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된 학문, 대학에 무엇을 남길까
  • 신하영 | 한국대학신문 기자 ()
  • 승인 2010.03.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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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과 통폐합 등 과정에서 효율과 가치 충돌…‘친기업’ 비판도 일어

 

▲ 3월25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에 통합학부제에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대학가에 화제가 되었던 중앙대의 학문 단위 구조조정안이 지난 3월23일 교무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구조조정 작업이 최종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 안은 약 2주간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거쳐 4월 초 이사회에 상정된다. 지난해 12월29일, 1차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중앙대는 최종안을 확정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 외부 컨설턴트가 학과 평가 개입

우선 중앙대가 구조조정안을 수립하기 위해 진행한 평가 방식에 불만이 일었다. 중앙대 본부는 지난해 4월 구조조정 태스크포스팀인 구조계획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학문 분야 평가를 통해 각 학과의 경쟁력을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유사·중복 학과 통폐합 △단대·과 축소 △단과 내 이질 계열 조정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필요한 학문 분야 육성 등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구조조정 대상 학과를 선별한 학문 분야 평가 과정에서는 외부 컨설턴트사(엑센츄어)가 개입했다. 방효원 의학부 교수(계열위원회 위원장)는 “외부 기관이 학과 평가 기준을 만드는 데 상당 부분 개입했다. 이 기관은 대학의 행정 조직에 관한 컨설팅은 해봤어도, 학문 평가는 처음이다. 이것이 학문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다”라고 지적했다.

외부 컨설턴트사인 엑센츄어가 제시한 평가 항목 중에서는 학과별 연구 실적·전과율·취업률 등이 채택되었다. 이는 중앙대 본부가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내세운 ‘경쟁력 없는 유사 학과 통폐합’과 ‘선택과 집중’이라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이 대목에서 학과 평가 기준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었다. 학과 경쟁력을 종합 판단하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대외 활동, 학생들의 사회 참여, 외부 평판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학과를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했다는 비판도 덧붙여졌다.  

▒ “경쟁력 없는 학과는 통폐합하라”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1차 구조조정안이다. 기존 18개 단과대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와 40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과대를 △인문 △사회 △사범 △자연·공학 △의·약학 △경영·경제 △예·체능의 5개 계열로 재편하고, 계열별로 책임 부총장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중앙대 교수들로 구성된 계열위원회는 이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기존 단과대와 학과를 11개 단과대와 51개 학과·부로 재편하자는 대안도 제시했다. 숫자 싸움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쟁점을 짚을 수 있다. 중앙대 본부측의 구조조정안 발표에 이어 불거진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체육·가정교육과 폐과와 국어·수학교육과 신설 △자연대 기초 학문 학부제 전환 △어문계열 명칭 변경과 학부제 전환이다.

본부측이 ‘체육·가정교육과 폐과와 국어·수학교육과 신설’을 주장한 이유는 지난해 10월 실시한 학과 평가에서 체육·가정교육의 사회적 수요도가 낮다는 점 때문이다. 반면 계열위는 “체육·가정교육과를 존속시키고 국어교육과만 신설하자”라고 주장했다. 인문 영역을 공부하는 사범대생들이 자연계 영역인 수학교육학을 배우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다.

또, 자연대 물리·수학·화학과를 기초과학부로 전환하자는 본부와, 학부제 전환을 반대하는 계열위 주장이 맞섰다.

▒ 구조조정 타깃은 어문계열

결과적으로 지난 3월23일 본부가 확정한 최종안에서는 두 가지 쟁점에서 계열위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반면, ‘어문계열 명칭 변경과 학부제 전환’은 본부안대로 확정되었다. 일어일문·중어중문·비교민속학 전공을 ‘아시아문화학부’로 묶고,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 문학을 ‘유럽문화학부’로 통합시켰다.

강내희 교수협의회장(영문과 교수)은 “독문·불문·노어학과는 소, 양, 말처럼 같이 섞일 수 없는 동물과도 같다. 같은 울타리 안에 넣는다고 학문적 융합 효과가 생길 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어문계열 교수는 “학부제 전환은 거기에 속한 학과의 정원을 탄력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언제든 여기서 정원을 빼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학측은 구조조정 최종안을 확정하면서 △대외 경쟁력이 있는 학과 육성 △유사·중복 학과 통합을 통한 교육 수월성 제고 △국제 사회가 선호하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화두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대학 간 생존 경쟁이 격화되면서 경쟁력 없는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을 통한 ‘선택과 집중’이 시작되었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수요가 변하는 만큼 대학의 학문 단위도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에게 인기를 잃은 학과를 계속 존속시켜야 하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학과 존속’ 주장 이면에는 교수들의 ‘밥그릇 지키기’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무한 경쟁에서 피어난 ‘대학의 기업화’

문제는 대학의 기업화이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실용만을 강조할 경우 빚어질 부작용이 그것이다. 앞서 기업이 인수한 대학들에서는 지원 예산이 ‘친기업적’ 학과·단과대에 편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대는 가장 최근에 기업(두산)이 인수한 대학이다. 재단 영입 당시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며 반기던 여론은 반발과 저항으로 바뀌었다. 구조조정 과정이 일방적으로 진행된다는 비판을 받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만 양성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중앙대는 ‘회계와 사회’를 공통 교양 과목으로 신설해 운영 중이다. 전공에 상관없이 졸업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기업이 중앙대 출신을 뽑으면 회계는 웬만큼 안다는 평가를 받게 하겠다”라는 박용성 이사장의 기업식 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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