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가뭄’에 헤매는 일본 정치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
  • 승인 2010.03.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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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정부, 정권 운영의 미숙함·정치 자금 문제 등으로 지지도 추락…자민당도 내홍으로 흔들

 

▲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동생인 하토야마 쿠니오 의원이 3월15일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을 결성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

자민당이 내홍에 휩싸였다. 지난해 7월 중의원 선거 참패 이후 자민당은 각종 선거에서 연패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쓰나미의 파고는 높았고 여파가 지속되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과거 기라성 같은 거물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정권을 교체당한 책임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 대표를 세우는 일조차 여의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타니가키 씨가 대표로 취임했다. 다수 파벌 중심의 자민당 체제에서 타니가키 씨의 등장은 처음부터 힘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민주당의 실정도 하나 둘 드러났다. 하토야마 총리 체제가 100일에 접어든 것을 기점으로 정권 운영의 미숙함과 당내 불협화음이 새 나왔다. 당권을 쥔 오자와 간사장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국회 답변에 나서는 의원들의 결정에서부터 크고 작은 일들까지 오자와 간사장의 허락을 받은 뒤에 이루어졌다. 위풍당당한 위세는 그가 국회의원 1백40명을 포함해 6백5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토야마 총리와 정책적 이견을 보인 시점도 이때이다. 잠정 세율 폐지 문제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의 정책 문제도 노정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월 2만6천 엔씩 자녀수당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재정 적자에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2010년 92조2천2백92억 엔의 일반 예산 가운데 국채 발행액이 44조3천30억 엔을 차지할 정도이다. 이렇게 눈덩이처럼 커진 적자는 1천조 엔에 육박하고 있다. 심각한 재정 위기 속에서 자녀수당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은 회의적이다. 정권 운영의 미숙함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본격화되었다. 미·일 안보 체제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민주당 내 문제만이 아니라 연립 정권인 사민당과 국민신당과의 갈등까지 더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민주당의 지지 기반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여론의 악화는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 자금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오자와 간사장의 경우 정치 자금 단체인 리쿠잔카이가 4억 엔의 토지를 구입하는 데 사용된 자금 출처가 문제가 되었다. 또, 하토야마 총리는 모친으로부터 받은 자금에 대한 증여세 신고를 누락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실력자인 두 사람의 정치 자금 문제로 민주당과 하토야마 정부의 지지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민당, 신당 창당 선언한 의원들 탈당 이어져

▲ 지난해 9월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운데)가 후쿠시마 사민당 당수(왼쪽)와 카메이 국민신당 총재와 손을 맞잡고 있다. ⓒEPA 연합

그러자 자민당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타니가키 대표의 지도력과 대민주당 전략이 없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여기에 국민적 인기를 받으며 차기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마쓰조에 요우이치 전 후생대신이 당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파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쓰조에 씨의 움직임은 자민당의 진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3월13일 마쓰조에 전 후생대신은 후쿠오카의 한 민영방송에 출연해 “나와 요사노 전 재무대신 중 누가 신당을 만들 것인가는, 요사노 씨가 먼저라는 분위기이다”라며 타니가키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 시점에 신당 창당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지도부에 대한 중진들의 불만을 감지한 하토야마 총리의 동생인 하토야마 쿠니오 전 총무대신이 먼저 자민당을 탈당했다. 신당 창당 분위기는 요사노 씨가 띄웠으나 행동은 하토야마 쿠니오 씨가 먼저 개시했다. 탈당의 명분은 현 자민당 체제로는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형이 총리로 있는 정권을 타도하고자 선두에 서는 형제간의 갈등도 향후 정계 재편의 포인트이다. 하토야마 쿠니오 씨의 탈당을 계기로 요사노 씨의 지도부 비난이 거세졌다. 그는 지난해 7월 중의원 선거에서 패배해 54년 만에 정권을 내준 후 권토중래를 모색해 왔지만, 현 지도부로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힐난했다. 새로운 세력을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분열이 본격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요사노 씨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입장을 급선회했다. 지난 3월17일 자신의 스터디 그룹에서, 당을 창당하겠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 후퇴한 입장을 표명했다. “와인을 숙성하는 데는 10년 정도 걸린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후퇴한 배경에는 정치 자금 문제로 도마 위에 올라 있는 하토야마 쿠니오 씨와 연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지지 세력의 충고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와 동생 하토야마 쿠니오 씨를 탈세왕이라고 비난해놓고 이제 와서 연대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또, 그간 갈지자 걸음을 해 온 하토야마 쿠니오 씨의 정치 행보도 그와 같이하기에 부담스러운 요인이었다. 하토야마 쿠니오 씨는 신자유클럽, 자민당, 무소속, 개혁모임, 자유개혁연합, 신진당, 민주당, 무소속, 자민당, 무소속으로 말을 옮겨 타 왔다.

요사노 씨는 무엇보다도 50여 년간 지속되어온 자민당 파벌 정치의 벽을 깨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 분위기이다. 또한, 당내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 등 파벌 수장들이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점도 분열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토야마 쿠니오 씨는 당 개혁을 부르짖다 3일 천하로 끝난 자민당 중진 가토의 란 씨와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민당 국회의원 여섯 명이 탈당했지만, 당분간 신당 창당으로 비화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내홍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현 지도부로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정권 운영에서 미숙함을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자민당은 아직도 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한마디로 일본 정치에서 리더십 부재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은 머지않아 세계 GDP(국내 총생산) 2위 국가라는 위치를 중국에 넘겨주게 될 처지이다. 전통적인 우방 관계였던 미·일 간에는 균열이 생겼다. 많은 국민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 고령화 사회와 과도한 재정 적자 등을 들어 일각에서는 일본 붕괴의 전조라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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