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란 이런 것이다
  • 안정락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
  • 승인 2010.02.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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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애플 CEO, ‘일생의 역작’ 아이패드 내놓아 아이팟-아이폰 신화 잇는 IT 충격 만들어낼지 주목

▲ 1월27일 스티브 잡스 회장이 ‘아이패드’를 공개하고 있다. ⓒAP연합

세계 최고의 창의적 경영자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전자책(e-book)+넷북(미니 노트북)+MP3플레이어’의 기능을 묶은 올인원 IT(정보기술) 기기, ‘아이패드’로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는 “태블릿PC인 아이패드가 스마트폰과 랩톱(노트북) PC 사이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으며, 이제 애플은 글로벌 모바일 회사이다”라고 강조했다.

잡스가 아이패드라는 신개념 기기를 내놓은 것은 떠오르고 있는 전자책(e-book) 콘텐츠 시장과 교육용 PC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애플의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온라인 전자책 콘텐츠 장터인 ‘아이북스(iBooks)’를 발표한 것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애플은 이미 펭귄, 맥밀란 등 5개 유명 출판사와 서적 콘텐츠 제휴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패드는 잡스가 “일생의 역작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공을 많이 들여온 제품이다. 기존 아이폰처럼 온라인 멀티미디어 장터인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플의 웹브라우저 ‘사파리’를 통해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잡스는 “게임을 즐기거나 동영상을 보는 데도 아이패드가 스마트폰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와이파이(WiFi 무선랜), 3세대(G) 이동통신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해 멀티미디어 유통 시장을 장악해나간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잡스는 아이패드의 가격도 기존 아이폰과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낮추며 시장 확대를 가속화할 계획이다. 아이패드의 와이파이(무선랜) 모델은 메모리 용량별로 4백99~6백99달러이며, 와이파이와 3G 통신 모델은 6백29~8백29달러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디자인, 특히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강조한다. ‘최소한의, 극한의 미학’을 뜻하는 미니멀리즘. 애플의 일관되고 세련된 제품들은 이같은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잡스는 애플을 부활시킨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설계할 때도 경쟁사들과 달리 가능한 한 단순하고 직관적 디자인을 구현했다. 복잡한 버튼을 줄이고 간편한 ‘스크롤 휠’(손으로 돌리는 방식의 조작 기구)을 MP3플레이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사용자들은 열광했고,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무려 2억5천만대 정도가 팔려나갔다.

잡스가 디자인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디자인이 단지 어떻게 보이는가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디자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이다. 어떤 제품의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제품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늘 새로운 것 추구하는 ‘아이디어 맨’

잡스의 이름 앞에는 늘 ‘혁신’이 붙어 다닌다.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과 실적, 영향력을 보여준 CEO이다”라고 그를 평가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2010년 주목할 인물’ 6명 가운데 한 명으로 잡스를 선정했다.

잡스는 독특한 철학만큼이나 인생 역정도 남다르다.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난 그는, 친모의 얼굴도 모른 채 한 부부에게 입양된다. 어린 시절 잡스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다. 전기 소켓에 머리핀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은 것은 그나마 사소한 일이었다. 전자 장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76년 21세의 나이에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를 사무실로 개조해 지금의 애플을 설립하게 된다. 이어 1977년에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인 ‘애플Ⅱ’를 세상에 내놓는다. 당시 IBM으로 대표되는 대형 컴퓨터만 있던 시절이다.

사람들은 그 작은 컴퓨터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잡스는 회사 설립 4년 만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가 닥치기 시작한다. 잡스의 독선적인 경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이사회가 1983년부터 그에게서 경영권을 빼앗았다. 잡스는 결국 애플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바로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창업해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잡스는 먼저 ‘넥스트스텝’이라는 독특한 운영체제(OS)에 플로피디스크가 아닌 광자기드라이브(MOD)를 장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MOD가 탑재된 PC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엄청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잡스는 다시 콘텐츠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영화와 컴퓨터를 동시에 활용한 3차원(3D) 애니메이션이 그를 매혹시켰다. 잡스는 영화 <스타워즈> 감독으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로부터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Pixar)를 사들인다. 픽사의 첫 작품인 3차원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1995년)가 3억5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대박을 터뜨리며 잡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반면, 잡스가 떠난 애플은 경영난이 심화되어갔다. 혁신적 아이디어보다는 경영과 관리에 치중한 탓에 애플 특유의 경쟁력이 사라졌다. 결국, 애플은 1997년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잡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애플 CEO로 복귀한 후에는 매력적 디자인과 편리한 기능을 갖춘 ‘아이팟’, 온라인 음반 장터인 ‘아이튠스’ 등을 연달아 내놓으며 콘텐츠 사업에까지 나섰다. 2007년에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스마트폰 ‘아이폰’을 공개해 세계인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특히 아이폰에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든 ‘앱스토어’ 서비스의 시작은 IT 역사마저도 바꾼 획기적인 시도이다.

잡스는 때로 지나친 카리스마와 자존심 탓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1984년 그가 개발한 운영체제 매킨토시는 그래픽 기반에 마우스 기술이 접목된 혁명적 상품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이를 애플 컴퓨터에만 쓰도록 고집했고, 결국 마케팅으로 무장한 IBM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의 결정은 애플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잡스는 이제 태블릿 PC, 아이패드로 새로운 신화에 도전한다. 끝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잡스가 이번에도 글로벌 IT업계에 또 하나의 충격을 줄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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