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돼”라고 더 말할 수 있는가
  • 김재태 기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0.03.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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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놓여야 할 책상에는 하얀 백합만 덩그마니 올려져 있고,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그 공백은 어떤 통곡보다도 슬프고 무거워 보였다. 그 책상과 의자는 끝내 제 주인을 맞지 못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한 소녀의 꿈은 처참히 짓밟힌 채 거기에서 멈추어버렸다. 부산 여중생 이 아무개양 납치·살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피의자의 자백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깊이 상처받은 국민들의 애달픔은 쉬 회복되지 않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여기저기서 때늦은 대책들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안타까움은 더 깊어진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다시 틀어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정남규 때도 그랬고, 강호순 때도 그랬고, 나영이 사건 때도 그랬다. 늘 말은 무성했으나, 돌아온 것은 개탄뿐이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수사 당국인 경찰의 총책임자는 “여중생은 사실상 경찰이 죽인 셈이며,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그만큼 경찰의 수사에 미흡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법과 제도에도 허술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텔레비전 방송 중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임이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제비뽑기로, 운이 나쁘면 쓰디쓴 까나리액를 마시거나 야외 취침을 하는 식이다. 그때 출연자들이 외치는 말이 “나만 아니면 돼!”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종종 웃음이 터지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그것이 단순한 방송 속의 게임이기 망정이지 현실에서라면 어떠할까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졸업식 알몸 뒤풀이’를 돌이켜보면 그림은 명확해진다. 공공 장소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인데도 말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으슥한 뒷골목 같은 곳에서 여학생을 둘러싸고 희롱하는 남학생 집단을 보고 야단을 치는 사람을 목격하는 것도 이제는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점점 더 이 ‘나만 아니면 돼’에 젖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 약자들이 의지할 곳은 갈수록 좁아들 수밖에 없다. ‘나만 아니면’ 언제든 방관자의 무리에 숨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김길태와 같은 후안무치의 ‘괴물’은 더욱 활개를 칠 것이 뻔하다.

하루에 3명꼴로 어린이 성폭행이 발생하고, 35분마다 1건씩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제 더 방관하기 어려운 지경에 몰려 있다. 그 피해자는 대부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더 비참한 곳으로 내몰지는 말아야 한다. 굳이 “국민이 내일에 대한 신념을 갖지 않으면 국가 발전은 있을 수 없다”라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이런 현실이 앞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이나 신념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실패한 국가이고, 국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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