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에 대한 ‘이기적 사랑’?
  • 최정민 | 파리 통신원 ()
  • 승인 2010.03.0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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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사노바 육필 일기’ 거액에 사들여 화제…타국의 문화유산 반환에는 ‘뻣뻣’

 

▲ 지난해 12월14일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엘리제궁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 이집트의 고분 벽화 1점을 반환하면서 환담하고 있다. ⓒEPA


2007년, 프랑스의 국립도서관 관장인 브뤼노 라신은 당시 주프랑스 독일 대사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용건은 흥미로운 고서적에 관련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해 스위스 취리히 공항의 화물 지구에서 극비리에 만나 고서적 진품을 확인한다. 그 후 2년 반에 걸친 협상과 자금 모금을 한 끝에 지난 2월18일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부장관이 서명하면서 프랑스는 문제의 고문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숱한 여성을 울린 것으로 널리 알려진 카사노바의 육필 일기이다. 파격적인 내용 탓에 발견되더라도 대부분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5백여 종에 이르는 복제품을 양산한 화제의 고문서였다.

그러나 단순히 파격적인 사료인 것만은 아니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20세기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한 블래즈 상드라르는 “카사노바야말로 진정한 18세기의 백과사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더군다나 이번 진품의 경우 3천7백여 쪽에 걸쳐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그것도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욱더 프랑스가 관심을 갖게 했다. 7백만 유로에 달하는 구입 대금은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기업이 후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구입한 사료 중 최고가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무수한 고사료가 보관된 곳 또한 바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외규장각 도서이다.

이번 카사노바 육필 일기 구입 건으로 다시 불거진 문제가 바로 문화유산 반환 문제이다. 현재 유럽 각지의 미술관들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약탈하거나 구입 경로에 문제가 있는 작품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중국이 다수 민족의 연쇄적 독립 운동을 막기 위해 티베트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한 침묵을 깬 가장 최근의 사례가 바로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작품에 대한 반환 청구 소송이다. 이 작품은 나치 정권에 의해 팔린 작품으로 기존의 작품 소유주인 유대인 가문의 후손들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반환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가족을 협박해서 작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전 소유주의 손을 들어준다면 박물관은 문제의 작품을 반환하고 경매를 통해 다시 사들이는 것 말고는 회수 방법이 없으며,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물관 최고의 컬렉션이었던 만큼 경매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술품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자코메티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의 1천2백2억원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집트 벽화 반환은 이집트 유적 발굴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조치

▲ 지난 2월18일 프랑스 작가 필립 솔레르스가 파리의 문화부에 전시된 카사노바의 육필 일기 진품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그동안의 반환 요구가 모두 실패했던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 이집트 정부가 강경책을 펼쳐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이 이집트의 문화유산 다섯 점을 반환한 경우이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문화 유적 발굴 사업에서 프랑스를 철저히 배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놀란 프랑스 정부는 서둘러 위원회를 소집하고 즉각적으로 다섯 점을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이집트의 유적 발굴이 늘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에 그 이유가 있었다. 루브르 미술관은 현재 이집트 현지에 연구원을 파견해놓은 상태이다. 발굴 작업에 대한 프랑스 2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지금도 발굴되지 않는 지역이 많고, 중요한 사료가 발굴될 기미가 보일 경우 도굴과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무장 경찰이 즉시 투입될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계속될 역사적 발굴에서 제외되는 것은 프랑스로서는 참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프랑스의 집착은 이처럼 유명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집착이 현재의 문화 대국이라는 간판을 낳은 측면도 있다. 자신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유했던 세기의 대가 피카소가 죽기 5년 전,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신할 수 있다’라는 영리한 법안으로 피카소의 유작을 고스란히 국가 소유로 만든 것이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그 덕분에 2백여 점의 회화와 1백50여 점의 조각, 3천여 점의 드로잉 및 판화를 국고에 귀속시켜 피카소 미술관을 설립했다. 피카소는 작품을 조국인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에 남긴 셈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고흐의 유적과 유작이 조국인 네덜란드보다 많은 곳 또한 프랑스이다. 올해는 쇼팽 탄생 2백주년으로 프랑스가 들떠 있다. 쇼팽은 폴란드 태생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국적에 상관없이 프랑스를 거쳐 간 모든 문화유산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현재 프랑스 정부나 언론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과 관련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문화재 반환과 관련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대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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