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알짜’에 짓밟힌 개미들의 대박 꿈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4.0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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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 중소기업 주식 샀다 ‘상장 폐지’ 위기 몰려 울상

 

ⓒ시사저널 임영무


경기도 분당에 사는 이 아무개씨(63)는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종잣돈 1억원을 남편 몰래 주식에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은행 이자가 워낙 낮다 보니 수익을 더 얻고자 주식에 손을 댔다. 이씨는 위험성이 큰 테마주보다는 알짜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업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아구스’였다. 이 회사는 최근 스마트폰을 통해 CCTV를 감시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최근 거래가 이루어진 엿새 동안 주가가 50%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이 회사는 현재 상장이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대표이사인 천규정 전 벼룩시장 대표는 1백70억원을 횡령하고 잠적했다.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 의견 ‘거절’까지 받았고, 주식 거래도 정지되었다. 모든 상황이 불과 보름 만에 일어났다. 이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었다.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거래가 중지되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소액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이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갑자기 회계법인의 감사 의견 거절을 받고 거래가 중지되는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시장 기대 종목으로 떠오르면서 증권사의 추천까지 받았던 것들이다. 투자자들의 허탈감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증권선물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상장 폐지 사유가 되는 회사는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쳐 40여 곳에 이른다. 이로 인한 개미 투자자들의 피해액 또한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묻지 마’ 투자자가 아니다. 알짜배기 기업을 찾아서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한 투자자는 “회사가 제출한 실적 보고서를 보고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리게 생겼다”라고 토로했다. 일부 기업은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집단 행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아구스와 네오세미테크 주주들은 최근 인터넷에 대책 모임을 만들기 위한 카페를 개설했다. 아구스 주주들은 최근 대표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등기이사 세 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전문 브로커 개입한 정황 증거 나와

워낙 갑작스럽게 상황이 악화하자 피해 주주들 사이에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구스 주주들은 상장 폐지 막후에 전문 브로커가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아구스 등기이사에는 이 회사 대표이사인 천씨 외에 중소 창투사 대표와 임원인 ㄱ씨와 ㅋ씨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최근 상장 폐지 대상이 된 기업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일부 기업에서는 상장 폐지 공시가 나기 직전에 지분을 모두 매도하고 빠져나가기도 했다. 주주들은 이들이 공모를 해서 고의로 상장을 폐지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구스 주주 모임 운영자인 양승헌씨는 “경영진이 악의적으로 상장 폐지에 관여한 정황 증거를 현재 법원에 제출한 상태이다. 법정 소송을 통해 전말이 가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구스가 조만간 상장 폐지되면 개미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투자금을 날릴 수밖에 없다. 아구스 주주 조성재씨는 “주주들은 상장 폐지만은 막아보려고 회계법인에 재감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자료를 주지 않아 재감사가 불가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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