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흘러간 옛노래’ 되는가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0.01.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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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후 EU에 영어 많이 쓰는 신규 회원국 늘어나면서 유럽 내 위세 약화…영어 비중은 날로 커져

▲ 지난해 12월1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이 유럽연합을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할 리스본 조약의 발효를 선포하고 있다. ⓒEPA 연합


유럽 통합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모네의 주창으로 출발했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창설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벨기에 5개국 중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 3개국이 프랑스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EEC 내에서 프랑스어의 비중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권이 되어가는 유럽 연합(The European Union is becoming an English-speaking zone)’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추세이다. 1970년대 이후에 유럽에서 프랑스어가 쇠퇴하고 영어가 어떻게 강화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유럽 통합 과정에서 프랑스어의 독보적 위치는 1973년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가 유럽경제공동체(EC)에 가입하면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1981년에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1986년에 새 회원국이 되었을 때도 EC 내 프랑스어의 입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실제로 EU 내에서 언어의 비중은 EU 내 최고위직인 EU 집행이사회 위원장직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어가 유럽의 주도적 언어로 군림하던 절정의 시기는 룩셈부르크의 가스통 토른이 1981년에서 1985까지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위원장으로 기록되는 프랑스의 자크 들로르가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역임했을 때이다. 자크 들로르 후임으로 다시 룩셈부르크의 자크 상떼가 1999년까지 역임했었지만, 프랑스어가 EU 내 주도 언어로서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자크 들로르 위원장의 퇴임 시점부터다.

이와 때를 같이한 영어의 부상은 1995년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같은 신규 회원국을 EU가 받아들임으로써 두드러졌다. 그 이유는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출신 ‘유로크랏’ (Eurocrat-European과 bureaucrat의 합성어로 ‘EU 공무원’을 지칭함)들은 프랑스어보다 영어에 훨씬 능통하기 때문이다.  EU 집행이사회에서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한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1995년만 해도 EU 집행이사회 사무실 서류의 약 70%는 프랑스어로 쓰였는데, 이제는 80% 이상이 영어라는 것이다.

1995년 EU 확대에 이어서 2004년 EU에 가입한 10개 회원국(발트 3국,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사이프러스, 몰타, 슬로베니아) 출신 유로크랏의 경우, 60%는 영어를 제2 외국어로 하고 나머지 20%만 프랑스어를 제2 외국어로 하기 때문에, EU 내 영어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EU 집행이사회 통계에 따르면 EU 내 비영어권 국가의 고등학교 학생 가운데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의 비중은 92%인데, 프랑스어는 30%, 독일어는 12%에 머물렀다. 특이한 점은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서로 우호적으로 노력함에도 두 국가 내에서 상대방 언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EU 회원국 중 교과 과정에서 영어 대신 프랑스어를 더 많이 가르치는 유일한 나라는 루마니아이다. 2007년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는 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한 나라가 프랑스였다는 사실은, EU 내 프랑스어의 열세를 의식한 ‘자구책’이었다고 전해진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유럽 주도 언어의 변천사 엿볼 수 있어

▲ 노르웨이의 알렉산데르 리박(중앙)과 그의 밴드가 2009년 5월17일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EPA 연합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 이하 유로비전)는 1956년부터 유럽방송연맹(EBU)이 주관해 온 유럽 최대의 가요제이다.  2005년 50회를 기념한 유로비전은 세계의 최장수 TV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비(非)스포츠 부문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전세계 6억명의 시청자가 매년 5월에 지켜보는 행사이다.

유로비전의 역대 그랑프리(우승)를 차지한 노래의 언어 변천사를 보아도 유럽의 주도 언어가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옮겨진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7개국이 참가한 1956년 1회 유로비전 대회에서는 개최국 스위스의 리스 아시아가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 <르프랭(Refrain)>이 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 유로비전 대회까지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가 열 번이나 우승한 사실에서 보듯이, 초기 유로비전에서는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모나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참가국의 자국어로 불러야 되는 규정이 1973년 대회부터 사라진 덕을 본 것이 바로 1974년 스웨덴의 아바가 영어로 부른 <워털루(Waterloo)>였다. 자국어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가 2001년과 2008년에 프랑스어와 영어를 혼합한 노래로 참가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를 두고 1977년 마지막 우승한 이후로는 입상을 하지 못한 프랑스의 ‘궁여지책’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팝뮤직에서 영어의 비중을 의식한 ‘국제화’의 방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가 유로비전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것은 1988년 캐나다 국적의 셀린 디옹이 스위스를 대표해 불렀던 <느 빠르떼 빠 쌍 무아(Ne Partez Pas Sans Moi)>였다. 그리고 1999년 이래로 유로비전 우승곡의 언어는 2007년 세르비아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였다.

27개 회원국을 지닌 EU는 ‘다언어주의(multilingualism)’ 존중 원칙에 따라 23개의 언어를 EU 공식어로 인정하고 있다. 참고로, 국제연합(UN)은 1백92개 회원국이 있지만, 유엔 공식어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아랍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6개 언어이다.

23개 EU 공식어 가운데 영어의 비중은 이미 프랑스어를 추월해 주도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18세기 러시아 궁정에서조차 사교 언어로 풍미했던 프랑스어는 이제 팝뮤직과 비즈니스 언어인 영어에 정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인터넷 검색어로서 영어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었다.

이처럼 영어의 떠오름에 따라 한때 유럽의 주도 언어였던 프랑스어는 확실히 퇴조되었다. EU 주요 기관이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과 EU 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는 프랑스어권이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그곳의 복도와 거리에서 여전히 프랑스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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