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이 합중국에 분열의 금 그으려나
  • 워싱턴·최철호 | 통신원 ()
  • 승인 2010.05.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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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백인 우월주의 세력의 배타적 행동으로 마찰 잇따라

▲ 4월23일 미국 애리조나 주의 잰 브루어 주지사(맨 앞)가 초강경 불법 체류자 단속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

미국 내 인종 갈등이 수면 위로 점차 떠오르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불법 체류자들을 범죄인으로 체포할 수 있는 법안이 입안되어 배타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곳곳에서 백인우월주의 세력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면서 폭력화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는 미국 정치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인종 카드를 꺼내들며 배타적인 자세를 보이고 나섰다. 잰 브루어 주지사가 지난 4월23일 미국 전역에서 약 1천2백만명, 애리조나 주 내에서만 4백만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경찰 단속권의 합법화를 명문화한 법안에 서명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미국 내에 존재하면서도 언급하기를 꺼려왔던 인종 간의 갈등을 드러내놓고 발설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 내 곳곳에서는 백인과 다른 인종, 특히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점차 폭력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전부터 백인우월주의를 부르짖던 단체들이 조직을 공고히 하는가 하면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대폭 늘어났다.

애리조나 주에서 이번 불법 체류자 단속법을 입안하는 과정은 여느 때와 달리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보란 듯이 입안되어 처리되었다. 브루어 주지사는 아예 이것을 과시하는 언론 홍보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이 논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곳곳에서 내재되어 있던 “흑인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흑인 무시 감정, 경제 위기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따른 이민족 배타 감정,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긴 공화당원들의 초조한 정권 탈환 욕심 등과 결합되어 분열 요소를 더욱 증폭시켰다. 오하이오 주에서도 공화당 의원 등을 중심으로 “우리도 같은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오는 등 이런 흐름이 다른 주로 옮겨지고 있는 추세이다. 

불법 체류자의 대부분은 히스패닉계이다. 그러나 이미 인구의 30%가 넘는 비율을 가진 히스패닉 사회는 미국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그럼에도 애리조나 주가 내놓고 차별적인 법안을 낸 이유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연방 대법원에 소송이 제기될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큰 법안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단순히 불법 체류자들을 단속하겠다는 의도만이 아니라 민주당이 집권한 것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은밀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의식 있는 인사들은 미국의 정치가 분열로 가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 4월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의 시청 부근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

공화당 진영의 정치적 의도로 분석돼 

공화당 진영이 이민족에게 배타적인 감정을 드러낸 이유는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히스패닉계 쪽의 정치적인 비중을 넘어설 정도로 세력을 결집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어차피 히스패닉계 표는 민주당 표이며, 차라리 그들을 얻기보다는 더 많은 숫자의 백인들을 결속시키는 것이 실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화당 진영은 이제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이민족에게 배타적인 자세를 이용해야 할 만큼 백인들의 감정에 이미 반(反)이민, 반(反)소수 인종 정서가 커져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내재된 반 흑인 감정이 오바마 대통령 취임으로 증폭되기 이전에도 워싱턴 D.C. 주변의 일부 카운티에서는 미니트먼(Minutemen)이라는 백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단체의 회원들이 자기 집 주변의 불법 체류자들을 이민국에 신고해 쫓아버리는 등 적극적으로 배타적인 행동을 이어오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은 그같은 배타적인 감정에 불을 지폈다. 오바마에 대한 출생 논쟁에서부터 곧 이은 텍사스 주의 연방 탈퇴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의 표현은 갖가지 사건으로 표출되었다. 애리조나 주 불법 체류자 단속 법안이 나온 배경이다. 

미국 사회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증폭된 것을 보여주듯 15년 전 오클라호마시티의 머라 연방 빌딩을 폭파했던 티모시 맥베이가 소속했던 드라비디언이나 루비 리지 등  연방 정부에 대항해 총을 들고 맞서기 위해 ‘훈련’하는 민병대가 1백49개 단체에서 최근 5백12개로 무려 세 배나 급증했다. 또, 최근 백인들이 결속해 만든 ‘티파티(tea party)’도 알고 보면 흑인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역량을 결집해보자는 다짐의 결과물이다. ‘티파티’는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시작하는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턴 차 사건에서 이름을 땄다. 이들은 최근 연방 정부에 여차하면 대항할 수 있다는 뜻으로 총기를 휴대한 채 워싱턴 한폭판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관총을 등에 메고 시위에 나선 ‘순수 백인’인 이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 워싱턴 기념탑이 있는 내셔널 몰에서 총기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거부감도 표출되고 있다. 지난 4월27일 미국 독립선언의 무대인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나치의 스와스티카를 머리에 문신한 백인우월주의자 세 명이 선술집 밖에서 군중 50여 명에 마구 구타당한 것이나, 앨라배마 주 백인우월주의 집단 전담 변호사가 이웃 흑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즉사한 것 등은 인종 갈등의 양상이 이미 폭력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분열을 우려하는 시각이 나온다. 흑인 대통령의 취임과 이민족들의 증가로 인한 배타적 감정의 수위 상승은 그동안 조화와 타협, 균형과 화해를 강조하던 미국 사회를 조각낼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들리는 미국 내부의 파열음은 남북전쟁 전 들렸던 흉한 언급만큼이나 인종 간·계파 간 갈등이 깊어져 있다. 도덕적 우위라는 지금까지의 미국이 갖는 사상적인 우위를 점차 잃어가는 모습이다. 미국은 지금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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