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공격 선봉에 선 그들은 누구인가
  • 정락인·안성모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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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의원 무죄 판결과 MBC 제작진 무죄판결이 나온 이후 극심해지고 있는 ‘사법부 때리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부 보수 단체들이 법원과 해당 판사의 집 앞에 몰려가 연일 항의 시위를 하는가 하


일부 보수 단체들의 과격 시위가 도를 넘어섰다. 지난 1월20일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 단체들이 법원과 판사의 집 앞으로 몰려갔다. 연일 항의 집회가 열리면서 이곳은 보수 단체들의 점령지로 변했다. 주류 보수 단체들이 관망하는 사이에 신흥 보수 세력들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에는 다른 보수 단체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이들의 말은 거칠고 행동은 원초적이다. 연일 법원과 판사들의 집 앞으로 몰려가 판사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빨갱이’라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판사의 화형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취재 중이던 기자에게는 휘발유를 뿌리며 위협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급기야 1월22일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달걀을 던지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국가 수호’ ‘법질서 회복’을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행동은 그렇지 않자 보수 진영에서조차 이들의 극단적 행동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법원 앞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보수 단체는 어버이연합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판사 집 앞에서 시위하고, 대법원장 차에 달걀을 던지고, 기자에게 휘발유를 뿌린 사람들이 모두 이 단체 소속이다. 이에 대해 추선희 어버아연합 사무총장은 “이용훈(대법원장)은 스스로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위배하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다. 친북 좌파 세력에게 준법 질서를 지킬 필요가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상대할 것이다. 강기갑이나 <PD수첩>은 누가 봐도 죄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의 극우 행동은 이전에도 문제가 되었다. 지난 2008년4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특검 소환을 앞두고 있을 때, 회원50여 명이 한남동 조준웅 특검팀 사무실로 찾아가 삼성을 비호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북한에서 온 조문단에게 달걀을 던진 것도 이들이다. 같은 해 9월 흑석동 국립 현충원 앞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묘를 설치하고 “DJ묘 파내서 평양으로 이장하라”라며 모형 불도저와 포크레인으로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10월에는 진보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를 위한 ‘희망과 대안’ 창립 행사장에 몰려가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라며 소동을 벌여 창립 행사를 무산시킨 적도 있다. 이처럼 어버이연합의 튀는 행동이 계속되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국정원이 뒤에 있다’ ‘정치 세력이 든든한 배경이다’ ‘누가 돈을 대주고 있다’ ‘돈을 받고 움직인다’라는 것이었다.

실제 어버이연합의 배후에는 정치 세력이 있는 것일까. 서울 종로구 인의동 쌍린빌딩 2층에 있는 어버이연합은 지난 2006년 5월에 출범했다. 자유네티즌구국연합과 박정희 대통령 바로 알기에서 온라인 활동을 했던 추선희 사무총장이 주도했다. 현재 조직은 크게 고문, 회장, 부회장, 공동대표, 사무총장, 실무 국장들로 나뉘어져 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이칠성씨(81)는 북한 실향민 출신이다. 이씨는 북한의 사리원농고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남쪽으로 내려와 켈로 부대에서 참전했다. 자유네티즌구국연합에서 추선희 총장, 김병관 서울시재향군인회장과 함께 일을 했다고 한다. 현재 어버이연합의 모든 대외 활동은 추선희 사무총장이 주도하고 있다. 공동대표는 2인이다.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와 개인 사업가인 김용준씨가 맡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공동대표였던 서강석 전 자유네티즌구국연합 본부장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었다. 그 자리에 김용준 대표가 들어온 것이다.

▲ 서울 종로구 인의동에 있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사무실. ⓒ시사저널 이종현

“회비로 운영…앞으로는 솔직히 정부 지원 필요해”

전국 조직은 각 시·도에 15개 지부를 두고 있고, 회원은 1천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원 대부분은 60세를 넘긴 고령층이다. 회원들은 실향민, 전직 경찰, 한국전쟁 참전 군인 등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까지 이 단체의 ‘자금 출처’는 최대 미스터리였다. 정치권이나 보수 단체들도 궁금해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의외로 쉬운 답변이 왔다. 활동비 전액을 회비에서 충당한다는 것이다. 회계장부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하는 등 회계 투명성도 강조했다.

