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날씨, 무엇이 꼬였기에…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5.0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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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의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이 버티고 있는 것이 원인…‘엘리뇨 모도키’의 영향도 커

▲ 이상 저온 현상이 계속되어 꽃피는 4월에 추위가 찾아왔다. ⓒ시사저널 박은숙

봄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강풍, 호우, 눈, 우박, 거기에 황사까지…. 흐리고 쌀쌀한 날씨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봄꽃이 만발해야 할 4월 하순에 비바람이 종일 심술을 부리고 우박까지 가세한다. 특히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올봄의 궂은 날씨는 40년 만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지만 강수 일수가 19.6일로 평년보다 6.7일이나 많다. 거의 2~3일에 한 번꼴로 비가 내린 셈이다. 이에 따라 일조 시간도 2백47.1시간으로 평년의 73% 수준에 머물렀다. 하루 평균 4시간48분 동안만 햇볕이 내리쬔 셈이다. 일조 시간이 짧아지니 당연히 기온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올봄 평균 기온은 7.1℃로 예년보다 0.6℃ 낮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흐렸다 맑았다 변덕을 부리며 오락가락하는 봄 날씨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변덕스런 날씨의 심술은 한마디로 시베리아 고기압이 대륙의 터줏대감처럼 딱 버티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좀처럼 약해지지 않는 북쪽의 찬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이 주기적으로 확장하면서 기온이 자주 떨어지고, 또 반대로 남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북상할 때는 비나 눈이 자주 내리기 때문에 봄다운 봄 날씨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이다. 즉, 지난겨울 우리나라에 한파를 몰고 왔던 대륙 고기압이 아직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어서 저온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4월이면 태양열을 잘 흡수한 지표면의 열로 부근의 공기가 더워져 대륙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전형적인 따뜻한 봄 날씨를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봄에는 영하 20℃의 시베리아 고기압이 아직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바람에 그 차가운 공기가 종종 한반도에 내려와 내륙의 습하고 따뜻한 공기와 만나면서 쌀쌀하고 흐린 날씨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변형 엘니뇨인 ‘엘니뇨 모도키’의 영향도 크다.

‘엘니뇨 모도키’는 기존의 엘니뇨보다 더 많은 허리케인을 일으키는 것으로, 중부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까지 높아지는 현상이다. 보통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을 중심으로 해수면 온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일본어 ‘모도키’가 시사하듯, 엘니뇨 모도키는 기존 엘니뇨의 영향을 받는 태평양 적도대 동부는 물론, 서쪽까지 확대해 태평양 중부까지 수온을 높인다. 다시 말해 북서태평양 고기압이 평년에 비해 강하게 발달하면서 두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머금은 온난 다습한 저기압 기류가 북아시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유입되어, 날씨가 풀리는 3~4월 중에도 눈과 비가 자주 내리는 이상 기상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겨울 북반구 한파의 주범이었던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은 왜 물러날 때를 모르고 한반도에서 이토록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이는 북극의 차가운 공기(시베리아 기단)가 주기적으로 저위도 지역으로 남하하는 ‘극진동(Arctic Oscillation)’ 현상 때문이다.

극진동은 북극 지역의 기압 변화를 의미하는 말로, 북극과 중위도의 해면 기압 차이를 주기적으로 그래프에 표시한 값이다. 극진동 값이 음(-)이면 편서풍이 약해지면서 동아시아와 북미 대륙 동쪽에 추위가 닥친다. 미국 해양대기국이 기록한 최근 극진동 자료를 보면 양과 음을 오가던 극진동 그래프가 지난해 10월 중순 -3까지 치달았다. 12월 중순을 지나 올해로 넘어오면서는 극진동 지수가 아예 -4 이하로 뚫고 내려갔다. 극진동은 보통 열흘에서 2주 이상 지속되어 추위도 오래 가는데, 올해는 그것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 북극 지역의 차가운 공기덩어리는 마치 장벽처럼 제트 기류가 감싸고 돌아 막아내기 때문에 북반구의 도시들을 덮치지 않는다. ‘폴라캡(polar cap)’이라고 불리는 제트 기류가 동서로 흐르면서 저위도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북극의 한기를 막아준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평균 기온이 높아져 고기압이 팽창해 제트 기류의 기세가 약해지면서 장벽 역할을 하던 공기의 흐름이 뚫려, 차가운 공기덩어리가 남으로 북으로, 지그재그형으로 사행(蛇行)해 세계를 뒤덮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 온난화

▲ 4월14일 오전 강원 대관령의 아침 기온이 영하 4.7℃까지 떨어지는 등 영하권의 ‘때늦은’ 꽃샘 추위가 몰아쳤다. ⓒ연합뉴스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미 암세포처럼 이상 기후 변화의 고통이 퍼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지구 온난화를 무색하게 하는 이율배반적 현상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겨울철의 홍수, 예상치 못한 돌풍, 봄의 눈사태 등이 흔해지고 있다. 이런 피해는 이미 국경을 넘어서 지구 공통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후로 꼽혀온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실종된 지 사실상 오래다. 이것은 모두 지구 온난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지구 온난화는 단순히 지구 전체가 골고루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후의 균형을 무너뜨려 이상 기후 현상이 잦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의 흐리고 쌀쌀한 날씨와 지구 저편의 일시적인 한파나 폭설을 이유로 더 이상 지구 온난화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계의 주류 기상학자들은 최근 한반도, 중국, 유럽을 강타한 폭설과 한파 그리고 봄임에도 흐리고 쌀쌀한 날씨 등은 오히려 지구 온난화의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한다. 아픈 지구가 스스로 기후 시스템을 작동시켜 지구의 온도를 일시적으로 낮춤으로써 평형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자연적 변화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일리노이 대학 마이클 슐레진저 교수는 “최근 죽 끓듯이 변화무쌍한 날씨를 빌미로 탄산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 온난화 이론에 회의론을 제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라며 오히려 기상 이변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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