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방송’ 만드는 MBC 파업 ‘방치’
  • 채은하 | 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0.05.1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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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대응’ 일관…노조도 딜레마

 

▲ 파업 한 달째를 맞은 5월6일 저녁 MBC 노조원들이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MBC 파업이 5주째 계속되고 있지만 김재철 사장은 짐짓 ‘강 건거 불구경’식이다. MBC 노조 집행부를 업무 방해 등으로 고소하고,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가처분신청을 낸 것 외에 이렇다 할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파업을 이끌고 있는 노조 집행부와 적극적인 협상을 시도하는 움직임 역시 없다. 중재 역할을 맡아야 할 기자회, PD협회 등 직능단체 대표들의 면담 신청도 재차 거부하고 있다. 지난 5월3일부터는 서울 여의도 MBC 사옥으로 출근하지 않고, MBC 사옥 인근의 다른 사무실로 바로 출근하고 있다. 그나마 아침마다 출근 저지를 위해 사옥 정문 앞에 늘어선 노조 조합원들과 대치하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가을 단풍이 들고 겨울에 눈이 와도 마음은 안 바뀐다”라는 공언처럼 ‘장기전’을 각오한 무대응 전략인 것처럼 보인다.

최근 3년간 각 방송사마다 ‘낙하산 사장’ ‘관제 사장’ 논란과 출근 저지 투쟁, 파업 등이 반복되어왔지만 이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KBS처럼 공권력이나 청원경찰 등의 물리력이 동원된 사례도 있었고, YTN처럼 경영진과 노조원이 직접 충돌한 경우도 있었고, EBS처럼 단시간에 노사가 합의에 이른 경우도 있었으나, 이처럼 사태가 장기화되는 파업을 ‘방치’한 경우는 거의 없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김재철 사장의 태도는 청와대나 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의 표면적 ‘무관심’과도 겹친다. 민주당 등 야당에서 ‘MBC 청문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지상파 3위’로 위상 추락 위기

이를 두고 MBC 안팎에서는 “정권의 노림수가 MBC 장악이 아니다”라는 식의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애초에 MBC를 ‘친정권 방송’으로 만들기보다는, MBC를 약화시키는 데 그 현실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KBS와 지상파 방송 1, 2위를 다투던 MBC를 지상파 3사 중 가장 열위로 낮추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정권이 문제를 만들어놓고 지금과 같이 총파업 국면에서는 뒤로 빠진 채 노사 간의 극한 대립을 통해 MBC의 경쟁력들을 후퇴시켜서 스스로 망하게 하겠다는 야비한 계산들이 엿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최근 SBS가 동계올림픽, 남아공월드컵 독점 중계 등으로 ‘지상파 방송 중 2위 자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공격적인 태세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분석과 맞아떨어진다. 또, KBS는 최근 뉴스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압도적인 시청률 1위를 굳히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파업 한 달을 넘어가면서 MBC가 입는 타격은 만만치 않다. <놀러와> <무릎 팍 도사> <무한도전> 등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결방되고 재방송, 스페셜 방송으로 대체되었다. <무릎 팍 도사>는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를 인터뷰해놓고도 아직 방송을 내보내지 못해 애태우고 있고,
<무한도전> 역시 2백회 특집을 녹화해둔 상태이지만 역시 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뉴스데스크>는 시청률이 소폭 하락해 KBS <뉴스9>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이대로 파업이 장기화되면 파업 종료 이후에도 방송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또, 파업 장기화로 인해 MBC 사원들이 입는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김사장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유례없이 강경하게 적용했고, ‘계약직’인 작가들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없어 역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MBC가 안팎으로 곪아가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MBC 사내에서는 김재철 사장의 ‘무대응’에 격분하는 목소리가 많다. 파업에 동참한 노동조합 소속 평사원들뿐 아니라 노조 소속이 아닌 고참 사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대로라면 MBC의 경쟁력 자체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고참 PD는 “방송 파행이 벌써 한 달째인데 김사장뿐 아니라 경영진은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치 남의 집안 싸움을 보는 듯 한다. 방송을 수습해 정상화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방송사 사장이 될 수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보도국의 한 기자는 “취임 때만 해도 미디어렙 문제, 방송 시장 급변 등을 들어 공격적인 경영을 약속하더니 지금은 수비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다 임기 1년을 아무것도 안하고 보낼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초 ‘황희만 부사장 사퇴, 김우룡 전 이사장 고소’에서 시작했던 MBC 노동조합의 요구는 ‘김재철 사장 사퇴’로 그 수위가 높아졌다. 그러나 파업을 이끄는 노조 집행부의 고민도 적지 않다. 김재철 사장이 황희만 부사장 퇴진이나 김우룡 전 이사장 고소 등 노조의 요구조건을 이행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상황에서 파업을 무한정 계속 이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파업을 풀고 복귀할 명분도 없지만, 기한 없는 파업을 계속 할 수도 없다는 것이 MBC 노조의 딜레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MBC 노조의 결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미 전체의 70%를 넘는 기자와 PD들이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내 사실상 ‘불신임’이 이뤄졌다는 판단이 이러한 예측의 근거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MBC 노조와 김재철 사장과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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