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리기 전에 가계 구조조정에 나서라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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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약 처방으로 자산 처분하면 손해 막심…‘20-30-40 법칙’ 참고해 상황 체크해야

 

ⓒ시사저널 임준선


SK텔레콤에 다니는 이병욱씨(가명·46)는 최근 아파트를 처분했다. 이씨는 3년 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4억원짜리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았다. 한 해 이자만 1천2백만원이 나갔다. 최근에는 원금도 포함되어 매달 1백80만원을 고스란히 은행에 냈다. 이씨의 한 달 순소득은 4백30만원. 자녀 교육비로 월 100만원을 쓰고, 원리금을 내고 나면 이씨의 손에는 1백5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여도 늘 적자에 허덕였다. 8개월을 버틴 이씨는 결국 재무 설계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아파트를 팔아 넘겼다. 그는 현재 3억원짜리 전셋집에 살면서 내 집 마련을 위한 목돈을 모으고 있다.

이씨처럼 가계 빚에 허덕이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등 극약 처방에 나선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무리하게 내 집 마련에 나선 가구들이 불가피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 몰린 뒤에 자산을 처분하면 그만큼 손해가 크다. 가계부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 신속하게 가계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0-30-40 법칙을 기억하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김현수 우리금융그룹 자산관리컨설팅부 차장은 “순소득에서 신용 부채 이자 비용으로 20%, 총소득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 이자 비용으로 30%, 총 자산에서 총 대출 규모가 40%를 넘으면 처방에 나서야 한다. 주택을 청산하거나 예·적금을 깨서라도 대출금을 갚아야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자와 원금이 포함된 원리금 상환도 월 소득의 4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내세운 DTI(총 부채 상환 비율)를 40%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송승용 희망재무설계 컨설팅 팀장은 “월급의 40%를 원리금을 갚는 데 쓰면 저축을 하지 못한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럴 때에는 빚을 털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빚을 갚을 때에도 순서가 있다. 금리가 높은 순서인 사채-제2 금융권 대출-현금서비스-고금리 신용 대출-주택담보대출 순으로 갚아나가야 한다. 이때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대출 금리보다 낮은 예·적금이 있다면 중도 해지하고 대출금을 갚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 팀장은 “대출 금리와 예·적금 금리가 6%로 동일하더라도 예·적금을 깨야 한다. 예·적금 이자에 대한 세금을 빼고 나면 대출 이자보다 낮아지기 때문이다. 간단한 원칙인데도 많은 사람이 대출금을 갚겠다며 낮은 금리의 예·적금에 드는 오류를 저지른다”라고 지적했다.

자산에서 부채 뺀 순자산 파악하고 살아야

부채와 자산을 한눈에 알아보기 위해서는 개인 재무 상황을 표로 그려보면 된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의 상태를 써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 효과가 있다. 왼쪽에는 자산 항목을, 오른쪽에는 부채 항목을 나열한다. 자산은 크게 금융 자산과 사용 중인 자산(주택·자동차 등)으로 나누어 작성한다. 부채는 단기와 중·장기 부채를 나누어 기입하되 갚아야 할 대출 잔액을 기입한다. 자산 총계에서 부채를 빼고 남은 순자산이 마이너스이고, 앞에서 언급한 20-30-40 법칙을 어겼다면 자산을 팔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이때 주택 처분은 마지막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성율 국민은행 재테크 팀장은 “주택 가격의 절반 이상을 대출받아서 산 경우가 아니라면 주택이 갖는 거주의 의미도 따져보아야 한다. 주택 주변 환경의 쾌적성, 교통,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군 등을 충분히 고려해보고 주택을 갖고 있는 만족도가 훨씬 더 높으면 성급하게 팔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빚을 중도 상환할 때 수수료가 있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대목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3년 이전에 상환했을 경우에는 수수료가 붙는다. 상환 수수료를 내더라도 빚을 갚는 것이 낫다면 예·적금 대출을 받아서 상환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돈이 있더라도 일시에 갚지 말아야 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이 없다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불필요한 소비를 알아보려면 현금 흐름표를 작성해보라고 권한다. 송승용 희망재무설계 컨설팅 팀장은 “가계부처럼 매일 쓰는 것이 아니라 월평균 사용하는 지출 내역을 나열해 보라. 한 번 써보는 것으로도 돈이 얼마나 새고 있는지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때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을 나누어 작성하면 어디에서 돈을 아낄 수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대출 원리금이나 세금, 아파트 관리비는 줄이기가 힘들다. 반면, 외식이나 통신 비용 등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줄일 수 있다. 도시 근로자 소비 지출 내역(2009년 4/4분기 기준)에서 교육비는 14.25%로 세 번째로 지출이 많은 항목이다. 한국의 교육열을 고려했을 때 줄이기가 쉽지 않지만, 빚이 많다면 교육비를 아껴서라도 일단 청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빚 갚으면서 종잣돈 마련·투자 병행해야

대출 이자 상환일이나 신용카드 결제일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높은 연체 이자를 내는 것도 아깝지만 만기시 이자율이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같은 신용등급이라도 개인의 은행 거래 실적에 따라 대출 금리를 낮출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 주거래 은행을 하나로 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 팀장은 “은행 거래 실적이 좋은 프리미어 고객은 금리가 0.3% 낮다. 여러 은행을 이용하면서 소소한 혜택을 받는 것보다 목돈을 대출받을 때 금리 인하 혜택을 보는 것이 더 큰 이득이다”라고 조언했다.

주거래 은행을 두었다면 자신의 신용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공성율 국민은행 재테크 팀장은 “직장 승진, 급여 인상, 직장 이동 등 변화가 있을 때 신용등급도 상향되게 된다. 신용등급이 높아지면 금리 인하를 요구하거나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이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빚을 갚는 데에 매몰되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종잣돈 마련은 요원해진다. 빚의 굴레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면 빚을 갚으면서 종잣돈 마련을 위한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이를 전문가들은 ‘눈덩이 효과’로 설명한다. 김현수 우리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차장은 “적은 돈이라도 굴리다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종잣돈을 모아야 재기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긴다. 적립식 펀드를 추천한다. 2~3년을 목표로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면 적은 금액으로 돈을 불릴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때 종잣돈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5년 안에 5천만원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워야 성공률도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100-나이 법칙’에 따라 재무 설계를 하라고 조언한다. 즉, 총 자산 중에서,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서 나온 비율만큼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안정성 위주 투자 상품에 투입하라는 것이다. 30대라면 자산 70%를 고수익 자산에 투입하고 30%만 안정성 자산에 투자하고, 40대라면 자산 60%는 고수익 자산에 투입하고 40%는 안정성 자산에 투자하는 식이다. 저축은 지출이 많지 않은 미혼일 때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상담할 때 미혼에게는 50% 이상, 기혼일 때도 30% 이상은 저축하라고 권유한다. 김현수 우리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팀장의 도움을 받아 연령대에 맞는 자산 관리 계획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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