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때문에 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4.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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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근거 없다는 주장 부쩍 많아져…“환자의 마음가짐과 암 생존율은 무관” 연구 결과도

ⓒ시사저널 사진팀


지난 2002년 이경철씨(48·남)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작은 암세포(소세포 폐암)가 폐 전체에 퍼져 있어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항암제를 투여하고 방사선요법으로 치료하는 것이 최선책이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주변 사람들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공기 좋은 시골에서 요양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기존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6개월 정도 받으면서도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 이씨는 “당시 통신회사에 근무했는데, 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심했다. 일반적으로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살던 생활 방식을 하루아침에 1백80˚ 바꾼다. 나는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 생활 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지난 8년 동안 직장 생활을 유지하면서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건강을 되찾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암을 이겨낸 사례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암에 걸린 사람은 그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 가운데에서 스트레스는 대표적인 암 발병 원인으로 꼽힌다. 원자력의학원이 지난 2006년 암 진단을 받은 사람 또는 암 치료 후 10년 동안 생존하고 있는 5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암 발병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꼽은 사람이 53%를 넘었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에 따라 암에 걸린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도 화를 참고, 잘 웃지 않은 사람은 억지로라도 웃는다.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거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도 많다. 수십 년 동안 몸에 익은 생활 습관을 한순간에 뜯어고치는 셈이다. 의사도 암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권고한다. 스트레스가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암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스트레스가 심장질환 등 수많은 질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스트레스가 암 발병에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통념도 작용한다.  

이같은 통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스트레스 발암론’에 제동을 거는 의사들은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이라는 의학적 근거가 거의 없다고 강조한다. 김종흔 국립암센터 정신과 전문의는 “이미 암에 걸린 경우, 스트레스는 암세포를 키우거나 암이 퍼지는 속도를 가속시킨다. 그러나 없던 암이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주·흡연·폭식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나쁜 생활 습관이 암을 일으킬 수는 있다. 바꿔 말하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이어간다면 암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스트레스가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보다 그 반대의 연구 결과가 더 많다”라고 말했다.

생활 습관 확 바꾸기보다 삶의 질 높이는 방법 필요

지난 2007년 <유럽 암 저널(EJC)>에 스트레스와 암 발생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여성 9백여 명, 남성 5천7백여 명을 대상으로 30년 동안 추적·관찰한 결과였다. 스트레스가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2009년과 올해 초에도 스트레스와 유방암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졌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암 발생률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를 잘 받아 암을 제거했다고 해도 암 환자는 항상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 때문에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스트레스가 암 재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국 세인트 토마스 병원의 질 그래햄 박사는 최근 스트레스를 받은 환자의 암 재발률이 일반 환자보다 높다는 의학적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암 진단 후 5년 동안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환자의 암 재발률이 오히려 일반 환자들보다 낮게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암 재발을 낮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스트레스로 암이 재발할 것이라는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같은 암 환자라도 오래 살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제임스 코인 박사는 2007년 환자의 마음가짐이 암 생존율과는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두경부암 환자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 결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존 통념을 뒤흔들었다.

암 발병 요인은 DNA 손상, 세포 자살, 바이러스 등이다. 유전적인 오류가 생기거나 세포가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사멸해야 하는데 계속 자라면 암이 된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가 원인인 대표적인 암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흡연, 음주, 폭식, 문란한 성 생활 등 나쁜 생활 습관을 바꾸는 편이 암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립암센터의 김종흔 정신과 전문의는 “의사나 가족이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는 오히려 환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가족과 정을 나누는 시간을 늘리는 등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명상, 숲 속 생활, 자연요법으로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암 선고를 받아 나약해진 환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암 환자는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더욱 힘든 투병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건강 음식’에 집착하지 마라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이른바 ‘건강 음식’을 찾는 사람이 최근 부쩍 늘어났다. 이들은 유기농 식품만 찾거나, 고기를 먹지 않거나, 버섯과 같은 특정 음식을 꼭 챙겨 먹는다. 문제는 건강 음식에 대한 집착 증세, 즉 오소렉시아(orthorexia)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강박증이다. 마라톤이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하면 관절 등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오소렉시아도 마찬가지다. 심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건강 음식 자체가 건강을 해치지는 않지만 자칫 영양 불균형으로 심신이 허약해질 수 있다. 쉽게 병에 걸리고 회복은 더딜 수 있다고 한다. 또, 특정 음식점만 찾아다니거나 주변 사람에게 특정 음식을 알게 모르게 강요할 수 있으므로 인간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희철 연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100가지라면 그중에 건강 음식은 한 가지에 해당한다. 건강 음식에 집착하는 노력을 운동, 금연, 절주, 체중 조절, 건강검진 등에 쏟으면 건강 유지에 더 큰 도움이 된다”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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