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학이 끌고, 예술이 밀고…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4.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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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중앙대학교 제공


중앙대학교가 장기간의 침체를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대학 개혁’을 활기차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8년 6월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나서부터다. 지난 대입 수시 모집에서 중앙대 경쟁률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2008년 치러진 수시 모집에서 지원자가 4만명이었는데 1년 만에 6만3천명으로 57% 늘어난 것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이 현상을 ‘두산 효과’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지원자가 몰린 것은, 글로벌 기업이 학교를 운영하면 교육 환경이 개선되고 졸업 후 취업 전선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금 중앙대 캠퍼스에서는 약학대학의 R&D센터, 기숙사 등 신축 공사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학교에는 지난해에 4백억원, 올해 7백억원의 예산이 신규 투입되고 있다.

박용성 이사장은 “중앙대라는 교명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모든 것을 바꾸겠다”라고 폭탄 선언을 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학내외에서는 발전적인 방향이라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학교의 특성을 무시한 채 너무 기업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거나 통폐합될 것이 예상되는 학과·학부 쪽에서 나오는 불만과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간섭을 싫어하는 대학 사회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작용한다. 박이사장은 “대학은 백화점 문화센터가 아니다”라며 “학과를 조정해 새판을 짜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시대가 요구하고 경쟁력을 갖춘 전공 과목을 선정해 중점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성공 여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신설된 ‘글로벌 지식학부’는 새로운 시도이다. 이는 3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선발하며, 학생은 직장을 다니며 주로 주말과 휴일 저녁 때 이루어지는 강의를 듣는다. 학생 선발 방식도 수능 점수를 따지지 않고 수험생의 열정과 경험, 잠재력을 측정하는 입학사정관제로 시행한다.

지난해 2학기부터 전교생에게 회계를 필수 과목으로 한 것도 획기적인 발상이라고 할 만하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기본적인 회계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공부하는 대학’ ‘연구하는 대학’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개교 100주년을 맞는 2018년까지는 국내 5대 대학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포부이다. 그동안 내부에서는 학교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반성이 일어왔었다. 임영신 창학자의 조카인 임철순 전 총장이 학교와 정치권을 오가는 사이 학내에서는 심각한 누수 현상이 빚어졌고, 그 뒤를 이은 재일교포 출신의 김희수 이사장은 학교라는 특수성을 잘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학교와 본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채 손을 떼는 불행한 결과가 빚어졌다.

중앙대에서는 특히 약학대학이 강하다. 약학대학은 1953년에 설립되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준 높은 대학으로 발전해왔다. 동문들은 정밀화학 및 첨단 생명과학을 포함한 의약품 관련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재오·백용호 등 막강한 ‘MB맨’들 활약 돋보여

제약업계 관련 단체의 대표 자리에서도 여러 동문이 활약하고 있다. 김구 인삼당약국 대표(약학 22회)가 현재 제35대 대한약사회 회장이고, 어준선 안국약품 대표이사 회장(경제 12)이 한국제약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조의환 삼진제약 대표이사 회장(약학 15)은 2003년부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같은 약학과 22회인 이성우 동문이 삼진제약 대표이사 사장이다.

중앙대 약학대학이 강세인 덕분에 신제품 개발에 열정을 쏟는 약학대 출신 연구진과 마케팅에서 잔뼈가 굵은 제약업체의 전문 경영인들이 호흡을 맞추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에도 국내 굴지의 중외제약에서는 박구서 동문(신방 27)이 대표이사 부사장직을 맡아 이 회사의 설립자인 이종호 회장을 비롯한 3인이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회사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제약업계 1위인 동아제약에서는 강신호 회장의 4남인 강정석 동문(철학 39)이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가업을 승계할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조순태 동문(사회복지 28)은 녹십자에 입사해 30년 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30년 가까운 영업 인생에서 늘 1등 신화를 일궈내며 영업 조직을 주도했고, 1991년에는 녹십자 매출 1천억원 돌파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녹십자는 그의 지휘하에 신종플루 백신 생산으로 또 한 번 개가를 올렸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한양행의 김윤섭 대표이사(경영 23)는 마케팅과 영업 분야를 담당하며 세계적 신약을 개발해 해외로 진출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미약품의 임성기 회장(약학 16)은 2000년 의약 분업 이후 한미약품의 초고속 성장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환인제약 중앙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조용백 동문(약학33)은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에서 발행하는 2009·2010년 인명 사전에 ‘세계적으로 탁월한 21세기 지식인 2000명’ 중 한 명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미국 ‘마르퀴스 후즈후 인더월드 2009년판’ 인명 사전에도 등재되어 세계 3대 인명 사전 중 두 군데에 잇따라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중앙대 출신들이 정계 요직에서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현실 정치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꽤 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경제 19)은 ‘현 정권의 2인자’로 불린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MB)과 고락을 함께해 온 세월이 길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온몸을 던졌으나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하고 박근혜 전 대표와의 껄끄러운 관계로 인해 혼자 10개월 동안 미국에 나가 있었다. 귀국해서 맡은 자리가 장관급인 국민권익위원장이다.

