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자리 마른자리’ 안 가리고 뛴다
  • 신명철 | 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10.03.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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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목 섭렵하는 멀티플레이 스포츠 스타들 / 미국 여자 육상 선수, 프로농구단 입단해 ‘화제’

 

▲ 미국 여자 육상 선수 매리언 존스(가운데)가 미국 여자 프로농구 툴사 쇼크 구단과 입단 계약을 맺고 구단 관계자들과 웃고 있다. ⓒ연합뉴스


금지 약물을 복용해 올림픽 메달을 박탈당하고 기록도 삭제되는 중징계를 당했던 육상 스타 매리언 존스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농구 선수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어 화제이다. 외신에 따르면 존스는 최근 오클라호마 주의 툴사를 연고지로 하는 미국 여자 프로농구(WNBA) 툴사 쇼크 구단과 입단 계약을 맺었다. 구단과 존스는 계약 조건을 밝히지 않았지만 외신은 계약 기간은 1년 이상, 연봉은 WNBA 최저 수준인 3만5천 달러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100m와 2백m 그리고 1천6백m 계주에서 금메달, 멀리뛰기와 4백m 계주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던 존스는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 사용과 관련한 위증 혐의 등으로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지난해 9월 출소한 뒤 WNBA 샌안토니오 실버 스타스에 합류해 농구 선수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존스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시절 포인트가드로 뛰었고, 2003년 WNBA 피닉스 머큐리 구단이 신인으로 지명한 적도 있다. 불명예를 안고 육상계를 떠난 존스이지만 멀티플레이어의 재주를 갖고 있었기에 먹고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 스포츠계에서는 존스 같은 멀티플레이어의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 에릭 하이든이 대표적이다. 하이든은 세계적인 도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도전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이든은 스피드스케이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는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를 했다.

미국 프로야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김병현의 동료인 랜디 존슨은 USC(남가주 대학교) 시절에 농구 장학금을 받았다. 여러 종목에서 재능을 보인 선수들은 프로 스포츠에 진출해서도 시즌에 맞춰 양다리를 걸쳐놓는다. 보 잭슨(야구: 캔자스시티 로열스, 미식축구: 오클랜드 레이더스)과 디온 샌더스(야구: 신시내티 레즈, 미식축구: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선수이다.

국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최희섭은 미국에서 뛰던 시절 비시즌 동안 국내에 들어와 개인 훈련을 할 때 몸을 풀기 위해 농구를 하고는 했다. 그런데 장신인 최희섭의 농구 실력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에서 우람한 체격의 역도 선수들이 축구를 하는 장면을 이따금 볼 수 있다. 역도 선수들은 수준급의 축구 실력을 자랑한다. 역도 선수들은 겉보기와 달리 유연성이 무척 뛰어나다.

상당수의 선수들이 자신의 종목이 아닌 운동에서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다. 타고난 운동 신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 같은 종목 안에서도 서로 다른 위치에서 고르게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있다. 야구팬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멀티플레이어의 사례는 1980년대 국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주력 선수 김성한이다. 김성한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투수로는 10승을 올리고 타자로는 3할대의 타율로 타점왕에 올랐다. “북 치고 장구 친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활약이었다.

축구에서도 이런 유형의 선수를 찾아볼 수 있다. 수비 조직에 중앙 수비수로 스토퍼와 스위퍼가 있던 시절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스토퍼는 김호 전 미국월드컵(1994년) 대표팀 감독과  박성화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다.

김 전 감독은 스위퍼인 김정남 전 멕시코월드컵(1986년) 대표팀 감독과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국가대표팀의 수비진을 이끌었다. 그런데 두 김 전 감독은 국가대표팀 시절 단 한 번도 미드필더 또는 공격수로 나선 적이 없다. 그러나 박 전 감독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국가대표팀의 주전 스토퍼로 뛰며 짬짬이 공격수로도  활약했다. 1979년 6월16일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한·일 정기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림픽 동계·하계 넘나들며 메달리스트 된 선수들도 ‘눈길’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천m에서 동메달을 딴 캐나다의 클라라 휴즈 선수(위)는 사이클 선수로도 이미 명성을 떨쳤다. ⓒ연합뉴스

같은 종목 안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종목을 넘나들게 되면 멀티플레이의 수준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들 가운데 ‘멀티플레이의 달인’이라고 부를 만한 선수가 밴쿠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주인공은 대회 입장식 때 주최국 캐나다의 국기를 들고 들어온 클라라 휴즈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39세인 휴즈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할머니’급이다. 그러나 휴즈는 2월25일 열린 여자 5천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메달은 휴즈가 동계와 하계 올림픽에서 딴 여섯 번째 메달이다. 휴즈는 1996년 애틀랜타 하계올림픽에서는 사이클 도로 경기와 타임 트라이얼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동계올림픽에서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5천m 동메달,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5천m 금메달과 단체 추발 은메달을 획득했다. 휴즈에 버금가는 올림픽의 멀티플레이어로는 세 명이 더 있다.  

에드워드 이건(미국)은 동·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선수이자 동·하계 올림픽 유일의 금메달리스트이다. 이건은 1920년 앤트워프 하계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1924년 파리 하계올림픽에는 헤비급으로 출전했으나 1회전에서 탈락했다. 이건은 8년 뒤인 1932년 다시 올림픽에 도전한다. 무대는 레이크플래시드였고 봅슬레이에서 금메달을 땄다. 노르웨이의 야콥 탐스는 1924년 샤모니 동계올림픽 스키 점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데 이어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에서는 세일링 8m급에서 은메달을 얻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여자 선수가 올림픽의 멀티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렸다. 옛 동독의 크리스타 루딩 로덴버거는 1988년 2월 캘거리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천m에서 금메달, 5백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불과 7개월 뒤 서울 하계올림픽에서는 사이클 1천m 스프린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로덴버거는 같은 해에 열린 동·하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유일한 올림피언으로 기록되었다.

국내에서는 스포츠의 여명기에 멀티플레이어가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축구계의 큰 별 김용식 선생이다.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김용식 선생은 겨울철에는 한강 링크를 주름잡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전국 규모 고교야구대회를 대상으로 해마다 가장 타격을 잘한 선수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인 이영민 선생은 1928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경성운동장에서 홈런을 때린 뛰어난 타자이자 투수이면서, 1933년 창단한 경성축구단의 멤버였다. 그 무렵에는 한 선수가 야구·축구는 물론 육상·럭비 등 서너 개 종목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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