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전수식’이 된 학교 졸업식 “알몸 뒤풀이는 연례행사였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2.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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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학생 “선배에게 당한 일, 똑같이 했을 뿐”…학교측의 안일한 사전·사후 조치도 문제

 

▲ 경기도 일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선배들의 강요에 따라 알몸을 드러냈던 일산역 부근의 공터. 오른쪽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일산 경찰서를 찾은 가해 학생. ⓒ시사저널 임영무


‘알몸 졸업식 뒤풀이’가 있었던 경기도 고양시의 한 중학교 근처 공터는 아수라장이었다. 사건 발생 10여 일이 지났지만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뒤풀이에 참가했던 학생들의 교복은 공터 한 구석에 버려져 있었고, 담벼락에는 밀가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공터 여기저기에는 피해 학생들의 것으로 보이는 양말과 슬리퍼, 가해 학생들의 우비와 우산들도 널브러져 있었다. 교복을 자르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가위도 떨어져 있었다. 당시 알몸 뒤풀이가 얼마나 살벌했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다.

도대체 이 중학교 선후배들은 왜 알몸 졸업식을 강행했던 것일까. 지난 2월17일 일산경찰서에서 만난 가해 학생 임주리양(가명·고1)은 “나도 작년에 똑같이 당했다”라며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했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알몸 뒤풀이는 이 학교 선후배들 사이에서 매년 치러지는 연례행사였다는 것이다.

임양을 통해 당시 상황을 들어보았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이 학교 출신의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졸업 뒤풀이를 한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졸업식 당일, 가해자 23명과 후배 15명이 해당 중학교로부터 3~4km 떨어진 공터에 모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가해자 중 한 명이 “옷을 벗어라”라고 소리쳤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후배들은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머뭇거리는 후배에게는 직접 다가가 가위로 옷을 자르기도 했다.

임양이 생각하기에도 올해 상황은 지난해에 비해 더 심각했다. 지난해에는 잠시 알몸 상태로 만들었다가, 이를 구경하던 중2 후배들이 담요로 몸을 덮어주게 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옷을 벗겨놓은 채 남자 후배들에게 인간 탑 쌓기 등 얼차려를 시켰다. 여자 후배들도 알몸으로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게 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서야 가해자들은 졸업생들에게 옷을 입을 것을 허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임양을 포함한 가해자 23명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틀 뒤, 자고 일어난 임양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상당수 찍혀 있었고, 동시에 친구로부터 알몸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마구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임양은 인터넷에 올라온 알몸 사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일단 알몸 사진이 너무 적나라했고, 동영상에 담긴 뒤풀이 모습이 자신이 보아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겠거니 했지만 일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고, 부모님마저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고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임양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후회해도 늦은 시기였다.

임양을 포함한 23명의 가해자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똑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일선 학교의 관리 체계에 큰 구멍이 있다는 방증이다. 피해자나 가해자 학교 모두 인터넷에 알몸 사진과 동영상이 유포된 뒤에야 이 일을 알게 되었을 정도로 학생 지도가 허술했다.

심지어 지난해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 소속 학교 관계자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이다. 학생들은 일산 신도시 학교 학생들과 달리 순수하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가해자 다니는 학교측, ‘모르쇠’로 일관

▲ 인터넷에 올랐던 ‘알몸 뒤풀이’ 사진.

사후 조치도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 해당 학교가 한 일이라고는 피해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전문가 상담이나 가정 방문 등 사후 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이미 우리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일산경찰서에서도 모든 일에 손을 떼라는 식으로 말해 피해 학생들을 만나보지도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기자의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가해자 23명 가운데 가장 많은 8명이 소속된 일산의 한 고등학교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사후 조치 역시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해당 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피해자가 속한 중학교에 다니는 박현수군(중2)은 “학교 망신이다. 이런 일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벌어져서 부끄럽다. 그런데도 학교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수사가 모두 끝난 뒤에야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문제와 대책 등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워낙 예민한 사안인 데다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된 문제인 만큼 어느 기관에서도 섣불리 나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지난 2월13일부터 16일까지 피해자 14명을 불러 진술을 확보한 데 이어 17일부터는 가해자 23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인 탓에 경찰은 이들의 신변 보호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피해자 진술 조사가 있던 16일에는 피해자 학생들이 화장실에 갈 때조차 학부모를 동반시켰다.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 여부는 수사가 모두 종결된 뒤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학생과 부모들이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을 요구하고 있어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일을 사건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것처럼, 처벌만으로 재발을 막을 수는 없다. 졸업식 당일에 단속을 강화하는 것으로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실제 문제가 발생한 해당 중학교에서는 지구대 소속 경찰들을 불러 합동 단속을 벌였지만 이번 일을 막지 못했다. 학생들조차 일시적인 단속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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