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쟁朴투’ 총성은 울렸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1.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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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고 박근혜 전 대표가 즉각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을 둘러싼 여·여 대립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친박계는 세종시 수정안 카드가 ?


1995년 우리 사회에 ‘김대중 죽이기’라는 용어가 크게 회자된 적이 있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출간해서 화제를 일으킨 책 제목이었다. 제목도 섬뜩한 <김대중 죽이기>는 역설적으로 정치인 김대중을 살려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정계 은퇴 중이었던 김대중은 정계에 복귀했고, 2년 후 대선에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 ‘박근혜 죽이기’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친박(친박근혜)계’ 내부 진영에서 들려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친이명박)계’가 밀어붙이고 있는 세종시 수정안 카드가 곧 ‘박근혜 죽이기’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는 친박계의 역설적 기대 심리가 묻어 나온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 2년 후 대선에서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야심이 그것이다.

1월14일 오후에 만난 친박계 한 핵심 인사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너무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이어서 일부 용어를 순화해야 할 정도였다. “지금의 세종시 전략은 한마디로 MB(이대통령)의 박근혜 죽이기이다. 아니면 왜 지난 2년간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이 난리인가. 백 번 양보해서 2007년 대선 때는 충청 표를 의식해서 가만히 있었다고 치자. 진작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했다면, 인수위 시절에라도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아니면, 그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라도 흘렸어야 했다. 그때는 원안 추진 약속을 왜 했나? 갑자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그게 아니겠지. 이대로 가다가는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질 것 같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것 아니냐. 좀 솔직해져라. 아무리 전략을 쥐어짜 봐도 박근혜 죽일 방법은 세종시밖에 없는 것이다. 2008년 정국 위기 때 노무현 죽이려고 박연차 카드 들고 나온 것과 똑같다.”

이번 세종시 수정안에 따른 여·여(與·與) 갈등으로 이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나라당 친이계측은 박 전 대표를 향해 ‘제왕적’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정치적 소신에 따라 반대를 할 수도 있지만, 수정안이 나오기도 전에 ‘무조건 반대’라고 못 박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라고 박 전 대표를 비난했다. 반면, 친박계의 한 의원은 “‘아군일수록 곁에 두지 말고 멀리 보내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MB는 박 전 대표를 어떻게 했나. 곁에 두지도 않고 멀리 보내지도 않고, 아예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MB는 정치 도의를 모른다”라고 이대통령을 비난했다. 

<시사저널>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여론을 살펴보고자 1월14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이번 세종시 논란으로 가장 손해를 보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국민들은 박 전 대표보다 이대통령을 더 많이 꼽았다. 이대통령 19.9%(중복 응답 25.5%), 박 전 대표 11.3%(중복 응답 17.5%)의 순이었다(20~23쪽 기사 참조). 이는 박 전 대표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한, 정부가 제시한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국민들이 직시한 것으로 보인다. 즉, 박 전 대표가 버티면, 궁극적으로 이대통령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길 것이라는 예상이다. 청와대와 친이계에서도 이런 계산을 안 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런 점을 뻔히 알면서도 왜 굳이 수정안을 고집한 것일까.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1월13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기자에게 귀띔했다. 이 고위 관계자가 “수정안이 (통과) 안 될 수도 있다. 그것도 안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한 기자가 “안 될 것을 무엇 때문에 발표했는가”라고 묻자, “잘 생각해보라”라고 의미심장한 답변을 했다는 전언이다. 안 되는 경우까지를 상정해놓고 수정안을 밀어붙였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 세종시 수정안 카드가 청와대와 친이계의 ‘꽃놀이패’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어떤 식으로 결과가 나와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여권 주류의 최대 목표는 당연히 세종시 수정안 통과에 있다. 믿을 것은 국민 여론뿐이다. 박 전 대표가 여론에 밀려 원안 고수 입장에서 물러서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박 전 대표를 지탱해 온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한칼에 날아간다. 설사 박 전 대표가 혼자 버티더라도 친박계가 와해되어 수정안이 가결되면 완벽한 친이계의 승리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수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친이계의 패배이자 친박계의 승리가 되는 것이냐 하면, 또 꼭 그렇지만도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친박계와 야권의 결사 반대로 결국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려워지면 여권 주류는 어느 시점에 가서 포기 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형식은 이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등 극적 효과를 노리는 다양한 방식이 동원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마디로 “국가 장래를 위해 수정안을 만들어냈는데, 친박계와 야권의 반대로 정략적인 희생물이 되어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주호영 특임장관은 1월15일 “만약 수정안이 부결되면 세종시 공사가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되면 세종시 현지가 그냥 방치된 채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 뻔하다. 상황은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보수 여론과 지역 여론이 다시 들고 일어나는 등 정국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이런 모든 정국 혼란의 책임을 박 전 대표와 야권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치 일정을 보아도 친이계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치컨설팅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수정안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적인 셈법에서 친이계가 얻는 효과도 있다. 즉, 수도권을 향한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의 북상을 확실히 차단시키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논란이 수도권 대 충청권의 대립으로 귀결되면서 여권 주류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수도권을 확실히 다지는 효과를 얻고 있다”라고 밝혔다.

