민생 예산(한나라당은 4천억원 증액 요구, 민주당은 3조1천9백억원 증액 요구)도 워낙 의견 차가 커 좀처럼 절충이 되지 않자, 한나라당은 12월31일 자신들의 수정안을 토대로 최종 수정 예산안을 확정해 2백92조8천1백59억원의 예산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내용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환경부 등에 편성되어 있는 4대강 사업 예산 3조5천억원 중 12%인 4천2백50억원을 삭감했다. 또한, 보 설치·준설 등 4대강 사업의 핵심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수자원공사에 지원하려던 금융 비용 8백억원 중 100억원을 깎았다. 한나라당은 “워낙 논란이 된 예산이었기 때문에 대폭 줄였다”라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규모였다. 민주당은 국회 예산 심의를 받지 않는 수자원공사에 ‘운하 의심 예산’ 3조2천억원을 편성한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채권 발행에 드는 이자 비용 8백억원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버텨왔다. 민주당은 “어차피 수공 예산은 국회에서는 심의할 수 없지만, 국회에서 다룰 수 있는 수공 이자 지원비 8백억원만큼은 상투 잘라내듯 싹둑 삭감해야 한다”라고 거듭 밝혀왔다.  예산안 대치가 절정에 이르던 12월 중순께 한나라당 내 대표적 경제통으로 민주당 중진 의원들과 ‘합리적 절충’을 시도했던 이한구 의원도 “4대강 예산을 수공에 숨겨놓는 것은 편법·불법이므로, 이를 묵인하는 이자 지원비 8백억원을 삭감하는 대신 수공 예산 중 일부를 정부 예산으로 돌려 심의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복지 예산의 경우,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정부가 본래 제출한 예산안에서 2천66억원을 증액했다. 긴급 복지 50억원(5백29억원 → 5백79억원), 경로당 동절기 난방비 한시 지원 4백11억원(신규), 청소년 미혼모 자립 지원 1백21억원(신규), 아동 안전 지킴이 23억원(32억원→ 55억원),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 사업 24억원(신규), 지역 아동센터 지원 확대 26억원(5백51억원 → 5백77억원), 신종 전염병 대책 4백4억원(6백64억원 → 1천68억원)을 각각 늘렸다.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예산도 6백77억원(3조5천억원→ 3조6천억원)을 추가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일자리 예산이 지난해 집행된 추경 예산보다 1조1천억원(24% 감소) 삭감되었다며 벌써부터 ‘일자리 추경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여당 의원들끼리만 예산을 주물렀으니 지역구 예산도 독식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나온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겉으로는 4대강 예산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호남 예산을 챙겼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가 거의 확실시되던 12월30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민주당은 절대 지역구 예산을 챙기지 않았다”라고 선수를 쳤다.

▲ 장외 투장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당 의원들도 소소하게 챙겨

국회 예결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이번에는 재정 적자가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지역구 예산을 마음대로 늘릴 수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의 한 계수조정소위 의원은 “호남고속철도를 기존 정부안 2천5백억원에서 6백억원 증액한 것 등은 호남을 배려해주었다기보다는 국책 사업이라는 것을 감안해 늘렸고, 새로 신설되는 도로 건설 예산도 산업단지 진입 도로 등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병목 현상이 매우 심한 곳을 골라 늘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눈에 띄게 ‘뭉텅이’는 아닐지라도 여야가 소소하게 지역구 예산을 챙긴 사례는 올해도 어김없이 발견된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의 지역구인 여수 국가산단 진입 도로 예산은 1천7백억원에서 3백10억원이 늘었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 예산도 1천2백억원에서 2백억원이 증가했다. 특히 2009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논란이 되었던 ‘형님 예산’(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 남·울릉 관련 예산)은 올해도 무난하게 심의를 통과했다. 울산-포항 복선 전철은 5백억원에서 20억원이 추가로 잡혔고, 포항 영일만 신항 인입 철도는 애초 정부안에는 아예 없었으나, 30억원이 신규 예산으로 잡혔다.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 진입 도로도 1백43억1천만원에서 10억원이 증액되었다. 특히 명백히 ‘형님 예산’인 울릉도 일주도로 국지도 건설에는 새로 20억원이 들어갔다. 이 울릉도 일주도로는 2009년도 예산 심사 때 이의원의 옆 지역구인 이병석 국토해양위원장의 제안으로 국토해양위 심의에 들어갔으나 전체 예결위 회의에서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빠졌던 예산이다.

이와 연관지어 볼 때 이상득 의원이 지난 1월5일 예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의원은 이날 포항시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역의 대형 예산은 영·호남 정권이니 하는 지역성이 아니라 해당 지자체와 국회의원의 노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자기 지역의 예산을 따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지역 예산에만 배 아파하는 행태는 이제 없어져야 하며, 어렵게 유치한 대형 국책 사업을 역량 부족으로 사장시키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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