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찰설’ 불똥 어디로 튀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2.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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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헌 의원 인터뷰 발언으로 일파만파…박 전 대표측은 파장 확산 원치 않아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004년 조계사를 찾아극락전에서 백팔배를 올리고 있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소문은 진작부터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요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라는 것이다. 기자도 지난 연말쯤부터 국회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몇 차례 들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국민 지지율 부동의 1위,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주류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비주류의 수장. 그 존재감만으로도 박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때부터 부쩍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라는 말들이 많이 들려왔다. 지난해만 해도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집권 전반기에는 대통령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경쟁자는) 조용히 처신하는 것이 맞다. 박 전 대표가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면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아마도 움직인다면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세종시 파문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저쪽에서 먼저 공격을 걸어왔으니, 방어 차원에서라도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이제 집권 3년차이니 시기는 되었다”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스킨십이 활발한 스타일이 아니다. 의원들의 모임을 주선하거나, 모임에 나가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공개된 자리도 가급적 피한다. 의원과의 접촉도 조용히 한 명씩 따로 불러서 개별적으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정책적 조언이나 자문을 위해서 점심이나 저녁에 외부 인사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비공개로 조용히 한다. “굳이 비밀로 할 것도 없지만, 또 굳이 알릴 이유도 없다”라는 것이 주변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동선을 우리가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또 알려줄 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과거 청와대 시절부터 익혀온 관습이라고 말한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절제된 행동과 보안 유지에 대한 조심성이 남다르다”라고 말한다. 

친박계 이성헌 의원이 지난 2월23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폭로한 박 전 대표에 대한 정부의 사찰설은 이런 맥락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게 만든다. 지난해 박 전 대표가 불교계의 한 중진 스님과 회동을 했는데, 정부 기관 관계자가 이를 어떻게 알고 이 중진 스님에게 박 전 대표와 만난 사실을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이다. 이의원은 만남의 주선자인 자신과 박 전 대표 그리고 중진 스님 세 사람 밖에 모르는 회동 사실을 정부 기관이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며 사찰 가능성을 언급했다.

세간에 박 전 대표는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 있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의 영향을 받아 불교계와 특히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5년 동화사 주지로부터 ‘선덕화’라는 법명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 장로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박 전 대표와 불교계가 더 밀착되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특히 최근 불교계 주변에서 “박 전 대표가 불교계를 자주 찾는다”라는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박 전 대표 주변에서도 “박 전 대표가 주변에 많은 자문을 구하는데, 특히 불교계 스님들로부터도 많은 고견을 듣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친박계 의원들 중에 불교 신자들이 많다. 전임 정각회(국회의원 불자 모임) 회장과 한나라당 불자회장을 역임한 이해봉 의원을 비롯해 정각회 부회장과 감사를 맡고 있는 안홍준·이계진 의원, 천태종 신도회장인 김학송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 통했던 김무성 의원도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친박계와의 소통이 주임무인 특임장관에 주호영 의원이 임명되자 그가 불교 신자라는 점도 발탁 요인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이다. 중도파로 알려진 한 의원은 “얼마 전 김학송 의원의 권유로 한 불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모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친박계 모임인 줄 알았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불교계 밀착설’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정보 기관 출신의 한 인사는 “불교계가 유독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점, 또한 박 전 대표 역시 누가 뭐래도 뉴스의 중심 인물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양측이 접촉했다는 것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주요 정치인에 대한 사찰이 자행되고 있다고 확대 해석하기는 곤란하다. 이것은 누구의 지시가 있어서라기보다 담당자가 우연히 인지한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파문이 불거지면서 자연히 관심은 박 전 대표와 만났다는 중진 스님에게 모아졌다. 그는 이성헌 의원에게 “왜 정부 기관에 내가 박 전 대표와 만난 사실을 알렸느냐”라고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문이 불거진 직후 불교계에서도 이 중진 스님이 누구인지가 회자되는 분위기였다. 몇몇 중진 스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유력하게 거론된 ㅇ스님은 2월2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 또한 박 전 대표를 만난 사실은 있다. 지난해 가을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론에 알려진 그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역시 유력하게 거론된 ㅈ스님의 한 측근은 “우리가 친박계와 가깝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가 스님의 일정을 모두 관리하는데, 우리 스님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에 대한 정치 사찰설 파문이 확산되자 친박계 내부에서도 “경고 정도의 선에서 그쳐야 한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 역시 더 이상 파장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뜻을 나타냈다는 전언이다. 이성헌 의원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사찰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명백하게 진실을 가리자”라는 친이계의 공세에 자칫 말려들 경우, 세종시 원안 고수의 전열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섞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문이 ‘박 전 대표 사찰설’을 넘어 ‘박 전 대표와 불교계의 밀착설’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비단 종교계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파문을 계기로 서서히 외부 활동의 폭을 넓히면서, 외연 확대를 위한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문제는 ‘은밀한 행보’를 선호하는 박 전 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 향후에도 이런 논란이 또 불거질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박 전 대표의 보안 유지에 대한 집착도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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