▲ 정운찬 국무총리가 1월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청와대의 여론 개입’ 의혹 문건까지 보도돼 상황 더욱 혼미

이대표는 “수정안에 대한 전국의 찬반 여론이 6 대 4 이상으로 벌어지지만 않으면 박 전 대표는 버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오히려 여론의 추이에 따라서는 6 대 4의 차이가 더 좁혀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친이계는 또 다른 전략에 골몰해야 한다”라고 예측했다. 이런 분위기가 실제 연출되는 현상도 나온다. 이번 <시사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수정안 발표 직후와 확실히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월11일 각 매체가 발표한 결과에서는 수정안 찬성 쪽 의견이 적게는 7.0% 포인트 차에서 많게는 17.3% 포인트 차까지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14일 실시한 본지 조사에서는 찬성 49.3%, 반대 44.5%로 거의 오차 범위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좁혀져 있다(20~23쪽 기사 참조).

▲ 1월11일 국회 앞에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삭발식을 가진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래 왼쪽부터 임영호·류근찬·김창수·이상민·김낙성 의원. ⓒ시사저널 유장훈

친박계의 분위기도 고무적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수정안 발표 직후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은 ‘여론이 수정안 찬성 쪽으로 많이 쏠리면 (박 전 대표도) 더 이상 반대만 하기도 어려운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전국의 절반 이상이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아닌가. 전국 여론은 결국 수도권 여론인데, 의미가 없다”라고 애써 의미를 평가 절하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찬반의 여론 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국민과의 약속을 우선시하는 (박 전 대표의) 진정성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라며 매우 반기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표의 대중적 인기도가 지금의 수정안 찬반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라는 한 여론분석 전문가의 말처럼, 박 전 대표의 이례적이고 즉각적인 ‘강력한 반대’ 입장 표명이 친이계의 세종시 정국 시나리오에 경고음을 울려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친이계의 대응 시나리오도 만만찮은 것으로 보인다. 1월14일 한겨레는 여권에서 작성했다는 문건 하나를 공개했다. 이 내용을 보면, 결국은 박 전 대표의 입장이 향후 수정안 여론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을 이미 예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도 상정하고 있었다. 세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박 전 대표가 발표 직후 ‘반대’를 표명할 경우, 그 대응책으로 ‘우호적 논조의 청와대 출입기자 등을 활용해 ‘특정 정치 지도자의 발표 직후 여론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기자 칼럼을 게재’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건은 청와대에서 작성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청와대측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문건이 알려지기 하루 전인 13일, 기자는 한 청와대 출입기자로부터 “지금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아무 말 못하겠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현 상황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일각에서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등의 여파로 꼬리를 내리거나 현 정부에 우호적인 대다수의 언론 등을 통해 꾸준히 수정안에 대한 홍보전을 펼치겠다는 여권의 전략이 이미 일부 언론사의 윗선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난감해하고 있다”라는 말도 들려왔다. 지난 1월6일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의 내용이 이미 전파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다. 흔히 보아왔던 여야 전쟁이 아닌, 여·여 전쟁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이 입을 상처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이렇게 양쪽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여당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진다”라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일간지의 한 중견 기자는 “앞으로 한나라당에 더 이상 ‘중도’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1백69명의 의원들은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줄을 서야 할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번 친이계의 공격이 조기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범박(凡朴)계’의 외연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전망했다. 친이계가 더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대통령은 이미 조기 레임덕 가능성까지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2의 ‘공안 정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북한 카드 등으로 새로운 정국 반전을 준비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청와대와 여권 주류의 ‘박근혜 대세론’ 흔들기, 나아가서는 친박계의 주장처럼 ‘박근혜 죽이기’로 불리는 세종시 수정안 전략은 주효할까. 1월11일 수정안 발표를 계기로 짧게는 올 6월의 지방선거, 길게는 2012년 대선을 향한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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