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세 거물’ 지방선거 기상도 GT ‘흐림’·DY ‘안개’·HQ ‘맑음’
  • 김하영 |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 ()
  • 승인 2010.02.02 19: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당 김근태 고문·손학규 전 대표·정동영 의원의 전면 복귀 전략 분석

▲ 맨 왼쪽부터 김근태 고문·정동영 의원·손학규 전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유장훈


1월 중순 민주당 비주류계 의원 11명으로 꾸려진 ‘국민모임’이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학진 의원은 “이대로는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서 김근태든, 손학규든, 정동영이든 당의 전면에 내세워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에둘러 말했지만, 현재의 ‘정세균 1인 지도 체제’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물난’을 겪고 있다는 민주당에서 그나마 이 세 사람이라도 전면에 나서서 뛰게 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당권 경쟁 구도는 좀 더 복잡하다. 지금의 민주당 지방선거 정치 기상도는 ‘김근태 흐림, 정동영 안개, 손학규 맑음’이다.

우선 김근태(GT) 고문부터 살펴보자. 재야 운동권의 대부로서 GT가 민주 개혁 진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작지 않다. 그를 둘러싼 관심사는 올해 7월 치러지는 서울 은평 을 재·보궐 선거 출마 여부이다. 지난해 10월에도 이곳이 ‘매물’ 후보로 떠오르며 GT의 출마 여부가 관심사였다. 당시 은평 을 선거가 무산되자 GT가 경기도 안산 상록 을 재·보선에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래도 은평은 재야 운동권 대부인 GT가 이명박 정권 최고 실세라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맞선다는 면에서 격에 맞지만, 지역구인 서울을 버리고 ‘금배지’를 달기 위해 안산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명분을 찾기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평 출마설’은 GT의 입지가 ‘은평 을’에 갇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지방선거 세력 구심점으로서의 변수가 아니라, 재야 지도자 개인으로 축소되어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며 김고문의 세력 기반인 민주평화연대(민평련)의 조직력도 상당히 약화되었다. 정동영-손학규의 대립 구도 속에 민평련 인사들도 개인의 판단에 따라 지지 후보를 달리 했었다. 일각에서는 “GT가 이대로 그냥 ‘어르신’이 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라며 지방선거에서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설 공간이 너무 좁다. 그래서 김근태 고문은 ‘흐림’이다.

‘국민모임’ 토론회에서 문학진 의원이 비대위 구성과 더불어 ‘정세균 대표 사조직 결성 의혹’을 주장했을 때, 토론회를 구경하러 왔던 민주당 주류측의 한 인사는 “문의원 뒤에 정동영(DY) 의원의 실루엣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사조직 의혹’에 대해 우상호 대변인은 “특정 인물이 배후에 있는 것 같다”라고 공개적으로 쏘아붙였다. DY의 복당 절차가 진행되면서 특히 정세균 대표와 ‘친노’ 및 ‘386’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주류’에 대항하는 비주류 세력의 구심점으로 DY가 다시 부상하는 모양새이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비주류 세력은 파편화되어 있었다.

DY의 복당과 함께 주류와 비주류의 당내 대립 전선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주류 지도부측에서 내놓은 ‘시민배심공천제’를 놓고 DY계에서 적극 반발하고 있다. 지방선거 공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후보 경쟁도 예사롭지 않다. 이종걸 의원은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경기도지사 출마 의지를 나타내왔으나, 이번 출마 선언은 밑그림의 차원이 다르다. 주류측의 김진표 최고위원에 맞선 비주류 대표 선수가 된 것이다. 이의원의 캠프에는 DY의 참모들이 포진되어 있다.

‘주류 대 비주류’ 맞선 민주당 기류 변화 주목

하지만 DY의 ‘복당 플랜’이 성공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는 이미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른 패장의 멍에를 썼다. 그 후 내린 선택도 ‘전주(호남) 회귀’였다. DY는 ‘전북’이라는 강력한 교두보를 갖고 지방선거 비주류 연합을 결성해 수도권까지 노릴 수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좁혀놓은 정치적 입지가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이다. 주류측도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손학규’라는 강력한 카드가 남아 있다. 그래서 정동영 의원은 ‘안갯속’이다.

민주당 안에 있는 손학규(HQ) 전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그럼에도 ‘손학규의 가능성’ 측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역설이 성립한다. 지난 10년 집권 기간 동안 민주당은 혼란 속에서 많은 리더가 큰 내상을 입고 흉터를 남겼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손학규는 깨끗하다”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아직 대선에서 검증받지 않았다는 ‘카드’로서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총선 패배 후 ‘칩거’도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전반부에 미디어법, 4대강 등 집권 어젠더를 강하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왜소해진 민주당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HQ는 이 소낙비를 모두 피했다. 일각에서는 “HQ가 박근혜 정치를 배웠나 보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더불어 그 역시 어느새 가는 곳마다, 말 한마디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끌어내는 인물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명분과 실리는 쏠쏠하게 챙겼다. 지난 10월 재·보선 때 출마를 고사했다. 대신 자신을 따라 민주당으로 건너온 거의 유일한 후배의 당선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의리’를 선보였고, ‘당선’시키는 능력도 과시했다. 그리고는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로 부상은 거의 입지 않고 전리품만 차곡차곡 쟁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술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한 측근 인사는 “이제는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이 판도가 좋다”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당권까지 결정되는 타임테이블이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확실히 지분을 확보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가 경기도지사 출신이라는 점도 지방선거 수장으로서 장점이다.

HQ가 일선에 복귀해 ‘정세균’(당)을 지원하면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정대표를 떠받치고 있는 ‘386’ 세력의 대다수가 사실상 ‘친HQ’ 인사들이다. HQ는 복귀하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고 계파도 복원할 수 있다. 게다가 정세균 대 정동영의 대립 구도가 심화되면 중간 지대가 HQ에게 쏠릴 수도 있다. 현재는 ‘주류 대 비주류’의 두 기단이 만나 전선이 형성되어 민주당 날씨에 먹구름이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전선의 미래는 북상하는 ‘손학규 바람’이 미풍이냐, 태풍이냐, 아니면 완전 비켜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선거철에는 날씨 변화가 심하다. 야권 전체의 ‘선거 연합’ 논의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