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대법관 인터뷰, “사법부가 길들여지나”
  • 김지영 기자 | 정리·황건강 인턴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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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수 늘리면 효율 떨어지고, 법률 해석·통일에도 어려움 따를 것”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안대희 대법관(왼쪽)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중수부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검사 안대희’가 대법관이 된 지 4년이 지났다. 그는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을 때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통해 ‘국민 검사’라는 애칭을 얻었다. 3월24일 한나라당이 사법 개혁 관련 7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다음 날에는 대법원이 자체 개선안을 발표해 양측 간에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던 3월26일, 대법원 8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차나 한잔 달라”라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해 “그럼 차나 한잔 하고 가라”라고 해 어렵게 승낙을 받은 터였다. 그러나 사무실로 취재기자뿐 아니라 사진·인턴기자까지 들이닥치자 그는 난감해했다. “인터뷰는 안 하려고 하는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사법 제도나 정치권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일반적인 이야기만 부탁한다”라고 미리 차단막을 쳤다.

“지금도 (1989년 입주한) 홍은동 아파트에 살고 있다”라는 소소한 소재로 튼 대화의 물꼬는 사법 개혁안 등 현안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두 차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대화의 끈을 놓기도 했다. 안대법관과의 인터뷰는 때로는 긴장감이 흘렀고, 때로는 유쾌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떻게 지내나? | (재판) 기록 더미에 파묻혀 살고 있다. 일이 굉장히 많다. 그것 하다 보면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남는 것은 판결문뿐이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과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작은 것이라도 실수하지 말자’이다.

대법관의 업무량이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하루 평균 여섯 건 이상의 사건을 검토하는데.

그 이야기 안 꺼내려고 했는데…. 쉽게 얘기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는 방법과 상고 심사부를 두는 방법이다. 대법원이 최종심 역할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가 법률의 해석·통일 역할이다. 대법관들이 합의를 해야 하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전원 합의를 13명이 하는데, 이보다 더 많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두 번째는 지금도 소통이 약간 원활히 잘 안 되는데 대법관이 더 많아지고 부(部)가 나누어지면 통일이 어려워진다. 지금 시스템에서 법률의 해석·통일을 하려면 증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한나라당에서 대법관의) 부담을 줄여준다고 하지만, 해석·통일을 위한 과정이 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 24명이 해야 하고 부가 막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 지금 나온 것(한나라당의 개혁안)을 반박하기 위해서 상고 심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은 대법원 산하에 있는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려고 한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 검찰과 (법원) 양쪽에 관련된 사항이라 말하는 것에 따라 양쪽에서 다 비난받을 수 있다.(웃음)

한나라당은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1년 전까지 근무했던 법원이나 검찰청 관할 지역의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 맡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법원과 검찰의 가장 큰 문제는 평생 검사·평생 법관을 안 하는 것에 있다. 부장검사를 하든, 부장판사를 하든, 검찰총장을 하든, 무엇을 하든 종착역은 변호사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예와는 맞지 않다. 정년까지 일하게 해주는 것이 전관예우를 없앨 수 있는 방안이다. 기술적으로 수임을 금지해서 될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도 그렇다고 들었다. 지금 검사들 너무 젊지 않은가. 검사 다 마치고 해도 50대 초반에 나온다. 그런 일이 안 생기게 하고 전관예우가 안 나오게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검찰과 법원에서 정년을 지킨다는 것이 어렵지 않나?

동기생이 승진하면 자동으로 그만둔다. 그것은 악용될 여지가 많다. 누구를 총장 시킨 다음 다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일본처럼 자연스럽게 환갑일 때 동기생들이 ‘다 같이 나가자’ 이런 것은 말이 되는데, 지금 동기가 되었다고 나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사법시험 동기(17회)였던 정상명 검찰총장이 임명되었을 때는 어땠나?

나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 내가 나가면 동기생이 다 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 조직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법원과 비교해도 너무 젊어졌다. 그만큼 검찰이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검찰을 권력 집단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법률 집단이라고 이해한다면 누가 총장이 되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때만 해도 정년을 채운 검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법원에서도 걱정한다. 검찰이랑 법원이 어느 정도 기수가 맞아야 하는데…. 하여튼 인위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여권이 사법부를 길들이려 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이 이상한 이야기이다. 사법부가 길들여지나.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고 심사제가 좋은데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듯이, 다양한 시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상한 얘기이다.

