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를 향한 악플의 심리학
  • 하재근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5.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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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비가 네티즌들에게 난타당하는 이유

 

▲ 5월12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가수 비의 발매 기념 팬사인회에서 비와 팬이 악수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요즘 가수 비에게 악플이 쏟아지고 있다. 비가 새 노래로 컴백한 후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때부터 비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반드시 논란이 일어나면서 네티즌들에게 난타당했다. 가볍게 농담조로 한마디 한 것조차 비난의 대상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은 첫째, 과대 포장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사람들은 본래의 실체보다 과대하게 부풀려진 것을 아주 싫어한다. 비의 경우에 월드투어를 다니는 세계적인 뮤지션이라고 알려졌었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비에게 그렇게 엄청난 히트곡이나 음악적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의 컴백 무대가 방송되었는데, 그 무대에서 비가 보여준 것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잠재울 만한 음악적 카리스마가 아닌 노출 웨이브였다. 그러자 비에 대한 악플이 폭발한 것이다.

또, 우리에게 비는 월드스타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것은 비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기 때문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 영화가 그리 대단하게 히트한 것도 아니고, 작품성도 높은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액션영화에 출연했을 뿐인데 마치 미국 시장을 제패하기라도 한 것처럼 월드스타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여긴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둘째, 거만함에 대한 거부감. 최근에 비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방송에 임한다. 이 자신감이 사람들에게는 거만함으로 비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분위기도 비를 과도하게 띄운다. 비가 월드스타라면서 마치 별나라에서 하강한 영웅이라도 되는 양 떠받드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거부감을 초래할 일인데, 그 속에서 비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으니 그 거부감이 폭발하고 말았다. 비는 완전히 미운 털이 박혀서 사사건건 욕을 먹고 있다.

신문과 방송이 연예인을 죽인다

이것은 비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원리이다. 한때 손담비가 악플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손담비는 언론에 의해 한국 최고의 섹시 디바로 포장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손담비가 그렇게 대단해?’라며 악플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손담비 띄우기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그녀가 나온 <드림>이라는 드라마가 ‘손담비의 드라마’로 알려질 정도였다. 사실 그녀의 비중은 조연에 불과했는데 언론이 손담비만을 연호하다 보니 정작 주연들은 사라지고 손담비 이미지만 각인된 것이다. 그럴 정도로 손담비 띄우기의 열기는 대단했고, 그 열기에 비례해 네티즌의 반발 심리도 커졌다. 결국, 손담비는 악플에 파묻혔다.

지드래곤의 경우도 그렇다. 그가 ‘천재적’인 창작자로 알려진 것 때문에 네티즌의 반발심이 생겨났다. 황정음도 최고의 CF 스타가 되었다는 기사들이 나오자마자 악플의 여왕에 등극했다. 원더걸스와 JYP도 미국 시장을 접수한 것처럼 쓴 과대포장된 기사들 때문에 악플의 수렁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네티즌은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 연예인을 공격하고, 그에 따라 주기적으로 연예인들이 돌아가면서 악플 사태를 맞고 있다. 해당 연예인들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비가 자신을 월드스타라고 불러달라고 신문·방송사들에게 요구했을까? 문화 대통령이라는 칭호 때문에 일부 반발을 사는 서태지도 그렇다. 서태지가 자신을 그렇게 떠받들어달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요청한다고 그 말대로 할 신문·방송도 아니다. ‘월드스타’ ‘천재’ ‘최고’ 등 극단적인 표현은 소비자의 시선을 잡아 기사를 팔기 위한 매체의 상술이다. 신문과 방송은 적당한 연예인이 나타나면 호들갑을 떨며 그를 저의 하늘 위에 올려놓고, 그러면 불쾌감을 느낀 네티즌이 해당 연예인을 끌어내리고, 그러면 다시 신문과 방송이 다른 연예인을 내세워 기사를 파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특히 외국 콤플렉스가 강한 이 나라에서 ‘월드스타 떡밥’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어서, 방송은 외국에서 어느 정도의 실적만 있어도 황제라도 되는 양 치켜세우며 호들갑을 떨기 마련이다. 비가 출연한 방송에서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월드스타라는 자막이 반복되며 MC와 출연자들이 그를 떠받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구도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는 좋겠으나, 해당 연예인에게는 독이 된다. 신문·방송의 호들갑이 없었다면 외국에 나가 치열하게 성과를 이루어낸 청년이 그렇게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비를 향한 일부 대중의 악플 공세는 상궤를 벗어난 것이다. 

 

▲ 에 출연 중인 이승기(오른쪽) ⓒKBS
이경규는 군림하는 절대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수렁에 빠졌었다. 그가 <명랑 히어로>에 처음 나왔을 때, 하차하라는 악플이 쏟아졌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유재석·강호동 못지않은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동안 이경규는 ‘굴욕’당했다. 남들 위에서 군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국민 MC들이 모두 그렇다. 유재석과 강호동도 굴욕, 겸손, 인간미를 보여준다.

이승기에게 악플이 없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황제’라는 턱없는 호칭을 듣고 있다. 드라마, 예능, 음악 모든 부문에서 최고라고 대접받는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승기는 최고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갖춘 원톱 배우도 아니고, 최고의 가수도 아니며, 최고의 예능인은 더욱이 아니다. 과대 포장도 이런 과대 포장이 없다. 하지만 악플 세례가 없다. 왜?

그는 ‘허당’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거부감이 허당으로 상쇄되었다. 허당 캐릭터는 그에게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또, 그는 철저히 겸손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비를 만났을 때 이승기는 절을 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자세, 바로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이다. 신문·방송의 ‘묻지 마’ 식 띄우기로 악플 지옥에 빠지려는 연예인은 이런 원리를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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