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엔진’ 달 곳, 중앙이냐 측면이냐
  • 한준희 |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10.03.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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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진가 발휘…한국 대표팀 내 포지션 변화 있을지 관심

 

▲ 3월21일 맨유의 박지성 선수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리버풀과의 홈 경기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성의 주가가 연일 상종가로 치솟고 있다. 3월2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홈 올드트래포드에서 벌어진 리버풀과의 일전에서 박지성은 선수 경력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1월31일 아스널 원정, 3월10일 AC 밀란(이하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홈경기에 이은 시즌 3호골. 시즌이 가장 중요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마침내 박지성은 맨유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전력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이다.

박지성의 올 시즌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대활약은 값진 인고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8월9일 커뮤니티 실드 첼시전부터 2009년 연말까지 박지성의 출전 횟수는 선발·교체를 포함해 모든 대회를 통틀어 11차례에 불과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팀을 떠나면서 맨유는 당장의 공격력 약화를 근심해야만 했고, 이는 실제로 팀내 ‘공격 강화용 자원’으로는 분류되기 힘든 박지성의 입지에 근본적인 어려움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측면 자원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가세에다 노장 라이언 긱스가 한동안 나이를 무색케 하는 수준 높은 플레이를 펼쳐 보이면서 박지성의 입지는 축소되는 국면을 맞이한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역시 ‘큰 경기’에서 찾아왔다. 1월31일의 아스널 원정. 빠른 역습 상황에서 40m가량을 드리블해 들어가며 침착하게 마무리한 시즌 첫 골이야말로 박지성이 여전히 맨유를 위해 중요한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선수임을 내비친 장면이었다. 보름이 지나 더욱더 결정적인 기회가 주어졌다. 유럽 정상 등극을 다시 한 번 꿈꾸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가슴을 졸였을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밀란 원정. 박지성은 웨인 루니의 뒤를 받치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활동량(12.113km)을 기록했고, 밀란 중원의 핵 안드레아 피를로를 적절히 제어하는 역할에도 충실했다. 패스 성공률 면에서도 준수한 내용이었다. 이날 맨유는 밀란 원정 사상 처음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개가를 올린다. 이는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 개가인 동시에, 감독의 전술적 요구에 제대로 부응한 박지성이 자신의 올 시즌 운명을 뒤바꾼 경기이기도 했다.

밀란 1차전이 펼쳐진 2월16일부터 지난 리버풀전에 이르기까지 박지성은 맨유가 치른 8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밀란과의 2차전에서 골을 터뜨렸고 ‘철천지 라이벌’ 리버풀과의 대결에서는 승부를 가르는 인상적인 헤딩골을 작렬시킴으로써 맨유 클럽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장면을 연출했다. 더불어 소속팀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선두로 나섰으며 챔피언스리그 8강, 칼링컵 우승 고지에도 올랐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 첼시 등과의 일전을 앞둔 맨유에서 박지성이 계속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박지성의 이러한 활약상은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도 커다란 호재임에 틀림이 없다. 경기 감각이 완벽하게 돌아온 것은 물론, 특별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맨유에서의 그의 변화된 활용 방식이다. 밀란과의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리버풀전에서도 박지성은 측면이 아닌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었다.

최근 맨유가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시도하고 있는 ‘4-2-3-1’ 포메이션에서 퍼거슨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 루니와 양 측면 자원,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특히 이 경우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는 상대 수비 라인과 미드필드 라인 사이의 공간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펼쳐줄 필요가 있는 동시에, 루니와 측면 자원들의 움직임에 수비가 몰리는 것을 틈타 전방의 공간으로 효율적인 침투를 수행해야만 한다. 박지성으로서는 현재 아주 잘해내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기본 위치가 측면이기는 하지만 사실 박지성은 우리 대표팀에서도 이미 중앙 역할을 수행하고는 했다. 그는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경기들에서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활약한 바 있으며, 지난해 벌어졌던 호주·세네갈·세르비아 평가전들에서도 허정무 감독은 박지성을 중앙에 활용하는 실험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허감독은 남아공에서도 박지성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중앙으로 돌리는 포진을 심심찮게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맨유에서 나타나고 있는 박지성의 좋은 경기력과 그로 인한 자신감 상승은 대표팀에서 시도될 이른바 ‘박지성 시프트’에 매우 유익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중앙’에 세울 경우 수비 부담 커질 수 있어…기본 위치는 일단 ‘측면’

다만 그럼에도 대표팀에서의 박지성의 ‘기본 위치’는 일단은 측면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옳다는 생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박지성을 중앙에 세워 얻을 수 있는 플러스 효과에 비해 그가 측면을 떠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마이너스가 자칫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선 박지성이 중앙에 위치할 경우 주로 그가 맡아 보던 왼쪽 측면에는 과연 누가 ‘선발 라인업’에 들어와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김보경, 염기훈 등의 후보군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확실해 보이는 카드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

또한, 박지성을 중앙에 세우는 것 한 가지를 고집하게 되면 사용 가능한 포메이션에도 제약이 가해져야 한다는 문제가 남는다. 물론 필자는 맨유와 같은 4-2-3-1 형태가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가 사용하기에 꽤나 합리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투톱의 협업을 통해 득점력을 제고해야 하는 상황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 경우 우리가 자주 사용해왔던 ‘4-4-2’가 여전히 중요한 옵션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중앙 미드필더의 수요가 두 명인 4-4-2에서 박지성을 중앙에 세우는 것은 수비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어찌되었건 박지성의 현재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어차피 한 가지 포메이션으로는 싸울 수 없다. 상대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변화 속에서 어느 위치에서든 제 몫을 다 하는 ‘에이스’ 박지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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