최근 부산 여중생 성폭력 살인 사건 이후 사형 제도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런저런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법치 국가이니까 법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현행법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법대로 해야 한다. 위헌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대법관은 판결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법사회학적으로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 사형 폐지로 간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한 지 10년이 넘어 지금 다시 사형제를 시행하기에는 늦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검찰에 있을 때 보았던 법원과 법원에 와서 접한 법원에 어떤 차이가 있나? | (검사일 때) 대법원에 들어와본 적이 없는데, 대법관이 화려하게 청사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와보니까 고검장실보다 작더라.(웃음) 검사는 실체적 범죄에 대한 진압으로 정의감이 우수한데 여기서는 절차에 대해 상당히 존중한다. 검찰은 수직 라인인데, 법원은 수평적 협의 문화이다. 내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 절대적이 아니다. 양쪽을 다 보았기 때문에 중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워낙 검사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법관으로서 퇴임사도 준비해놓았다.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다. 대법원의 주인으로 지냈다’라는….

검찰과 법원에서 근무해보니 어디가 더 업무량이 많은가? | 업무량은 여기가 더 많다. 그러나 여기는 건전한 스트레스이다. 검찰은 칼을 휘두르는 곳이다. 마음 여린 사람이 잘 버텨왔다 싶다.(웃음)

안대법관이 보수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나는 세칭 진보적 입장에서 판결도 많이 했다. 지금 인터넷 규제도 많이 하는데 음란성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안 된다고 해서 완화하기도 하고, 근로자 문제라든지…. 다만,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서는 법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판결해야 한다. 그런 쪽에서 보수라면 보수이다. 또, 검찰 생활을 오래 하며 공익의 대표자라는 마인드가 있다. 개인의 인권보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마인드가 강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라면 할 말이 없다.

검찰 선후배들이 안대법관을 가리켜 ‘정의감이 강하다’ ‘원칙주의자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인간 안대희’가 일탈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있다. 노는 것도 좋아하고. 가족들하고 놀고, 술 먹고 떠들기도 하고 그런다. 나는 랩송도 한 번씩 부른다.(웃음)

요즘도 부인과 영화를 자주 보나?

<아바타>를 봤다. 집사람과 딸과 갔다. 그 영화 보니까 아이디어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도 다녀왔는데.

이런저런 걸 떠나서 안 갔다 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갔다. 그래도 한번 갔다 오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잘 갔다 왔다 싶더라.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한) 이인규 중수부장하고 다 같이 (2003년 대선 자금 수사를) 해서 문전박대를 당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인규 부장이 박연차 수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여야 균형을 맞추려고 너무 신경 쓴 것이 아니었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땠나?

충격적이었다. 이래저래 인연이 있었으니까.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 양반도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려고 한 것 같다.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 그냥 한국 사람이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노 전 대통령이) 너무 자식 사랑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것이다.

눈물이 많은 것 같은데. | 많은 편이다.

2003년 대선 자금 수사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겠다.

옛 이야기인데 하지 말자. 다음에 이야기할 시간이 있겠지. 그런데 (수사를) 할 만큼 했다. 남겨놓은 것이 없다. 국민이 지켜보는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름대로 다 했다.

검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상 법률가라는 의식을 갖고 일해야 한다. 그것은 법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 의식에서 좀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범죄는, 특히 화이트칼라 범죄는 발전한다. 검찰은 자기 말이 맞다는 맹목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쪽 말만 듣고 하면 안 된다. 좀 노력하고 법률가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

대법관 임기를 마치는 2012년 이후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가?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 일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변호사 아닌가. 내가 살아온 것이 있기에 경제적인 문제에 연연하지 않는 변호사,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는 원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변호사일 것이다. 전관예우 때문에 못하게 할까 봐 걱정이다. 그럼 학교에 가면 되지 않겠나. 받아줄지 모르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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