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무너지는 ‘빙판의 전설’
  • 최정민 | 파리 통신원 ()
  • 승인 2010.02.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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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남자 피겨 기대주 브라이언 쥬베르의 ‘추락’에 충격…매스컴의 지나친 관심과 선수 관리 소홀 등이 원인

 

▲ 지난 2월17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 프랑스의 브라이언 쥬베르 선수가 점프 실수로 아이스링크 바닥에 넘어지고 있다. ⓒAFP연합

 

지난해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2010 월드컵 예선전을 관람하고 있는 프랑스 축구협회의 장 피에르 에스칼레토(가운데)회장.

“제기랄, 정말 올림픽은 도저히 못하겠군.” 빙상 스타의 이 한마디는 동계올림픽에 대한 희망의 열기로 뜨거웠던 프랑스 팬들과 스포츠계를 일시에 빙판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 남자 피겨의 꽃이자 기대주였던 브라이언 쥬베르이다. 방송 사고에 버금가는 그의 폭탄 하소연은 다른 장소도 아닌 경기 직후 전광판에 나타날 점수를 기다리는 순간에 터져 그 파장이 더욱 컸다. 브라이언은 다음 날 이어진 경기에서도 파행을 이어갔다. 점프에 실패하자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떠나고 만 것이다. 프랑스에서 최고 유망주로 꼽혔던 선수가 왜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추락한 것일까?

프랑스 스포츠계가 멍들고 있다. 어린 나이에 피어나는 유망주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들까지 예외가 없다. 협회의 잦은 압력과 언론 및 매스컴의 과다한 관심 그리고 지나친 사생활 노출 등 관리 소홀로 선수들의 생명이 짧아지거나 전력이 약화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프랑스는 전통적인 겨울스포츠 강국이라는 간판이 무색하다. 나름으로 강한 종목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종합 순위 10위 안에 드는 것도 힘겨울 정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앞서 언급한 브라이언 쥬베르이다. 남자 피겨의 제왕이었던 러시아의 예프게니 플루첸코의 귀환으로 브라이언의 금 사냥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메달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기대마저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잦은 점프 실패로 낙담한 쥬베르는 피겨 무대에서는 프로그램을 끝내지도 못했다. 한때 프랑스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남녀 혼성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이색적인 캉캉춤을 주제로 한 안무로 메달권 진입을 노렸지만 고작 6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브라이언 쥬베르의 몰락을 놓고 말들이 무성했으나 그가 한 막말로 인한 파장이 원인 규명에 대한 문제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프랑스 남자 피겨의 전설적인 스타로서 현재까지도 아이스 댄싱쇼로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필립 깡델로로만이 쥬베르의 실패에 대해 “프와티에의 작은 연습장에 코치와 조용히 내버려 두었더라면 이미 올림픽 우승자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뼈 있는 지적을 했을 뿐이다. 프와티에는 쥬베르의 고향으로 그가 빙상을 시작한 곳이다. 그는 러시아의 플로첸코에게 가려 있기는 했지만,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2007년 세계챔피언을 비롯해 2004~06년 세계 대회 2위, 2004년, 2007년 그리고 2009년 유럽 챔피언을 지낸,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간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훈련 일정에 대한 협회 내부의 알력과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에 휩싸여 어린 선수에게는 견디기 힘든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프랑스에서 어린 선수의 생명 단축은 빙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수영 스타였던 로 마누두의 몰락이다.

수영·축구 등 다른 분야도 ‘내리막길’

한국의 박태환과 비견될 정도로 마누두의 등장은 프랑스 수영계를 들끓게 했었다. 16세에 유럽선수권을 석권하며 등장한 마누두는 전성기에 세 개의 올림픽 메달을 땄고, 세계대회를 여섯 번 제패했다. 유럽대회는 13번을 석권했다. 명실공히 프랑스의 수영 역사를 다시 쓰던 기대주였다. 2위와 큰 격차로 우승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 프랑스 국민은 열광했다. 그러나 스타가 된 마누두를 매스컴과 주변 사람들이 그냥 두지 않았다. 마누두는 인기가 치솟자 명품 ‘랑셀’의 화보 모델로 활동하는 등 스타와 같은 행보로 스승 루카와 갈등을 빚고 결국 그의 문하를 벗어난다. “아직도 연습하기 싫어하는 어린 소녀에 불과하다”라는 루카의 차가운 조언을 뒤로한 채 연습장을 떠난 마누두는 이탈리아의 수영 스타와 사랑에 빠져 이탈리아로 연습을 떠나는가 하면, 다시 이탈리아 코치와의 불화로 프랑스로 돌아오는 등 순탄치 못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예선도 가까스로 통과하는 초라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2009년 마누두는 23세의 짧은 나이에 수영계를 은퇴했다.

프랑스 스포츠계에서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과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의 자랑이었던 축구이다. 현재 프랑스 축구는 1998년 월드컵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에메 자케 이후 팀을 장악할 만한 지도자도 없는 데다 현재 사령탑인 도메네크의 경우,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도 교체될 기미가 없이 논란만 낳고 있다. 도메네크 감독은 취임 초기부터 선수들과의 불화설로 언론의 입방아에 올랐다. 당사자였던 로베르 페레스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음에도 도메네크 감독은 끝내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지난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랐으나 그 배경에는 지단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오는 2010 월드컵 예선 또한 가까스로 통과하는 등 뚜렷한 성적이 없는 상황에서 그의 수임료가 82만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그의 유임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월 급기야 도메네크의 퇴진설이 터져나왔다. 프랑스 리그의 보르도를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은 로랑 블랑이 후임으로 낙점되었다는 언론의 보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용설 또한 당사자들의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부인으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AFP통신은 도메네크의 후임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끊이지 않고 불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축구협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쟁점으로 떠오른 ‘국가 정체성의 문제’를 거론하며 “프랑스 정체성을 지닌 사령탑을 찾겠다”라고 말해, 여야는 물론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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