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국에서도 관전자 신세로 전락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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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내 불만 최고조에 달해…비주류는 “정대표가 당을 사조직화한다” 정면 비판하기도

▲ 1월11일 민주당이 국회 본청 앞에서 정부의 세종시 원안 수정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당의 위기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인가.” 민주당 핵심 당직자가 최근 기자에게 자조 섞인 목소리로 한 말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4대강 사업을 포함한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또 한 번 한나라당에 ‘완패’했다. 당내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한나라당에 끌려다니고만 있다”라는 비난들이 쏟아졌다. 당 일각에서는 “중과부적이 아니냐”라며 애써 수적인 열세 탓으로 돌리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지난해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3 대 2로 승리하고, 한때 10%대로 곤두박질쳤던 지지율이 최근 20%대로 회복된 것이 민주당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1·11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본격적으로 불붙은 지금의 세종시 정국에서도 민주당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여권의 친이-친박계 싸움에서 관전자 신세로 전락해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라고 폄훼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도 충청권으로 달려가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강하게 설파했다. 하지만 ‘병 안의 울림’에 불과했다. 여권 내부 싸움에 민주당은 묻혀버린 형국이다. 6·2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제1 야당’인 민주당이 완벽하게 탈바꿈을 해야 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 이후로 잡혀 있는 전당대회(전대)를 지방선거 이전에 열어서 새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도부의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심정은 <시사저널>(제1050호, 2009년 12월8일자) 조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주당 의원 62명 가운데 ‘현재의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노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무려 80%(49명)가 “지도부가 변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좀 더 분발해야 한다” “대안을 마련해서 대응해야 한다” “정치력이 부족하다”라는 등 현 지도부에 대한 쓴소리도 거침없이 나왔다.

비상대책위 또는 집단 지도 체제 등 지도부 변화 요구 커져

▲ 지난 1월14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국민모임 주최로 ‘민주당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새해에 접어들면서는 당 내부에서 ‘노골적으로’ 당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민주당 강창일·장세환·문학진·이종걸·최문순 의원 등 11명으로 구성된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국민모임) 주최로 1월14일 ‘민주당,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행사장인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이 2백여 명의 참석자들로 꽉 들어찼는데, 주최측 관계자는 “이렇게 많이 참석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민주당의 ‘비전’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날 발제를 맡은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의 민주당과 진보 개혁 진영의 패배는 처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을 하고, 혁신하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패배 이후 천막 당사로 이사를 가고 자기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결과, ‘차떼기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민의 지지를 받고,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분석했다. 손교수는 특히 “정세균 대표가 말로는 민주 대연합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이어 호남의 영주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정동영 의원의 민주당 복귀를 가로막고 있는 ‘소인배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라고 정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새로운 당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치적 인적 자원의 영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왔던 이른바 ‘DJ 정치’를 배워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정기국회가 끝난 시점과 맞물려 당 내부에서도 지도부의 리더십과 향후 진로 등을 놓고 본격적인 갑론을박이 시작되었다. 정대표 체제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민주당이 전략도, 비전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서 민주당이 잊혀져가고 있다”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지도부의 리더십에 물음표를 찍는 인사들도 있다. 미디어 법과 4대강 사업 등에서 한나라당에 맞서 처음에는 강경한 어조로 반대하며 나섰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재선 의원은 “지도부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있으며 여당과의 싸움에서도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비판했다. 정대표가 차기 대선을 겨냥해 민주당을 사당(私黨)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당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민모임측은 “각종 포럼과 비공개 워크숍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줄 세우기’를 시도하고 있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강창일 의원은 1월20일 전화 통화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왜소하게 비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거나, 김근태·손학규 전 대표 등으로 구성된 집단 지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세균 대표측은 “민주당을 사조직화하려 한다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다”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주류파로 분류되는 최재성 의원은 “현 지도부는 어느 특정 계파가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 당권’이나 마찬가지다. 정대표는 취약한 정당에서 공천 한 번 제대로 못한 대표이다. 그런 대표를 흔드는 것은 (비주류에서) 당권 장악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6·2 지방선거 이후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대를 열 예정이다. 그 이전에 돌발 변수가 생겨 조기에 전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현재로서는 지방선거 이후가 유력해 보인다. 그럼에도 조기 전대의 핵심 변수로 지방선거가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선출될 차기 대표는 ‘막강한 파워’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작금의 민주당 ‘내분’은 차기 당권, 나아가서는 대권 경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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