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방제 작업이 암 발병 부추겼나
  • 조아라 | 과학저술가 ()
  • 승인 2010.04.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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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파도리 주민들, 원유 유출 사고 후 암환자 크게 늘어…“단정 못 지어도 지속적 모니터링 필요”

2007년 12월, 서해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충남 태안군 파도리 주민들이 사고 이후 암환자 수가 크게 늘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태안군 보건의료원과 파도리 주민들에 따르면, 기름 유출 사고 이후 6백3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에서 총 15명의 암환자가 나타났다.

암환자 수 증가에 대해, 이 마을 주민들은 암환자 대부분이 사고 당시 방제용 마스크가 없어 헝겊으로 된 일반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장기간 고압 세척기를 이용한 방제 작업에 참여한 이들이라며, 암과 기름 사고의 연관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태안군 보건의료원에서는 과거의 통계 수치가 없어 이 마을 주민들의 암 발병률이 사고 이후 크게 높아졌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다른 동네에 비해 암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며, 이 마을 환자들을 대상으로 증상과 사고 당시 작업 내용 등을 파악하는 역학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뒤 해안가 기름 제거 작업에 나선 자원봉사자 및 태안 지역 주민들. ⓒ시사저널자료

이와 관련해 해양독성학을 전공한 알래스카 어부 리키 오트 박사가 20년간 진행한 알래스카 기름 유출 영향 분석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에서는 지난 1989년 3월 원유를 싣고 가던 엑손 발데즈 호가 좌초하면서, 약 1천100만 갤런의 원유(엑손 사 발표 기준)가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 해협과 인근 해안에 유입되었다. 오트 박사는 알래스카 발데즈 항의 유조선 터미널의 만성적 대기 및 수질 오염 문제를 다루던 중, 이 사건을 목격하고 방제 작업에 참여했던 청소 작업자들의 건강과 알래스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알래스카에서 기름이 제거되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금도 인간과 환경 모두가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고 인근 지역의 산모와 영·유아에 대한 조사 결과 곧 나와

이 연구에 따르면, 엑손 발데즈 호 기름 방제 및 제거에 고용되었던 청소 작업자 1만1천명 가운데 호흡기·소화기·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있다고 신고한 건수가 6천7백22건에 달했다. 이에 대해 리키 박사는 제대로 된 보호 장비 없이 기름 방제에 나섰던 것이 청소 작업자들의 건강 문제를 유발했다고 말했다. 청소 작업자들이 보호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원유에 포함되어 있는 다환방향족 탄화수소(PAHs)에 그대로 노출된 데다가, 방제에 사용되었던 화학 세척제 코렉시스, 이니폴, 탈지제 심플 그림 등이 인체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실제로 ‘스탠더드 알래스카’의 전 의료 책임자인 로버트 리그 박사도 “보호 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원유를 비롯한 석유화학 부산물에 노출된 인부들에게 신경학적 변화(두뇌 손상), 피부 장애, 간과 신장 손상, 여타 장기의 암, 합병증 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라고 밝혔다.

이제 파도리 주민 암환자 발생에 대한 역학 조사가 시작된다. 지난 2008년도 공표한 기름 유출 사고 인근 지역의 산모와 영·유아 등 민간 계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 영향 조사 결과도, 예정대로라면 올 8월에 발표된다. 현 단계에서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기름 유출 사고가 인간의 건강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가능하다면 방제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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