‘강성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그를 둘러싸고 걸핏하면 ‘말’이 생긴다. 그의 표현대로 그가 정치적 행보를 하면 사람들이 그를 걸고 대통령을 공격하기 때문일까. “나는 대통령의 철학, 생각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다. 큰 흐름에서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잘 만들기 위해 ‘이재오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겠다”라는 발언에서 그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다. 이위원장은 작가 이문열씨와 같은 고향(경북 영양) 출신이며, 집안도 같아 항렬로 치면 이문열 작가가 할아버지뻘이다.

 


백용호 국세청장(경제 32)도 중앙대 출신의 ‘MB맨’이다. 성장 과정에서 갖가지 시련을 극복해낸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은 MB의 14년 정책 브레인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보령 웅천읍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전학이 잦아 출생지를 떠나 광주에서 초등학교와 광주서중을 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부친의 사업이 두 차례 실패한 데다 중학교 졸업 무렵 심장병을 앓던 어머니와 이별하는 등 말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 이 고통을 이겨내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익산의 남성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자취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3년 내내 전교 수석을 다투는 수재였다고 한다.

그의 현실 정치 참여는 당시 신한국당 중진이었던 김덕룡 의원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김의원은 익산 출신으로 남성중학교를 다녔다. 이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4·11 총선에 출마한 신한국당의 몇몇 후보들이 ‘경제를 걱정하는 모임’을 꾸리면서부터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이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게 되었을 때 그의 손을 잡은 일은 인간 백용호의 최대 모험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MB의 서울시장 도전 과정에서 출마 공약을 만들어냈고, MB가 시장에 당선되어 취임하자 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아 MB의 상징과도 같은 청계천 개발,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 뉴타운 개발 등 굵직한 정책들을 잇따라 쏟아냈다. MB와의 인연은 그렇게 깊어져갔다. 그리고 권력의 두 축이라는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두 자리 중 하나가 그에게 주어졌다.

 

 

방송·연극 등 예능 분야와 농구에서 ‘스타’ 줄이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명박 역’을 맡은 인연으로 가까워졌다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연극영화 31)은 2008년 2월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입각한 이래 장수 장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음악 20)은 모교 음악대학에서 전임강사로 시작해 총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2005년 12대 총장에 취임한 뒤 1차 연임해 현재는 제13대 임기를 아어가고 있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을 지냈으며,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 일을 맡았다.

조선일보에서 13년 언론인 생활을 마치고 5공화국 출범 당시 정계에 입문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정외 18)는 은로국민학교와 중앙대 부속중고,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한 정통 ‘중앙맨’이자 상도동 토박이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며 11대 국회와 13·14·15·16대 국회에 진출한 경력으로 당 대표까지 역임했으나 친박연대 공동대표로서 18대 국회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복역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 이재오 위원장이 지병 치료를 위해 일시 병원으로 옮긴 서 전 대표를 문병하러 갔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별 말이 없었다고 한다. 중앙대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중앙대 총동창회장도 역임했다. 숙명여대 학생회장 출신인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약학대학에 못지않게 문예창작 분야와 연극영화 쪽에도 걸출한 인물이 많다. 1970년대에만 해도 중앙대는 국내 6~7위권 대학이었다. 그러던 것이 15위 바깥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수준급이던 음악대학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문예창작과’나 ‘연극영화과’ 하면 ‘중앙대’를 떠올렸고 수많은 쟁쟁한 작가와 연기자를 배출하던 학교였다. 예술 계통이 강했던 중앙대의 위상이 급속히 떨어진 데는 제2 캠퍼스로 안성을 선택한 것이 한 이유로 꼽힌다. 서울에서 통학 거리가 먼 곳으로 갑작스레 캠퍼스가 옮겨가니, 다른 대학에 비해 경쟁력이 높았던 단과대학이었음에도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박상연 작가(영어 46)는 TV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2009년의 안방 극장을 강타하고 공동 집필한 김영현 작가와 함께 MBC 연기대상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중앙대 졸업에 즈음해 처녀작인 소설 〈DMZ〉를 쓴 그는 이문열 작가의 추천으로 민음사 계간지 〈세계문학〉에 등단했으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등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드라마로 활동 분야를 넓혀왔다.

 

 

중앙대 영문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최홍규 시인(영문 16)은 중앙대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중앙문학회(회장 임헌영)로부터 2010년도 제15회 ‘중앙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중앙대는 대학 스포츠 분야 가운데 농구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허재이다. 현역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허재 프로농구 전주 KCC 감독이자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체육교육 39)은 2004년 마흔의 나이로 30년간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프로농구팀과 국가대표팀을 맡아 “스타 출신의 감독은 성공하지 못한다”라는 속설을 무색케 하며 감독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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