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첩첩산중’ 뚫는 10대 부부들 늘고 있다
  • 조현주 인턴기자 ()
  • 승인 2010.03.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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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대신 결혼해 아이 기르자”… 용기 있는 선택 증가

 

ⓒ시사저널 박은숙

10대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 뚜렷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10대 부모’ 하면 주로 미혼모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서울 시립 아하청소년 성문화센터 박현이 부장은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10대에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실제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상담 현장에서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트렌드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의 편견 등 때문에 이들이 내놓고 생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몇몇 부부들을 접촉했으나 공개를 꺼린 것이 그 반증이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오진(남·20)·이은희(여·19) 씨는 달랐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올해 19개월 된 아들 호연이가 있다. 아빠 김씨는 갓 스물이 넘었으나 10대의 나이에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엄마 이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생 같은 아들을 낳았다. 김씨 부부는 어렵사리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공개했다. 이들은 현재 남편 김씨의 집에서 시부모님, 시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지난 3월25일 오후 수원의 한 가정집에서 만난 김씨 부부는 얼굴은 앳된 고등학생처럼 보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성숙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한 아이의 엄마·아빠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하니 어떤 것이 가장 좋은가”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칭얼거리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며 부인 이은희씨가 말했다. “결혼해서 가장 좋은 점은 우리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입양’이라는 말에서 두 사람이 아이를 놓고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남편 김오진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희 부모님은 퇴근하고 오실 때마다 손자 재롱 보면서 매일 (아내와) 같은 말씀을 하신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거취를 놓고 김씨 부부뿐만 아니라 양가 어른들도 고심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이제 갓 7개월이 지났다. 부부가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면 종종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닌다고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어린 부부의 정성은 어른 부부 못지않다. 아내 이씨는 “우리 호연이는 이제 내게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꼭 끌어안고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진 것일까. 지난 2007년 남편 김씨가 고등학교 3학년, 아내 이씨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김씨가 대학에 들어간 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고, 그러다가 덜컥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사귄 지 1년쯤 지날 무렵이었다. 2008년 초 아내 이씨는 문득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병원에 찾아갔을 때에는 ‘임신 7개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이씨는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제일 먼저 친정어머니와 상의했다. 이씨의 어머니 역시 고교 2학년생인 딸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학교 주변에 혹시나 나쁜 소문이 돌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씨는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자퇴하기로 결심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이씨는 평택에 있는 미혼모 보호 시설 에스더의 집에 들어가 생활했다. 이때는 양가의 가족들이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을 때이다.

“아이를 낳아 기릅시다.” 두 사람의 가족 모두 입양이 아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양가 부모는 이씨가 미혼모 보호소 시설을 나오자마자 혼인 신고를 하고 산후 조리를 위해 시댁에서 생활하자고 약속했다. 이씨는 에스더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숲 치유’라는 등산 코스를 돌아다니거나 종이 접기 등의 태교를 하기도 했다. 갑작스런 임신 소식 때문에 아이 태명조차 지을 겨를이 없었던 부부는 다행히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지난해 8월에 혼인 신고를 한 이후 12월에는 결혼식도 올렸다.

경제 문제 외에 사회의 왜곡된 시선도 압박

 

▲ 만 17세의 나이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은희씨(왼쪽)와 남편 김오진씨·아들 호연(오른쪽). ⓒ시사저널 박은숙

이씨는 아이 엄마이기도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10대이다. “요즘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요즘 아이에게 신경을 써야 할 때라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가고 있다. 나중에 기회만 닿는다면 대학도 다니고 열심히 일해서 아이 양육비도 벌어보고 싶다”라고 소박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남편 김씨 역시 마찬가지다. 김씨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대학 교수님의 배려로 다니고 있던 전문대학을 조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오는 6월 군 입대를 앞두고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고 한다. 자신의 미래와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고민이다.

김씨는 “대학 시절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공부를 했다. 앞으로 도면 설계나 기사 자격증을 따서 전공과 관련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10대 부부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두 사람 모두 ‘경제적 문제’를 먼저 꼽았다. 이씨는 “사실 아이를 기르겠다는 결심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 양육비를 매번 시부모님께 얻어 쓴다는 것이 죄송스러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돈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 양육비는 고민스러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남편 김씨는 “소아과에서 예방 주사를 맞는 데에만 10만원 이상이 들 때도 많다. 우리 부부의 경우, 부모님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10대 부부가 살아가는 길은 여전히 힘겹다. 어렵게 결혼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오래 유지되기까지 현실적 장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 이외에도 사회의 왜곡된 시선에 상처를 받아야 할 경우도 많다. 김씨 부부 역시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속상할 때가 적지 않다고 한다.

김씨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는 것뿐인데 노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부부이고 아이의 부모일 뿐인데,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노는 애들’로 보이나 보다. 어쩌면 경제적 어려움보다 남들의 시선이 더 힘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호연이가 ‘넓은 연못’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세상을 당당히 품으며 자라날 수 있을까. 내 아이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고 싶어 하는 ‘10대 부부’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제도적인 지원과 함께 사회적인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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