따로 정해진 회비는 없다. 다만, 회원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발적으로 낸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참전 비용(8만원)을 내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한꺼번에 수십만 원을 내는 회원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돈을 내는 것과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이다. 회원 중에서는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준 공동대표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재정국장이 100원짜리 하나까지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어르신 돈 모아서 사무실 넓히는 것을 보면 기자들도 놀란다. 이번에는 돈을 왕창 걷었다. 몇천만 원은 될 것이다. 여유 있는 회원들이 십시일반해서 통장에 입금시켰다. 노인들의 투철한 국가관이 군자금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총장은 “앞으로는 솔직히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은 또 자신들을 도와주거나 뒤를 봐주는 세력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외부의 입김과는 전혀 무관한 자생적인 단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버이연합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념은 무엇일까. 이들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남북 관계를 ‘휴전 상태’로 보고 있다.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좌파’나 ‘친북 세력’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 모토가 ‘태극기 사랑’ ‘애국가 부르기’ ‘국민의례 지키기’ ‘친북·종북 세력 몰아내기’ ‘시장경제 존중하기’ 등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우리는 순수한 민간 모임이다. 보수 단체들의 수장을 보면 왕년에 한 가닥씩 하던 사람들인데, 우리는 서민들이 모였다. 회원 중에 장관 출신이나 장군 출신은 한 명도 없다. 우리는 좌파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을 뿐,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일만 터졌다 하면 귀신같이 나타난다.” 한 시민단체 간부가 어버이연합을 두고 한 말이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이 단체 회원들이라는 것이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
백 명이 어떻게 매번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 비결은 ‘안보 강연’에 있었다. 어버이연합은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서울 종로 종묘공원에서 강연회를 개최한다. 비가 오거나 추운날에는 공원 옆 사무실에서 연다. 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것이 2006년부터 공식 행사가 되었다. 휴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수백 명의 인원이 ‘항시 대기’ 상태에 있다. 강연회에 모였다가 일이 생기면 바로 현장으로 출동하는 것이다. 지난 1월22일에도 강연회 대신 서초동 대법원 정문에서 모여 이용훈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강연회가 회원들의 ‘정신 무장’ 용도로 이용된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시국 강연이 주를 이루는 데다가 강연 도중에 과격한 구호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추선희 사무총장은 “친북 좌파의 시각에서 보니까 자꾸 안보 쪽으로 치우쳤다고 하는데, 너무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강연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강의는 주로 북한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 별다른 주제가 없을 때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박원순 변호사 등을 집중적으로 해부하기도 한다. 이들이 바로 어버이연합의 주요 공격 대상이기도 하다.

종묘공원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나는 어버이연합의 회원은 아니다. 집안에서 별로 할일이 없다 보니 종묘공원에 자주 나오는 편이다. 가끔은 강연에도 참가하고 집회에도 따라간다. 반공 강연을 들으면 우리 같은 노인들은 모두 공감하는 편이다. 실제로 울분을 토하면서 집회에 가는 노인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주요 강사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결정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던 서석구 변호사(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준비위원장),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김진철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 대표, 부패추방시민연합 부산지부 대표를 지낸 최우원 부산대 교수,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인 이주천 원광대 교수 등이 나섰다. 강사가 준비되지 않은 때는 추총장이 직접 강의를 맡는다. 강의는 무료로 한다. 어버이연합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봉사 활동도 한다.

교회에서 지원받은 도시락을 어른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발 봉사, 사랑의 쌀 나눔, 독거노인 돕기 행사 등을 한다. 이 밖에 노숙자 돕기, 쓰레기 줍기 등의 봉사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이런 봉사 덕분에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순수한 ‘봉사’와 집회 ‘참여’를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버이연합의 행동을 보며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국가관’이 ‘극우관’으로 표출되면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극한 이념 갈등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자칫 우리 사회가 첨예한 이념 갈등에 빠져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어버이연합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어버이연합과 함께 활동하는 단체로는 보수국민연합, 자유개척청년단,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남굴사), 한·미우호증진서울지부 등이 있다. 지난 1월22일 대법원 정문에서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에도 이들 단체의 이름이 나란히 걸렸다.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얽히고설킨 관계를 알 수 있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자유네티즌구국연합(구국연합)에서 활동했다. 서강석 전 공동대표는 구국연합 본부장을 지냈다. 이칠성 회장의 경우 구국연합공동대표였던 김병관 전 서울시재향군인회장과 함께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전 회장과 함께 구국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던 인사가 서석구 변호사이다.

서변호사는 현재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준비위원장이다. 어버이연합에서 진행하는 안보 강연회에 여러 번 강사로 나섰다. 남굴사 대표인 김진철 목사도 강연회의 단골 강사이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인 박찬성 목사는 현재 어버이연합 공동대표와 보수국민연합 대표도 맡고 있다. 박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 회장, 자유시민연대 집행위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실행위원, 북핵저지시민연대 대표 등을 지낸 대표적인 보수 성향 종교인이다.

박목사는 자유개척청년단과도 함께 활동을 많이 했다. 현재 자유개척청년단은 최대집 대표와 조대원 부대표가 이끌고 있다. 조부대표는 어버이연합의 실무를 다방면에서 돕고 있다. 자유개척청년단의 송원정 국장은 공석이던 어버이연합의 대변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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