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가 세계에서도 ‘최고’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2.0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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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 품목 중에서 선정…현재 상품 수는 3백87개, 전체 수출액 중 48% 차지

▲ 지난 2001년부터 지식경제부에서 세계 일류 상품을 선정해 지원을 하고 있다. 아래는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인증서 전달 무대. 한국 제조업의 얼굴이다.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경제의 원동력은 수출이다. 주력 상품이 가발이던 1960년대부터 반도체가 주력인 2000년대까지 한국은 수출을 통해 저개발 국가에서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한국의 수출 실적은 한국산 상품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때문에 정부는 한국산 제품을 세계 일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수출 품목의 다양화·고급화와 미래의 수출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세계 일류 상품 육성 촉진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2001년 메모리, 반도체, 선박 등 55개에 불과했던 세계 일류 상품이 사업 8년이 지난 지금에는 세계 일류 상품 3백87개, 차세대 세계 일류 상품 1백97개로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수출액 가운데 세계 일류 상품의 수출 기여도가 48%를 차지할 정도이다.

이는 정부 세계 일류 상품 사업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이 제도를 통해 ‘made in KOREA’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고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 일류 상품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세계 일류 상품 사업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일류 상품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 기업이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이 리스트에 관심을 갖는다. 투자와 전망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세계 일류 상품 선정 기준은 까다롭다. 올해부터는 사후 관리도 더욱 강화된다. 일단 선정할 때 품목 기준으로는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에 드는 품목 가운데, 세계 시장 규모가 연간 5천만 달러 이상이고 국내 시장 규모의 2배 이상이거나 수출 규모가 연간 5백만 달러 이상인 품목이 선정된다.

생산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은 자사가 생산한 상품이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이거나 국내 동종 상품 생산업체 가운데 수출 실적이 1위인 기업, 또는 수출액이 국내 동종 상품 전체 수출액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 선정된다.

▲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식경제부 주최, 한국생산성본부 주관으로 열린 인증서 수여식에서 세계 일류 상품 생산 기업에 선정된 업체들이 인증서를 받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나 탄소 저감 에너지, 고도 물처리, 신소재, 글로벌 헬스케어 등 신성장 동력 산업의 경우 수출 실적과 상관없이 차세대 일류 상품으로 선정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략적으로 육성·지원해야 할 산업에 대한 배려도 있는 것이다.

세계 일류 상품으로 인증받은 기업은 지식경제부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생산성본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소기업청, 조달청, 한국수출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기업은행 등으로부터 투자·기술·디자인·해외 마케팅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12월에도 2008년 실적을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5위권에 든 수출 품목 30개와 차세대 일류 상품 28개 품목을 선정해 인증식을 가졌다. 여기에는 전형적인 중소기업 업종인 회전 손톱깍기부터 휴대용 부탄가스, 전문 업체의 의료 기기,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상품인 TFT-LCD와 대형 선박, 시추선 등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재가 골고루 포함되어 우리나라의 수출 생태계 현황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국내 조선 산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제품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2009년에 선정된 세계 일류 상품 품목에서도 확인된다. 대기업인 현대중공업이 3품목, 대우조선해양이 2품목, STX엔파코가 1품목을 인증받았다.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선박 내장재 전문 업체인 비아이피㈜가 생산하는 2개 품목과 ㈜원일의 선박 엔진용 핵심 부품, 품목탱크테크㈜의 선박 화재 예방용 소화 설비 등 선박 건조에 들어가는 엔진부터 내장재, 부식을 막아주는 방청 도료까지 모두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조선 산업에서 대형 화물선이나 유조선, 시추선 등 한국산 제품이 세계 최고로 꼽히는 데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가 세계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중간재·산업재 아닌 소비재에서도 ‘베스트’ 나와

선실 내부의 천정 패널이나 욕실 유니트를 생산하는 비아이피(대표 박동헌)는 유럽에서 전량 수입되던 제품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발해 이 품목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했다. 박대표는 “설계부터 제조·설치까지 한 번에 가능한 비아이피만의 마감 공법은 세계 특허를 받았다. 가장 좋은 가격과 가장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가장 빨리 공급하면 세계 어디에 있는 고객이라도 우리 것을 안 살 수 없다”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비아이피는 4백여 개의 세계 동종 업종 중 가장 많은 인증서를 받아내 실력을 입증했다.

▲ 세계 일류 상품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 내용을 둘러보고 있다.

2009년에 선정된 세계 일류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인정받은 앞선 기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기술 혁신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특히 오랜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는 대기업의 신기술 개발은 금융 위기로 얼어붙은 세계 시장에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고 시장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

LG화학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TFT-LCD용 컬러필터 감광재를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해 일류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KCC도 자체 기술로 완성한 선박용 에폭시 방청 도료와 국내 최초로 완성한 진공 차단기용 세라믹으로 세계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모든 시스템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대우조선해양의 반(半)잠수식 시추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2009년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되면서 국내 조선 산업이 중국의 저임금 인해 전술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길은 앞선 기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중간재나 산업재만 일류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비재에서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일류 상품이 나왔다. 20년 동안 국내 정수기 시장을 이끌어 온 웅진코웨이는 최근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뛰어들며 2009년 세계 일류 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웅진코웨이는 그동안 국제수질협회의 공식 시험 기관으로 인증받은 것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기술 인증을 받으며, 먹는 물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기술 혁신까지 더했다. 웅진코웨이는 얼마 전 생수보다 탄산수를 좋아하는 유럽인의 입맛에 맞추어 수돗물을 탄산수로 바꿔주는 정수기를 개발해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 세계 일류 상품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 내용을 둘러보고 있다.
 ‘세계 일류 상품’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는 일류 상품의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앞으로 제품의 선정과 사후 관리, 지원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오는 5월 모스크바에서 개최 예정인 ‘세계 일류 한국 상품전’은 성장 잠재력이 큰 러시아 시장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를 함으로써 한국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올해부터 시작되는 ‘세계 일류 브랜드’ 시상식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월드 베스트 브랜드’(가칭)라고 이름 붙인 이 상은 일류 상품 인증 기업이 자체 브랜드 제품을 대상으로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 가치, 해외 인지도 등을 종합 평가해 총 30개 내외를 선정해 오는 7월께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 생산성본부는 이 시상식을 통해 ‘월드 베스트 브랜드’ 로고를 제작·보급해 기업의 홍보 및 해외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고 해외 전시회에 ‘프리미엄 코리아’ 홍보관을 운영하는 것을 통해 수출 상품의 고급 브랜드화를 촉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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