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에 웬 70년 전 죄인 머리가…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1.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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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실에 백백교 교주의 잘린 머리와 유명 기생 생식기 보관…종교·여성계, “폐기해야” 한목소리

▲ 전용해의 머리와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가 보관되어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약칭 국과수)는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산실이다. 전국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과수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런데 국과수에는 공공연한 비밀 한 가지가 있다. 이곳 지하 부검실에는 일제 강점기에 악명이 높았던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머리’와 유명 기생집인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가 포르말린 용액 속에 담긴 채 보관되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성(性)적인 능력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체 표본이 어떻게 해서 국과수 부검실에 있는 것일까.

일단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1937년 2월 조선 팔도가 공포에 휩싸이는 일이 있었다.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 교주 전용해 등이 10여 년 동안 무려 6백20여 명의 신도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들은 ‘호외’까지 내며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백백교 사건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혹세무민한 사이비 종교가 문제였다. 전용해의 아버지인 전정운은 1912년 자신을 금강산 도인이라고 칭하며 ‘백도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창시했다. 전정운은 신도들에게 ‘헌금’ 명목으로 돈을 바치게 하여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관헌에게 체포되었고, 백도교도 와해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전용해가 1923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기도 가평과 양평을 근거지로 ‘백백교’를 창시했다. 전용해는 스스로 교주가 되어 ‘대원님’이라고 호칭했고, “곧 심판의 날이 온다” “천부님이 내려오셔서 나는 임금이 된다” “헌금을 바치는 순서대로 너희에게 벼슬을 주겠다”라는 등의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여기에 혹한 신도들은 재산을 통째로 헌납하거나 자신의 딸을 바치기도 했다. 

전용해는 잔인한 교주였다. 자신에게 불만을 품거나 반기를 드는 신도들은 ‘벽력사’ 직책을 가진 심복을 시켜 무참하게 살해했고, 일부는 산 채로 매장했다. 그러다가 1937년 전용해 첩의 오빠인 유곤용이 일제 경찰에 고발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1937년 6월8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일본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3만장이 넘는 조서를 작성했고, 24차례나 현장 조사를 나갔다. 각 읍면에서는 시체 처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조선총독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라고 적었다.

일본 경찰은 백백교 간부 12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교주인 전용해는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다가 1937년 4월7일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일제는 전용해의 시신을 거둔 후 범죄 연구용으로 삼기 위해 머리는 잘라서 포르말린 용액 속에 넣어 보관했다고 한다. 그 뒤 광복 등을 거치면서 전용해의 머리가 국과수로 전해져 내려왔다.

현재 전용해의 머리는 국과수 부검실에 보관되어 있다. 그의 머리를 본 사람들에 따르면 포르말린 용액이 담긴 대형 유리병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상태는, 양쪽 뺨 아래의 살갗은 발견 당시 짐승에게 뜯어먹혀 보기 흉하게 벗겨져 있고, 머리에는 절개한 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제가 연구를 위해 절개한 후 실로 꿰맨 것으로 추정되는 자국이다.

국과수 지하 부검실에 신체 표본이 있는 또 한 사람은 명월관 기생이다. 일제 강점기에 가장 유명했던 기생집이 명월관이었다. 1909년 대궐 궁내부 주임관과 전선사장으로 있으면서 궁중 요리를 맡았던 안순환이 서울 종로(지금의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자리)  2층 양옥에 ‘명월관’ 간판을 내건 것이 시초가 되었다.

같은 해 ‘관기 제도’가 폐지되자 궁중의 기녀들이 대거 명월관으로 몰려들면서 명소가 되었다. 명월관에는 주로 고관대작이나 친일계 인물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며, 문인과 언론인들도 출입했다고 한다. 그러다 1918년에 대형 화재가 나면서 소실되었다.

▲ 백백교 사건 공판정에 들어가는 피고인들의 사진을 실은 당시 신문(왼쪽). 아래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 기생들. ⓒ뉴스뱅크이미지

국과수 “처리 방법에 대한 규정 없어 고민”

일제는 왜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를 적출했고, 당사자는 누구일까? 정확한 내력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국과수에도 기록이 전무하다.

하지만 전해지는 말로는 이 기생과 동침을 한 남자들이 줄줄이 복상사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 기생이 사망한 후 일제가 신체 연구용으로 성기를 적출해 포르말린 용액 속에 넣어 보관했다고 한다. 사망 당시 30대로 알려진 이 기생의 사망 원인도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일제 강점기 일본 화가 이시이와 불행한 사랑에 빠졌다가 1918년 동반 자살한 명월관 기생 ‘홍련’의 생식기라는 설도 있다. 일본 박물관에는 아직까지 이시이가 그린 ‘홍련화’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2003년 11월에 개봉된 강수연 주연의 영화 <써클>이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는 기생의 생식기와 홍련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종교계와 여성계에서는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교여성개발원 108인회 강보향 부회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오는 여성의 생식기를 지금까지 국과수가 보관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이 여성의 신체 표본은 남성적 시각에 입각한 성적 쾌락이나 성적 호기심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이라도 이 여성의 생식기 표본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백백교 교주인 전용해의 머리와 명월관 기생의 신체 표본에 대해 역사적 산물로서의 가치나 과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는 별로 없다고 말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는 인체 표본에 범죄를 수사하는 차원이나 과학적인 가치는 없다고 본다. 역사적 산물로서의 보존 가치도 크게 없다. 일반에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초적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신체 표본을 보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폐기하는 등의 절차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과수측은 “지금까지는 역사적 의미 때문에 함부로 폐기할 수 없어 비공개로 보관하고 있다. 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적절한 관련 규정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중이다. 빠른 시일 내에 해결 방안을 강구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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